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청경소승지난급수위. 전수가지정생공입선. 아파트 '관리비' 10가지와 '사용료 등' 9가지를 각각 구성하는 개별 항목의 머릿글자 모음이다. 2014년 주택관리사보 시험공부를 하던 시절, 암기사항은 주로 이런 방식으로 했다. 관리비와 사용료는 그 성격이 다르기 때문에 상호 간에 섞으면 안 되며, 반드시 구분하여처리하고 기재도 그렇게 해야 깔끔하다. 공동주택관리법 시행령 제4장 관리비 및 회계운영 편에 규정된 구분이다. 관리비는 의무관리대상 공동주택의 유지관리를 위하여 필요한 제비용을 입주자등(=입주자와 사용자)이 관리주체에게 납부하는 부담금이다. 반면, 사용료 등은 입주자등이 각종 서비스를 공급하는 사업자 등에게 직접 납부하는 것이 원칙이나, 관리주체가 입주자등을 대행하여 그 사용료 등을 받을 자에게 납부하는 비용이다. 머릿글자들을 각각 풀어쓰면 이렇다. 관리비는 앞서 말한 다음 10가지 비목의 월별 금액의 합계액이다. ①일반관리비, ②청소비, ③경비, ④소독비, ⑤승강기유지비, ⑥지능형 홈네트워크 설비 유지비, ⑦난방비, ⑧급탕비, ⑨수선유지비, ⑩위탁관리수수료. 이에 대해 사용료 등은 ①전기료, ②수도료, ③가스사용료, ④지역난방식 난방비와 급탕비, ⑤정화조오물수수료, ⑥생활폐기물수수료, ⑦공동주택단지 안의 건물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보험료, ⑧입주자대표회의 운영경비, ⑨선거관리위원회 운영경비등 9가지로 구성되어 있다. 입주자대표회의와 선거관리위원회의 각 운영경비가 관리비가 아닌 사용료 등의 범주로 분류되는 점이 좀 특이하다. 공동주택관리법의 소관 부처인 국토교통부의 기준이 있었을 것이다.
관리비나 사용료 등을 부담하는 주체는 현재 각 세대에 거주하는 사람이다. 즉 그 집에 사는 사람이 소유자인지 사용자(흔히 세입자)인지를 가리지 않는다는 뜻이다. 소비하거나 사용하는 직접적인 주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와는 별도로 반드시 소유자가 부담해야 하는 비목이 있다. 장기수선충당금이 바로 그것이다. 이는 공동주택관리법령 제5장 시설관리 및 행위허가 편에 별도로 규정하고 있다. 장기수선충당금은 공동주택을 오랫동안 안전하고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하여 필요한 주요 시설의 교체 및 보수 등을 목적으로 단지에서 매월 정기적으로 적립하는 돈이다. 세대별 매월 얼마씩 부담하고, 몇 년간 적립하며 언제 사용할 것인지는 반드시 별도의 장기수선계획으로 수립하도록 되어 있다. 그뿐만이 아니라, 그 계획을 정기적으로 점검하고, 필요한 경우에는 계획을 조정하는 일도 잊어서는 안 된다. 교체나 보수가 필요하다면 반드시 계획에 반영한 후에 하여야 하고, 계획에 반영된 사항은 실기하지 말고 제때 교체하거나 보수하여야 하기 때문이다. 계획기간은 통상 50년 내외의 장기간을 설정하는데, 그렇다고 그 기간을 절대적으로 지켜야 하는 것은 아니다. 주택이 현존하고 재건축 등의 사유로 멸실하기 전까지는 계획기간 연장 등 조정을 거듭하며 계속 적립해야 하는 소유자분 유지관리비용이다. 존속기간 동안 주택의 수명을 장기간 유지하고 자산가치를 보존하거나 증대할 목적으로 사용할 재원이필요하기 때문이다. 이 장기수선충당금을 소유자가 부담하는 것이 맞지만, 혹시 소유자가 자기 집에 거주하지 않는 경우라면 편의상 사용자가 소유자를 대신하여 관리비 등과 같이 관리주체에게 납부하는 방식으로 적립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러한 경우 소유자는 사용자가 대납한 돈을 마땅히 반환하여야 하는데, 보통 이사를 할 때 공인중개사의 도움을 받아 정산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법의 취지는 소유자가 부담해야 할 돈과 사용자가 부담하는 돈을 엄격히 구분하라는 것이다. 당연하다. 하지만, 실무를 하다 보면 그것을 정확하게 가리기가 참 애매모호한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국토교통부는 그러한 혼선을 예방하기 위하여 2017년 '장기수선계획 실무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배포한 바 있다. 이 책자는 관리소장들이 현업에 참고하는 필수 업무자료로 널리 활용되고 있다. 그럼에도 적용상 어려움과 혼선을 겪는 사례가 소장들 사이에서 자주 거론되곤 한다. 그런 만큼 장기수선 업무는 시청 등 행정기관이 특히 관심을 갖고 엄격하게 관리․감독하는 분야로 꼽히고 있다. 이 분야에 대한 법률 위반 시 벌칙조항은 가슴 뜨끔할 정도로 강력하고 세부적이다. 종사자들이 극도로 신경 쓰고 챙기는 이유다. ①장기수선계획을 수립하지 아니하거나 ②검토하지 아니한 자 또는 ③장기수선계획에 대한 검토사항을 기록하고 보관하지 아니한 자, ④장기수선충당금을 적립하지 아니한 자는 5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한다. 그뿐만이 아니다. ⑤장기수선계획에 따라 주요 시설을 교체하거나 보수하지 아니한 자, ⑥관리비․사용료 등과 장기수선충당금을 법에 따른 용도 외의 목적으로 사용한 자에게는 1천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하도록 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즉 각 과목의 용도가 따로 정해져 있는 만큼 이를 어기고 사용하면 안 되는 것이다. 장기수선충당금을 써야 할 곳에 수선유지비를 끌어다 쓴다거나, 반대로 수선유지비를 써야 할 곳에 장기수선충당금을 사용하면 일을 잘 못한 것이고 또한 법을 위반하는 것이 된다. 비용의 마땅한 부담주체를 혼동함으로써 일방에게 손해를 끼치는 결과를 낳기 때문이다.
최근 여러 세대에서 화재경보기가 오작동하는 사례가 있었다. 소방시설 유지관리 용역업체 직원과 관리사무소 기전과장에게 확인해본 결과, 감지기가 오래되어서 그런다며 이구동성으로 교체해야 된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감지기는 세대 내에 설치된 것이라 할지라도 장기수선충당금을 사용해야 하는 공용 물품이다. 법령에 따르면, 감지기는 장기수선계획상 전면 교체 대상이다. 부분 교체에 대하여는 전혀 언급이 없다. 언젠가 내가 고수라고 부르는 사람에게 이런 경우를 물어본 적이 있었다. 그는 장기수선계획 수립기준에 기재된 대로만 하면 된다고 자신있게 대답을 해주었다. 즉 지금 문제가 된 경우처럼, 감지기 전부를 교체하는 것이 아니라 고장 난 것 위주로 일부만 바꿔야 하는 상황이라면 그건 장기수선충당금이 아닌 수선유지비로 하는 것이 맞다는 뜻이었다. 나는 미심쩍어서 가이드라인을 다시 찾아보았다. 장기수선충당금 사용기준에 의하면, 전면 교체의 최소 단위는 1개라고 적혀 있었다. 한편, 공동주택관리법령상 장기수선계획의 수립기준에 의하면, 수선주기가 20년인 감지기의 수선 방법은 전면 교체라고 되어 있는데, 하나만 교체해도 전면 교체에 해당한다니 더 헷갈리기만 하였다. 나는 오히려 전면 교체 이외의 보수는 비용 부담주체의 의사를 반영하여 자율적으로 결정하라는 참고사항을 근거로 그 고수의 말이 맞다는 쪽으로 생각이 기울고 있었다. 하지만, 아직 확신할 수는 없었다.
더 알아보기 위해 국토교통부 중앙공동주택관리지원센터 콜센터(1600-7004)에 전화를 했다. 여러 해 동안 관리소장 경험이 있다고 자신을 소개한 여자 상담원이 가이드라인의 해설 내용을 친절하고 자세하게 설명해주었다. 교재에서 자율적으로 결정하라는 의미가 소장 마음대로 해도 된다는 뜻이 결코 아니라는 점을 분명하게 지적해주었다. "그래요?" 과거에 그렇게 자의적으로 해석한 일까지 떠올라 나는 정신이 바짝 들었다. 전문기관의 전문상담원을 통하여 정확한 설명을 듣고 나서야 비로소 안일하고 잘못된 나의 생각을 고쳐먹을 수 있었다. 내가 고수한테 들었던 답변을 비교하듯 상담원에게 들려주었더니, 흔히 고수라고 하는 사람들을 너무 믿지 말라고 잘라 말했다. 그들은 일단 자신이 맞다고 믿으면 좀처럼 생각을 바꾸지 않고 오래도록 주장하는 경향이 있어서 위험하니 오히려 경계해야 할 사람이라고 충고하였다. 잘 모르거나 판단이 서지 않는 문제로 고민된다면, 차라리 지자체나 국토부 등 감독기관에 직접 질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권유하였다. 그것이 과태료를 안 맞는 지름길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진정한 프로가 되려면, 책임있는 기관에 직접 질문하며 배워야 한다고 거듭 강조하였다. 귀가 얇은 탓도 있지만, 상담원의 말은 버릴 것 하나도 없이 내가 모두 귀담아들을 만한 사항들이었다. 아직 경험이 일천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부족했던 부분들이 점차 정리되고 정립되어간다는 생각이 들던 참이기도 했다. 그럴수록 무턱대고 찾았던 나의 우상, 고수에 대한 환상이 솔직히 조금씩 무너져가는 기분이 없지 않았던 것이다. 그동안 이른바 고수라고 칭하며 의존했던 사람들에 대한 나의 생각이 변하고 있다는 것은 반대로 이 분야에 대한 나의 지식이 확고해지며 차근차근 성장하는 징후일 것이다. 정도를 가자. 그것이 지름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