눈치 보이는 청춘

내 나이가 많다며 내부 진통을 겪었다고 했다.

by 쉐비

어제는 분회(分會) 점심 모임에 다녀왔다. 분회는 말 그대로 본회(本會)를 정점으로 하는 말단의 소규모 조직이다. 법정단체인 주택관리사협회의 경우, 분회 위에 지부(枝部), 지부 위에 각 도 단위의 도(道)회를 층층이 두고 있다. 소속 회사는 가리지 않는다. 공식적이고, 그런 만큼 가장 대표적이다. 일찍이 이러저러한 관리소장 모임이 많다는 얘기를 주변에서 종종 들었다. 유익한 관계망이 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막연한 기대도 갖고 있었다. 기회가 닿는 대로 차차 가볼 참이었다. 그런 곳에 가서 자주 얼굴을 내밀고 잘 사귀어놓으면 여러모로 도움이 될 것이라는 솔깃한 말이 해야 할 숙제처럼 여전히 기억에 남아 있었다.



이번 분회 회합은 내가 적을 두고 있는 관리업체 소속 관리소장들의 지역 모임이었다. 협회 이름으로 만나는 기회와 구분할 요량이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이곳에서는 이런 모임을 내부적으로 협의회로 부른다고 했다. 협의회...! 자발적으로 뭉치는 소장들의 모임에 왠지 관리업체가 슬그머니 비집고 들어온 낌새가 느껴지기도 하였지만, 상호 간의 연결고리를 구축하려는 회사 측의 노력과 방책으로도 줄 만하였다. 잘했고 좋은 일이라고 생각하였다.




갈비탕 점심식사에 앞서 간단한 자기소개 시간을 가졌다. 25명이나 되는 회원이 한 명도 빠짐없이 전원 참석하였다는 사회자의 으쓱한 현황보고를 시작으로 행사가 진행되었다. 약간 마른 체구에 남녘의 사투리를 구사하는 그의 능란하고 막힘없는 말솜씨가 인상적이었다. 그 자리에는 이 지역을 관할하는 본부장과 협의회 회장도 이미 착석해 있었다. 본부장은 노고를 치하하면서도 재계약과 신규 수주 등 위탁관리 계약실적을 올리는 데에도 다 함께 힘을 모으자며 은근한 독려의 말을 빠뜨리지 않았다. 이어서 소장들이 한 사람씩 돌아가며 자기소개하는 말을 귀담아 들어 보니, 경력도, 나이도 그 밴드가 상당히 넓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통계 현황에서 봤던 것처럼 한두 사람의 젊은이를 빼놓고는 대다수가 50대 이상으로 보였다. 여성 소장 비율도 족히 30%에 달하였다.




내 차례가 되어 자리에서 일어나 참석 소감과 포부를 담아 자기소개를 하였다. 늦깎이 소장으로 입문해 아직 배워야 할 게 많지만, 지금 근무하는 단지에서 열심히 하면 프로가 될 수 있을 것 같다고 웃으며 말했다. 순서를 다음으로 넘기고 자리에 앉아 내가 한 말을 다시금 되새겨 보고서는 내가 좀 오버(over) 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얼굴이 화끈거렸다. 이미 정년퇴직하고 창창한 나이도 아닌 사람이 그렇게 의욕을 드러내도 되는 거냐며 다들 반문하는 눈치로 나를 쳐다보는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 설령 속내가 그렇더라도 굳이 밖으로 드러낼 필요까지는 없는 일이었다. 아직도 청춘인 줄 알고 괜히 주책을 부렸다는 생각이 들었다.ㅋ~.




자기소개 시간이 끝나고, 일행은 점심식사를 하기 위해 일제히 아래층으로 자리를 옮겼다. 나는 일부러 본부장을 수행하고 온 강 매니저(manager) 옆으로 가서 나란히 앉았다. 성격이 활달한 그녀는 여기저기 테이블을 넘나들며 소주잔을 돌리느라 벌써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현직 시절 나의 모습을 보는 듯해 그녀의 움직임을 지켜보며 혼자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 마지막으로 나에게도 한잔 권하며 조심스럽게 술을 따라주었다. 나도 답례로 그녀에게 술을 따라준 다음, 같이 앉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잔을 부딪치며 큰소리로 건배를 외쳤다. "위하여!!!" 매니저는 이내 잔을 들어 훌쩍 마시고는 살짝 상에 내려놓으며 나를 쳐다보았다. "소장님!" 그리고 내가 지금 근무하고 있는 단지로 배치받기까지 내부에서 있었던 사연을 들려주었다. 한마디로 쉽지 않았다고 했다. "그래요...?"



그때는 내가 관리소장으로 처음 일을 시작한 단지에서 10개월 남짓 근무하고 퇴사한 후, 두 달째 쉬고 있을 즈음이었다. 본사에서 이미 퇴사 면접을 마친 후였기에 다시 전배(轉配) 명령을 받을 때까지 대기하는 기간이기도 하였다. 전배는 근무하는 단지를 바꿔 배치하는 본사 인사발령을 말하는 것으로 일반 직장의 전보발령과 비슷한 개념이다. 나는 면접 절차를 마치던 날, 앞으로 배치받고 싶은 지역과 규모(세대수) 등 희망사항을 강 매니저에게 미리 전달하였다. 그녀는 내가 근무하는 지역을 관할하는 본부 소속으로 관리소장 배치 실무를 하며 인사권자인 본부장을 보좌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었다.



그녀는 소장을 채용하는 자리가 나올 때마다 나의 이력서를 내밀며 본부장에게 추천하였다고 했다. 믿거나 말거나다. 하지만 성의껏 들어보기로 하였다. 본부장은 그때마다 왜 매번 이 사람이고, 이 사람이어야 하느냐고 되물으며 나의 이력서를 여러 차례 반려하더란다. 나이가 많다는 이유에서였다. '올 것이 왔구나!' 충격이었다. 본부장이 그렇게 나오다니...!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매니저의 입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차여차 저차저차...!' 강 매니저는 본부장의 거부반응에도 굴하지 않고 끈질기게 설득하였고, 결국 나의 배치 결정을 허락받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해피 엔딩은 전적으로 나를 위하여 힘을 써준 강 매니저의 공과 노력이 컸기에 가능했다는 뜻이다. "매니저님~, 캄샤합니다. 정말 수고 많으셨네요!"




분회 모임을 마친 우리 일행은 단체 기념사진을 찍은 후 헤어졌다. 나는 일부러 본부장님과 강 매니저에게 다가가 눈동자를 마주치며 차례로 인사를 하고 돌아섰다. 관리사무소가 그리 멀지 않아서 올 때도 그랬던 것처럼 갈 때도 역시 걸어서 가기로 하였다. 걷는 동안 강 매니저가 했던 말이 생각 나 상념에 잠겼다. 회사에 엄연히 적을 두고 있는데도 나이를 가리다니...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내가 그런 말을 들은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뒤끝이 좀 씁쓸하였다. '그래, 내가 아직 젊다는 것은 오로지 나만의 생각일까?' 오늘따라 남의 눈치가 느껴졌다. 하지만, 지나치게 신경 쓰지 않기로 하였다. 그래도 60대 이상인 사람들이 50대와 함께 주류를 이루며 일하고 있는 분야가 바로 관리소장직이기 때문이다. 언젠가는 스스로 물러나야 할 시기가 올 것이다. 그렇다고 한 순간이라도 추하게 머물러 있을 생각은 없다. 때가 되면 조용히 사라져 갈 것이다. 기대했던 소장 모임에 갔다가 기분이 잠시 왔다 갔다 하였다. 앞으로 모임에 갈 기회가 또 오면 ... 물론 또 가볼 생각이다.^!^.


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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