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한 직업

관리소장은 매일 과태료 지뢰밭을 걷는다.

by 쉐비

내가 관리소장으로 부임할 당시 그 동네는 주민들 간의 파벌싸움으로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관리사무소 주변에서는 뭔가 불만이 있는 듯한 인상을 하고 다니는 사람들을 종종 볼 수가 있었다. 사전에 그런 사정을 전혀 알 리가 없는 나는 뒤늦게서야 복잡하게 얽힌 갈등 상황을 알게 되었다. 입주자대표회의장에서 볼썽사나운 장면들을 여러 번 목격하게 된 것은 충격이었다. 동대표들이 양분되어 서로 핏대 올리며 언성을 높이는가 하면, 방청객들이 거리낌 없이 회의에 끼어들어 일부 대표와 심한 언쟁을 벌이는 일도 서슴지 않았다. 서로 간에 삿대질하고 비아냥거리기가 예사였고, 심지어는 경찰이 출동하는 일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나로서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장면이었고, 처음 보는 이색 풍경이어서 생소하고 긴장도 되었다.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다고 나는 그 틈바구니에서 중심 잡고 본연의 일에 집중하기가 쉽지 않았다. 공정하니 못하니 시비를 걸며 소장을 흔드는 경우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들은 어떻게든 일방이 상대방에게 결정적 타격을 가할 태세로 진을 빼는 모습이었다. 누군가 패배한 사람은 무릎을 꿇거나 벌금이나 과태료를 물든가, 아니면 감옥에 가야 할 것만 같은 분노와 적개심을 공공연하게 드러내고 있었다. 그 소용돌이에 휘말려 있는 사람들은 상대방을 궁지로 내몰거나 모종의 혐의를 입증할 수 있는 결정적 단서나 증거자료를 확보할 심산으로 관리사무소를 수시로 드나들었다. 가장 자주 하는 행위는 민원창구에 정보공개 청구서를 내미는 것이었다. "여기 사유를 정확하게 기재해 주세요." 빈 공란에 청구사유를 기재해 달라는 직원의 안내를 듣고서 '경찰서 제출용'이라고 휘갈기듯 쓰는 사람도 있었다. 그중 특별히 나의 관심을 끌었던 것은 5~6년 전에 있었다는 시청 행정감사결과 통보서를 복사해 달라는 청구서였다. '아니, 이런 게 있었나?' 그런 일이 있었다는 게 놀라웠고, 그런 사실을 알고 문서를 요구하는 사람이 있다는 데서 또 한 번 놀랐다. 그 당시 대체 무슨 일이 있었다는 것인지 나도 몹시 궁금하였다. 민원인이 물러간 뒤 나는 그 서류를 다시 꺼내어 찬찬히 읽어보았다.




30쪽 가까이 되는 분량이 벌써 예사롭지 않은 느낌을 주었다. 서류 앞머리 시행문을 넘겼더니 감사결과를 요약한 처분 내용이 일람표처럼 간단간단하게 정리돼 있었다. 2쪽에 걸쳐 빼곡한 그 내용 중에서 유난히 눈에 확 띈 것은 과태료 처분 항목이었다. '과태료라. 얼마 짜리야...?' 말로만 듣던 행정처분을 직접 내 눈으로 처음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내가 이 자리에 오기 훨씬 전 벌어진 일이지만, 왠지 내 일인 양 가슴이 철렁하였다. 그다음에 장황하게 이어진 페이지들은 처분 건별로 자세하게 기술한 감사내용으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어느 날, 동대표 중 한 사람이 감사 당시의 상황을 내게 알려주었다. 공무원 3명이 나와서 무려 15일 동안이나 뒤졌다는 것이다. 나는 그 말을 듣고 놀랍고 기겁할 뻔했다. 아니, 3일이나 5일도 아니고 15일씩이나? 그래도 그렇지, 일개 관리사무소를 대상으로 그렇게 강도 높은 감사를 한다는 게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 그 배경을 알고 보니 그럴만한 이유도 없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때도 주민 간에 갈등과 불화가 심한 가운데 제발 여기 와서 감사 좀 해달라고 일부 주민들이 애원할 정도였다니 말이다. 과연 누가 맞는지 잘잘못을 철저히 가려달라는 주문이었다. 공무원들도 입장이 난처했을 법한데, 다투는 쌍방이 서로 문제를 제기하고 일러바치는 상황이다 보니 당초 예정한 감사기간이 더 길어졌던 건 아닌지 별 상상을 다 해봤다. 사적 자치(私的自治)가 최고의 가치로 권장되는 마당에 기어이 행정기관을 끌어들여 깊은 상처를 남겼으니 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참으로 우매한 사람들이 자초한 어이없는 결과로 밖에는 생각되지 않았다. 그렇게 분란이 많고 다툼이 끊이지 않는 상황이라면 다소 비용이 들더라도 차라리 자문 변호사를 두고 활용했으면 더 낫지 않았을까 싶다. 눈치 빠른 변호사들은 벌써 이런 분야에 눈독을 들이고 저렴한 비용으로 자문계약의 폭을 넓혀가는 사례도 있다. 아무리 주민 간의 싸움이라 하지만, 주택관리업무를 감사하다 보면 관리주체나 관리소장에게 귀책사유가 돌아가는 지적사항이 비일비재하게 드러나기 십상이라는 것이 업계의 중론이다. 털어서 먼지 안 나는 경우 없다고 하지 않던가. 불현듯 내가 잘못 왔다는 생각이 들어 기분이 언짢아졌다. 주변 동료들의 말을 들어보니 이 동네는 지역에서 손꼽히는 악명 높은 단지라며 안쓰러워했다. 주민들끼리 응얼거리는 마을에서는 의도와 상관없이 유탄에 맞을 가능성이 훨씬 많을 테니까.




언젠가 문 소장이 시청 감사를 받고 200만 원짜리 과태료를 맞았다며 나에게 경험담을 들려준 적이 있었다. 그는 과거 같은 직장에서 일한 동료였고 지금은 인근 도시에서 3년 차 일하는 중견 관리소장이 되었다. 그는 구청, 시청, 도청, 심지어 국토부 등 어느 기관이든 일단 감사를 나오면 100% 걸린다고 봐야 한다고 잘라 말했다. 당연히 과태료 처분도 피하기 어렵다고 했다. 상대적으로 아직 경험이 일천한 나는 그의 말에 머뭇거리지 않고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하였다. 문 소장이 한마디 덧붙였다. 그 당시 감사를 나온 사람이 과거 직장에서 같이 근무했던 후배였고, 사실 모르는 사이도 아니었는데 얄짤없이 지적하더라며 씁쓸해했다. 듣고 보니 나도 아는 사람이어서 재밌다는 듯이 웃었다. 하지만 공과 사를 구분해야 하는 상황이고, 그 후배도 어쩔 수 없는 입장이었을 것이다. 문 소장은 생전 처음 당하는 과태료 처분이어서 뜨끔하고 당혹스럽기도 했지만, 차라리 수업료라고 생각하자며 자위하고서 후딱 내고 말았다고 했다. 소장이 하는 일들이 그렇다. 의무적으로 해야 한다고 규정된 일들은 무수히 많다. 단 한 건도 걸리지 않겠다는 일념으로 열심히 챙기고 애쓰는 것은 훌륭한 자세이나 어디까지나 완벽을 기하기에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차라리 걸릴 때 걸릴지라도 평소 편안하게 마음먹고 자신감 있게 일하는 편이 낫다는 문 소장의 말이 설득력 있게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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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택관리업무라는 것이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사실은 별 것이다.^^ 말로는 주민자치, 사적 자치 운운하지만, 실제로는 국가의 개입이 의외로 많아 그게 과연 맞는 말인지 의아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개입 방법과 수단은 당연히 법규와 행정감독이다. 가장 기본적인 체계라 할 수 있는 공동주택관리법부터 자치규약인 관리규약까지 그 종류도 많고 다양하다. 이러한 법규를 잘못 적용하는 오류를 범하면, 지적을 받아야 하고 설령 과태료 처분이 내려지면 마땅히 감수해야 한다. 아무리 배짱 있게 일한다 할지라도 오류를 피하고자 하는 노력하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그러니 질의회신과 판례, 민원회신 사례나 감사사례집도 꼼꼼하게 잘 챙겨보게 된다. 궁금한 사항이 있거나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확신이 서지 않을 때에는 관계기관에 직접 질의하는 방식으로 길을 찾기도 한다. 즉 관할 구청 담당자에게 전화로 물어보기도 하고, 국토부 산하 중앙공동주택관리지원센터 콜센터(1600-7004)에 전화상담을 청하면, 잘 훈련된 사람들로부터 의미 있는 답변을 들을 수가 있다. 이런 방식으로 일을 하지 않을 수 없으니 일하는 방식이 마치 공공부문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고 느끼는 것이다. 본연의 관리업무 외에도 근로기준법, 산업안전보건법 등도 소홀히 하면 큰코다친다. 거기도 법대로 안 하면 과태료를 부과한다는 조항들이 수두룩하다. 그러니, 관리소장은 실로 과태료 지뢰밭을 걷는 사람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법령마다 과태료 조항이 주렁주렁 달려 있어 마치 외줄 타기 하듯 위태롭게 길을 가는 사람들이다.




관리소장이 입주민들로부터 일 잘하고 능력 있는 사람이라고 평가받는 지름길은 고장 난 데 제때 보수하고, 필요한 공사를 적시에 꼼꼼하게 시행하며, 구석구석 안전하고 쾌적하게 단지를 유지 관리하는 것이다. 친절한 태도와 성실한 자세는 기본이다. 소장은 이러한 서비스가 관리사무소 직원과 용역회사 직원들이 잘 협력하며 매일 매끄럽게 잘 이뤄질 수 있도록 점검하고 지시하는 중심적 역할을 잘해주어야 한다. 이른바 관리사무소 업무의 지휘 총괄 책임(공동주택관리법 제64조)이다. 사실 이처럼 눈에 보이는 일들은 쉽다. 그것 외에도 각종 법령에 규정된 사항들을 지키는 일이 훨씬 어렵고 힘들다. 사업자선정지침처럼 가장 익숙한 법규라 하더라도 자칫 적용의 오류를 범하거나 기한을 지키지 못하고 지나쳐버리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공동주택관리법 시행령만 보더라도 과태료 부과기준이 되는 항목은 36개가 있다. 주어진 소임은 마땅히 잘 이행하여야 하지만, 일이란 적절히 분장하고 나눠서 해야 한다. 책임을 분담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규모의 차이는 있더라도 공공단체나 기업이나 모든 조직이 다 그렇게 하지 않은가. 하지만, 관리사무소는 사정이 많이 다르다는 것을 실감한다. 망각, 지체, 무지 등의 이유로 담당 직원이 잘 챙기지 못하여 발생하는 잘못이라 할지라도 소장은 그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사전에 일을 부여하고 교육하고, 점검, 확인하는 일이 일상화되도록 부지런히 뛰어야 할 이유다. 관리소장 한 사람에게 집중된 책임이 과도하다는 생각이다. 어쩌다 관리주체에 과태료가 떨어지는 날이면, 즉각 관리소장에게 구상권을 청구하는 경우가 많다고 들었다. 이렇듯 관리소장은 온갖 책임을 짊어지고 있을 뿐, 잘못하면 누구도 보호해주지 않는, 무기력한 총알받이로 전락하기가 일쑤다. 몸으로 뛰며 직접 챙기는 일보다는 법 규정을 빠트리지 않고 지키기가 참으로 어렵더라는 말이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법(법) 리스크(risk)다. 그런 점에서 관리소장은 위험한 직업이다. 전기과장이나 기계과장으로 일하는 사람들이 우스게 소리로 종종 하는 말이 있다. "관리소장 해봐야 온갖 책임만 다 뒤집어써야 하는데 그거 뭐 하려 해." 사실 그들의 급여 수준은 소장과 별 차이가 없다. 일리 있는 조롱이다. 여기서 퀴즈 하나. 근로기준법령 요지, 혹은 산업안전보건법령 요지를 게시하지 않으면 법령 위반이다. 벌칙은 뭘까. 둘 다 500만 원 이하의 과태료다! 관리소장의 짐을 합리적인 수준으로 덜어주어야 한다.




관리소장은 주택관리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전문적인 실습이나 연수과정이 없다. 고작 3년에 한 번씩 3일간의 이론 중심 보수교육이 있을 뿐이다. 그러니 초보시절부터 상당한 경력을 쌓기까지 겪어야 하는 시행착오는 불가피하다. 제대로 된 감사를 한다면 지적사항이 많이 나올 가능성이 높다. 잘못했다고 질책하면 그대로 들어야 하고, 과태료 등 벌칙을 가하면 속수무책으로 감당해야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서글픈 현실이다. 명실상부한 전문가의 반열에 오르기까지는 오랜 세월이 필요하다. 초보여서, 잘 모르고 경험 부족한 것이 결코 변명의 도구가 될 수는 없다. 일을 신속하고 정확하게 처리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함은 물론이다. 하지만, 지휘 총괄 책임자인 관리소장의 어깨에 올려진 무게와 짐은 과중하다. 의욕을 갖고 일을 제대로 할 수 있도록 좀 더 합리적으로 조정, 분산되어야 한다. 현실이 이러함에도 우선 자기 앞가림하기에 바쁜 상황에서 행정기관이 감사와 적발, 처벌 위주로 감독 역할에만 치중해서는 곤란하다. 감사를 나온다고 하면 미리 얻어맞을 각오부터 하는 관리소장의 태도도 옳지 않다. 그렇게 된 것은 비단 그들만의 책임이 아닐 것이다. 훈련하고 실습할 기회가 없는 양성과정의 잘못도 크다. 차제에 연수원이나 실무 학교 등 기본을 탄탄히 다질 수 있도록 제도를 보완할 필요가 있다. 대다수 소장들은 행정기관이 열악한 관리 현장의 애로에 귀를 기울이고, 지원하는 역할에 더 힘써주기를 절실히 바라고 있다. 최근 일부 지역 시청에서는 주택관리 운영실태 지도점검 및 맞춤형 교육을 실시하며 현업을 지원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도청과 국토교통부(중앙공동주택관리지원센터)에서도 관리업무 사전자문 서비스를 실시하고 있다. 바람직한 현상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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