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력이 짧은 초보 관리사무소장은 외롭다. 어려운 관문을 뚫고 들어와 열심히 해보겠다며 의욕을 불태우지만, 쌓이는 일을 하나하나 처리할 때마다 법 규정과 관리규약을 확인하느라 신중하고 바쁘다. 자칫하면 규정을 위반해 과태료 맞는다는 얘기를 귀가 따갑도록 들은 기억이 유난히 뇌리를 떠나지 않기 때문이다. 일어나지도 않은 일인데도 혹시나 재수 없이 걸릴까 봐 미리 긴장하며 겁먹고 한동안은 상당한 강박감에 짓눌려 있기도 한다. 아직 숙련되지 않아 자신감이 부족한 데에 기인할 수도 있지만, 처음부터 완벽주의를 추구하는 것이 근본 원인일 수도 있다. 일을 하다 보면 한두 번쯤 과태료를 맞을 수도 있지 않겠냐며 배짱 좋게 치고 나가도 되련만, 실제 그런 사람은 많지 않다. 그거 하나 걸린다고 신세 망칠 것까지야 없지만, 규정을 위반하는 자신을 용납하고 싶지는 않기 때문이다. 경력에 사소한 오점도 남기고 싶지 않은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혹시나 과태료를 맞아 의도하지 않은 생돈을 지출해야 한다면, 그건 정말 화가 나고 상상도 하기 싫은 일이다. 돈이 무섭다. 심리적으로 자신의 존재감을 자꾸 위축시키고 허약하게 만드는 주범이기 때문이다. 특히 나이 든 초보는 생각이 더 깊고 많다.
관리소장 중에는 공무원, 공기업, 군인, 경찰, 교사, 대기업 등에서 정년퇴직하고 재취업한 사람들이 제법 많다. 누구보다 준법정신이 투철하고 규정을 의식하며 울고 웃던 사람들이 적지 않다는 뜻이다. 퇴직을 하면 돈에 약해지는 것 또한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어제 신문을 보니 대한주택관리사협회에 가입한 관리소장의 90%가 50대 이상이라고 한다. 그렇지만, 과거의 화려한 경력과 중후한 나이가 그대로 실력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잠시 포장지가 될지는 몰라도 보증서는 될 수 없다. 관리소장은 결코 그렇게 호락호락한 자리가 아니다. 시간을 투자하고 차근차근 실무경력을 쌓아야 비로소 뿌리를 내릴 수 있는 또 하나의 전혀 새로운 세상이다. 소장을 바라보는 입주자 등의 시선은 냉정하다. 경험이 짧고 실무에 능하지 못하면 그것이 자신의 입지를 흔드는 가장 큰 핸디캡이 된다. 지긋한 나이에 관리소장이 된 사람들이 주로 겪게 되는 애환이 여기에 있다. 훗날 돌아보면, 소장 생활 중 그때가 가장 외롭고 고독한 시절이었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어쩌다 난감한 일들을 맞닥뜨리다 보면 그의 속내는 복잡하다. 그에게 드리워진 책임감과 리더십이 내리누르는 중압감과 고뇌가 그만큼 크기 때문이다. 그가 지휘 통솔하는 관리사무소의 일반직원이나 경비원, 또는 미화원과는 차원이 같을 수 없는 책임자의 숙명이다. 자신을 임명한 관리회사가 든든한 울타리는 되지 못할지언정, 기댈 언덕 정도만이라도 되어주었으면 좋겠다는 은근한 바람이 있다.
골치 아픈 현안에 직면하여 골머리를 앓게 되는 경우, 유사 사례나 경험자를 알아보는 것은 과거 1막 시절 한창 일할 때 가장 먼저 찾는 해법이었다. 상식이나 다름없는 일의 기본이어서 지금이라고 특별히 다를 이유는 없을 것이다. 그때 도움을 청한 사람은 주로 직장의 동료직원이었고, 본사나 본부가 결정적으로 힘이 되는 경우도 많았다. 그들은 손 내밀면 쉽게 닿는 곳에 있으면서 언제나 비빌만한 언덕이 되어 주었다. 주변에 있는 그런 존재 자체가 큰 위안이었고 자신감을 갖고 일할 수 있는 배경이 되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스스로 동원하고 활용할 수 있는 관계망이 넓어질수록 그만큼 자신감도 더 커졌다. 활발한 내부 소통은 흔히 경쟁력 있고 잘 나가는 조직이 지닌 강점의 하나로 꼽힌다. 직원들의 자부심(pride)이 크고 충성도(loyalty)또한 높게 나타난다. 관리소장의 세계도 비슷한 구석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아파트 관리업체들이 규모가 작고 영세하다고 하지만, 그래도 일하는 데 있어 최소한 기댈 만한 언덕이 되어줄 것이라는 일말의 기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유감스럽게도 사정이 전혀 그렇지 못하다는 걸 알아차리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힘들면 기댈 데를 찾고, 가려우면 비빌 데를 찾는 법 아니던가. 하지만, 어디에도 그럴 만한 곳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느끼는 당혹감과 실망과 허탈감은 자못 컸다. 난제에 직면했을 때 회사가 힘이 되어주지 못한다면, 과연 그 존재 의의는 무엇일까. '무슨 이런 놈의 회사가 다 있어?' 이래 가지고 과연 지속 성장을 꿈꿀 수 있는지 회의감마저 들어 씁쓸했다. 그런 순간에 직면하면 참 고독하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부질없는 일이었다. 그러니 소장은 관리업체에 대한 애착이나 믿음이 바닥이다. 오히려 주택관리 전문가로서 자신의 입지를 굳건히 다지는 일이 무엇보다 시급하고 중요하다는 사실을 확실히 자각하게 된다. 조속히 홀로 서야겠다, 프로가 되어야겠다는 다짐이다. 지당한 깨달음이다. 국가공인 자격을 취득한 사람이 마치 나이 어린 신입사원처럼 행세해서는 곤란하다. 아직 단련되지만 않았을 뿐, 자격증으로 나라가 인정한 전문가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전문가 역량을 채우는 것은 오로지 자신의 몫이다. "당신은 전문가 아냐!" 세상은 그렇게 말한다.
주택관리용역 계약기간 만료가 도래하면,기존 업체와의 재계약 여부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르기 마련이다. 통상 관리규약은 계약 만료 3개월 전에 결론을 내도록 규정하고 있다. 과업을 수행해온 기존 업체는 기득권자로서 당연히 재계약이 목표다. 대개 한두 번은 더 하는 게 보통이지만, 그렇다고 다 그런 건 아니다. 2~3년 단위의 재계약을 할 때마다 더 나은 서비스로 더 잘하겠다며 뭔가를 보여줘야 한다. 하다못해 몇 푼 되지 않는 위탁관리 수수료를 깎아주겠다는 출혈성 조건을 제시하는 예도 봤다. 너무 뜻밖이고 파격적이어서 놀라웠지만, 그렇게 제안하는 사람의 표정은 전혀 달라지지 않고 담담하기만 했다. 진행과정을 지켜보면, 미처 예상하지 못한 놀라운 발상이 튀어나오는 현장을 가끔씩 목격하기도 한다. 양상은 제각각일지라도 수성을 위하여 절박하고 집요하게 매달리는 건 어느 회사나같다. 관리소장의 평판과 평가는 재계약 여부를 결정짓는 요소 중 가장 중요한 변수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가 현장 책임자일 뿐만 아니라 관리업체 대표자의 대리인이라는 점에서 서비스 평가의 잣대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평소 잘 보이지 않던 본사는 이 즈음이면 관리소장을 불러들여 다독이고 격려하며 재계약을 독려하기도 한다. 우선은 관리소장을 통하여 재계약 가능성이 어느 정도 되는지 평가하고, 조금이라도 가능성이 있다면 꼭 성사되도록 하라고 숙제를 주며 압박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뒤집어 생각해보면, 그 단지를 절대 빼앗기지 않도록 꼭 잡아달라고 회사가 소장에게 오히려 매달리는 형국처럼 비치는 재미있는 장면이기도 하다. 소장이 잘하고 수완이 좋으면 롱런(long run)할 가능성이 높으니까.^^능력 있는 소장은 관리업체의 금가락지처럼 중요한 인적 자산이 아닐 수 없다.
기존 업체와 재계약을 하지 않기로 하고, 새로운 관리업체를 뽑는 경우, 군침을 흘리며 선정의 기회를 노리는 전문업체들의 사전 홍보전은 치열하다. 대개는 입찰공고문을 보고 움직이기 시작하지만, 관심 있는 단지의 계약기간을 미리 파악하여 제법 치밀하게 대비하는 관리업체도 있다. 하나같이 업계 최고를 자부한다거나 최고를 지향한다며 자신의 보유 역량을 자랑하지만, 그 실체를 검증하기란 쉽지 않다. "맡겨만 주시면..." 마치 마이다스의 손이라도 되는 것처럼 언제든지, 무슨 문제든 속 시원한 해결책을 찾도록 도울 수 있는 진용과 태세를 갖추고 있으니 믿어달라는 식이다. 제대로 된 입주자대표회의는 단지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들을 풀어나가는데 실제 도움이 될 만한 관리업체가 어디인지를 찾기에 주안점을 두고 선정 작업에 몰두한다. 겨울에 폭설이 내려 제설작업에 어려움을 겪었거나, 유지보수 업무가 매끄럽지 않아 법적 분쟁으로 비화할 소지가 있거나, 주민 간의 극심한 대립과 불화 등 쉽게 해법을 찾지 못하는 갖가지 현안이 있기 마련이어서 기왕이면 그런 문제를 풀어나가는 데에 도움이 될 만한 실력 있는 관리업체를 뽑고 싶은 것이다.
역시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 관리업체 선정을 앞두고 본사 본부장이 동대표들 앞에서 호언장담하며 늘어놓은 공약(公約)을 굳게 믿었던 것이 잘못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쓴웃음만 나온다.ㅋ 폭설로 제설차가 필요하면 즉각 단지에 투입하겠다고 공언했지만, 실제 상황에서는 전혀 작동하지 않아 적잖이 실망한 적이 있다. 장밋빛 약속을 액면 그대로 순진하게 믿었던 것이 잘못이었다. 가만 생각해보면 할 수도 없는 일이고, 지킬 수도 없는 공약(空約)이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승강기 유지관리 용역업체와의 불화로 법적 대응을 고려해야 할 사건이 있었을 때의 일이다. 본사에 법률팀이 있어 요청만 하면 즉각 지원할 수 있는 체제가 갖춰져 있다는 그때 당시 본부장의 '큰소리'가 떠올라 도움을 청하고자 전화를 하였으나, 기대에 미치지는 못하는 장광설만 들어야 했다. 답변하는 사람이 혹시 변호사가 아닐까 생각했지만, 법학과를 나온 듯한 젊은 과장이 응해주었다. 서류를 꼼꼼하고 치밀하게 잘 챙겨두라는 게 요지였다. 잘 못하면 행정기관의 과태료를 맞거나, 소송 결과에 따라 책임을 져야 하는 일이 생길 수도 있다며 불안한 말도 빼놓지 않았다. 어쨌거나 그는 나름 열심히 설명과 조언을 해주었지만, 만족할 만한 답을 들을 수는 없었다. 그나마 그 정도의 조직과 역량을 가진 관리업체가 많지 않은 것도 업계의 현실이다.
관리소장에게 관리업체는 무엇이고, 관리업체에게 관리소장은 무엇인가. 위탁관리방식이 대부분인 작금의 상황에서 관리업체는 본연의 사업과 관련하여 관리소장을 채용하는 임용권을 갖고 행사하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역할이 별로 없는 것 같다. 관리 현장을 실질적으로 지원하고 도울 만한 역할이 없다. 그럴만한 역량이나 체제(system)를 갖추고 있는 곳이 몇 군데나 있는지, 과연 있기나 한 것인지 의심스럽다. 소장을 훈련시키고 역량을 강화하는 내부 장치가 없다. 사실 그럴 여력이 없다. 관리소장은 자신을 채용한 관리업체가 기대거나 비빌 언덕이 되어주지 못하더라는 말이다. 반면, 관리소장은 어느 모로 보나 주택관리의 핵심이다. 관리의 성패를 좌우하는 열쇠(key)라 할 만하다. 힘든 일에 직면하면 주변의 동료들의 조언을 얻어 어떻게든 풀어나가고, 그러한 과정을 통하여 스스로 실력을 쌓고 성장한다. 어리바리했던 초보가 어느덧 프로가 되고 고수가 되는 과정에 관리업체가 힘이 되고 기여했다고 말하는 사람은 만나보지 못했다. 전적으로 자신의 피나는 노력과 인고의 세월을 견뎌낸 결과였다고 하나같이 입을 모았다. 주택관리사는 관리소장으로 홀로 설 수 있지만, 관리업체는 주택관리사 없이 존속할 수 없다. 자치관리방식이 가물에 콩 나듯 드물고, 위탁관리방식이 대세를 이루는 마당에 관리소장이 되겠다고 자리를 찾는 주택관리사들은 관리업체를 통하지 않고서는 들어갈 길이 없다. 입주자대표회의나 입주자 등이 관리주체의 업무에 부당 간섭하지 못하도록 규정이 강화될수록 관리업체들의 지배력은 갈수록 커질 전망이다. 이거 웃어야 하나 울어야 하나. 주택관리사들이 오로지 관리업체라는 매개체에 목을 매도록 칼자루를 쥐어준 것은 문제가 있다. 중개사, 회계사, 세무사, 변호사 등 다른 전문자격이 그렇듯 주택관리사 역시 법인이든 개인이든 일하는 방식을 선택할 수 있도록 운신의 폭을 넓혀주어야 한다. 지금 그들이 가야하는 길목은 너무 편협하고 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