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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쉐비 Feb 28. 2023

하이데거를 잊지 못하는 이유

두 마을 이야기

   2022년 2월 24일. 바로 1년 전, 이곳 단지에 부임하여 일을 다시 시작한 날이다. 세계사적으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무력침공한 날이기도 해서 나의 여기 첫날은 역사적 사건과 함께 뚜렷이 기억하게 되었다. 정년퇴직하고 재취업하여 같은 일터에서 1년 365일을 꽉 채운다는 것이 마음같이 쉽지 않다는 것을 일찌감치 절감하고 있던 터였다. '언제 1년  한번 채워보나...' 앞서 민원 지옥 같은 단지에서 온갖 일로 스트레스를 받으며 10개월을 버티다 끝내 고꾸라지듯 그만두고 나서 독백처럼 내뱉곤 하던 말이다. 드디어 오늘, 그 1년의 탑을 쌓았다! 생일 같은 기념일을 맞아 무척이나 뿌듯하였. "당신 정말 대단해. 고생 많았어요." 오랜만에 듣는 아내의 인정과 위로가 어느 때보다 따뜻하고 고마웠다.




   지난 1년, 여기서 일하는 동안 내내 직전에 근무했던 단지가 머릿속에 맴돌며 순간순간 서로 비교되곤 하였다. 여러모로 대조적이었기 때문이다. 어느 한 곳이 천당이고, 다른 곳이 지옥이라 할 정도까지야 아니지만, 각 마을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분위기와 내가 느끼는 기분은 차라리 그렇게 말해두싶었다. 그곳에 사는 모든 사람들이 그렇다고 마디로 단정할 수는 없다. 어디든지 멋지고 좋은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진상도 있기 마련이니까. 이나저나 잊을 수 없는 사람들이 잔상으로 남는 건 어쩔 수 없다. 바로 그 소수의 사람들이 그 마을에 대한 인상과 이미지를 결정하였다. 구물레마을과 도아마을, 내가 관리소장으로 일하며 겪어본 가장 인상 깊은 두 마을 이야기다. 다만, 주택관리업무와 관련한 시각에서 바라본 경험담이니만큼 그와 관련한 사람들의 모습이 사뭇 대조적이었다는 정도로만 그 범위를 국한해두고 싶다. 잘라 말하자면, 사람을 대하는 말과 행동에 관한 소회다.




   구물레마을은 1,288세대였다. 내가 소장으로 첫발을 내디딘 의미 있는 단지였다. 그런 기회를 준 고마움은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술에 너무 큰 단지를 맡았다는 염려도 없지 않았다. 한줄기 좋은 기회와 인연이 닿아서 가능했던 것인지라 잘하면 롱런(long run)도 가능하겠다는 당돌한 기대도 한때 가져본 적이 있었다. 하지만, 장밋빛 부푼 꿈은 정확히 열 달 열흘 만에 접어야 했다. 사실 마지막 결단을 내리기 전에도 당장 그만둬야 하지 않을까 하고 심각한 고뇌에 빠진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래도 데뷔전인 만큼 기왕이면 꾹 참고 1년 365일, 또는 그 이상의 시간기록을 남겨보리라 다짐하며 힘겨운 고비들을 넘겼다. '두 달만 더 가면 되는데...' 고지가 저만치 보이는 지점이어서 솔직히 많이 아쉬웠다. 하지만 지독한 한 민원인의 집요한 성가심을 잠재우지 못하고 끝내 하차해야 했다. 아무리 인내심을 굳건히 발휘하고 한두 달을 더 버틴다 한들 종국에는 추한 뒷모습만 남기고 초라하게 떠나리라는 예감이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그런 상황은 상상조차 하기 싫었고,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주민 간 불신과 불화는 내가 일하는 동안 시종일관 끊임이 없었다. 경찰을 부르는 일도 다반사였다. 직접 내 곁에서 말씨름하다가 경찰을 보내달라고 파출소에 전화를 하지 않나, 자정이 가까워지는 심야 회의 중에도 경찰 부르는 일을 마다하지 않았다. 입주자대표회의장은 다수 주민들이 참석하여 항상 긴장감이 감돌았다. 여기저기서 큰소리를 치는 바람에 회의장은 금세 난장판으로 돌변하기가 일쑤였다. 누군가는 녹취하는 것 맞냐고 확인하는 일도 빠트리지 않고 챙겼다.


   주민들은 내가 부임하기 전부터 이미 편이 갈려 심한 대립과 분쟁에 휩싸여 있었다. 사태를 들여다보니 원인은 자리다툼 내지는 완장 싸움이었고, 그 쟁탈전은 극심하였다. 그러다 보니 서로 간에 질시와 감시 또한 심했다. 그런 일을 70대 여성 몇 사람이 강경노선을 고수하며 주도하고 있었다. 생경하고 특이한 장면들이었다. 어른 역할을 해줘야 할 사람들이 오히려 진흙탕물에 뛰어들어 대활약을 하고, 타는 불에 기름을 더 끼얹는 일도 다반사다. 그들은 관리사무소 직원들까지 은밀히 끌어들이며 사태를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꼬이고 혼란스럽만들어버렸다. 직원의 채용과 퇴출에도 영향력을 행사하며 간섭하기를 마다하지 않았다. 그들의 갑질과 주인행세소장은 기가 꺾이고 소신껏 일하기가 어려울 지경이었다. 그들은 소장실에 아무런 거리낌 없이 들락거리며 뭔가를 주문하기도 하고, 압박하기도 하였다. 직원 간에도 편이 갈리고 반목과 언쟁이 심화돼 서로 간에 감시와 염탐하는 일들이 잦았다. 직원들 사이에 간첩으로 지목받는 사람도 있었다. "주민들이 주는 월급 받아쳐먹고..." 비아냥거리거나 모멸감을 느낄 정도로 함부로 내뱉는 말들은 특히 전화기 속에서 자주 들어야 했다. 얼굴을 안 보고 하는 말은 더 고약하고 차가웠다. 소장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심지어는 미행하는 사람도 있었다. 진절머리가 나도록 증오스러웠다. 예절도, 자존감도 무참히 짓밟히기만 했던 나의 짓궂은 흑역사는 그렇게 날마다 써지고 있었다.




   한편, 도아마을은 구물레마을과는 대조적으로 너무나 평온하고 조용하였다. 460세대 규모로 아담하고 단출하였다. 무관심이 좀 지나치다고나 할까. 대표자 구성원을 다 채우지 못하는 것이 마치 전통이나 되는 듯 꼭 공석이 있는 채 임기까지 계속되었다. 관리사무소를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지도 않을뿐더러 찾아오더라도 노크를 하며 조심스러운 모습이다. 그들을 맞는 직원들의 표정도 밝고 호의적이다. 작년 말까지 동대표 겸 이사를 역임했던 박 영감님(80세)이 나를 두고 다른 사람에게 하던 말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다. 이곳 도아마을 사람들의 심성과 성향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한 장면이라고 말해두고 싶다.


"내가 소장님을 존경하는 것은 소장님은 언제나 나의 말을 잘 들어주기 때문이여. 말을 잘 들어주는 사람은 돈을 주고서라도 붙잡으라는 말이 있거든."


어르신이 아랫사람에게 존칭까지 사용하며 칭찬하시기에 당혹스러웠다. 반면, 사람의 됨됨이를 인정해 주고 주변 사람에게도 스스럼없이 장점을 말해주는 것이 너무나 고맙고 감사했다. 물론 나보고 들으라며 일부러 그렇게 말한 것일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마치 어린아이처럼 기분이 좋아 살며시 웃고 말았다. 말 한 미디가 이렇게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살려놓기도 하는 것이니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




   철학자 하이데거는 '말은 그 사람이 사는 존재의 집'이라고 했다. 그 사람이 하는 말, 그 사람이 사용하는 단어가 곧 그 사람의 모든 것을 드러내준다. 내가 하이데거를 잊지 못하고, 송곳 같은 그의 말을 좋아하며 하나의 지표로 삼고 살아가는 이유다. 함부로 말하는 사람을 상대해야 하는  상황은 힘들고 괴롭다. 그런 사람이 많은 곳이라면 지옥을 멀리서 찾을 필요가 없다. 벗어나야 한다. 가급적이면 그런 곳엔 가지를 말 일이다. 삶의 만족도와 행복지수를 심하게 갉아먹는다. 건강까지 헤치는 곳이니 굳이 자신의 존재를 주장하거나 항변하며 버틸 일이 아니다.


   구인공고가 자주 뜨는 마을은 소장들도, 일반 직원들도 기피한다. 민원이 많거나 일하기 힘든 곳이라는 의미로 해석하고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그런 마을 사람들은 외부의 그런 반응에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다. 그래도 누군가는 온다, 오게 돼있다는 강한 자신감에 차 묘한 미소를 지으며 기다릴 뿐이다. 갑이라 해서, 공급자 위치에 있다고 해서 그런 미몽에서 헤어나지 못한다면 발전이 없고 득 될 것도 없다. 어느 쪽이 더 좋은 효과와 결과를 가져올 것인지 생각해 볼 일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기왕이면 인간적 대우를 받고 즐겁게 일할 수 있기를 바란다. 삶은 역지사지이기도 하다. 선호하는 단지와 기피하는 단지는 반드시 그 마을 특유의 사정과 이유로 갈리고 평가되며 끊임없이 회자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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