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자리의 가장자리에 선 사람들

고령사회의 그림자를 보다

by 쉐비

출근하자마자 각종 일지를 점검하고 신속하게 결재를 마쳤다. 그것으로 간밤에 특이사항은 없었던 것으로 확인하였다. 그중 경비 일지는 반장이 와서 가져가도록 출입구 옆 탁자 위에 따로 올려놓았다. 여느 때처럼, 아침 9시가 막 지나자 강 반장이 관리사무소 문을 열고 들어왔다. 바로 일지를 집어 들고서는 자리 쪽으로 고개를 내밀며 인사를 하였다. 나도 반장님을 바라보며 인사를 하였다. "네, 반장님, 안녕하세요!" 다른 때 같으면, "소장님, 특별히 지시하실 사항 없으십니까?" 하고 묻고는 초소로 돌아가는데, 오늘은 나에게 잠깐 드릴 말씀이 있다며 문간에 서서 머뭇거리고 있었다. 나는 강 반장이 대략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는지 짐작이 갔다. 그렇지만, 나는 전혀 모른척하고 테이블로 다가가 마주 보고 앉으며 그의 얘기를 들어보기로 하였다.




강 반장은 올해 80세다. 경비대원 중 최고령이고 가장 오래 근무 중이다. 아침마다 빗자루를 들고 구석구석 다니며 쓰레기를 치우는 것으로 일과를 시작한다. 내가 여기저기 잡초가 많다며 지적한 이후부터는 대낮에 쭈그리고 앉아 잡초를 뽑는 일도 심심찮게 볼 수가 있었다. 그런 일상은 주민들에게 낯익은 모습이 되었다. 평소 말씨도 점잖고 조리가 있어 첫인상이 좋았다. 나는 가끔 2층 창밖으로 내려다보면서 그가 저만치 떨어진 곳에서 청소하는 모습을 우연히 바라보는 때가 있다. '나이 80 어르신이...' 나는 그런 모습을 지켜보면서 그가 주민들로부터 나이가 많아 시원찮다는 소리를 듣지 않으려고 분발하는 몸짓이겠거니 하고 생각하였다. 그렇지만, 아무리 늦어도 그 정도 나이면, 좀 쉬어야 할 때가 아닌가 싶어서 어르신의 의중을 살짝 물어본 일이 있었다. 죽는 날까지 편히 쉬어보지 못하고 뼈 빠지게 일을 해야 한다면 그 삶이 너무 가혹하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강 반장은 젊은 시절, 직원 6~70명을 거느린 섬유회사 사장이었다. 잘 나갈 때는 분당에 대형 아파트 여러 채를 사놓기도 하였다. 그러다 2008년 금융위기 때 그만 회사가 부도나 한순간에 쫄딱 망하고 말았다. 하루아침에 살아갈 일이 막막해져서 부득이 아파트 경비라도 서야겠다고 생각하고 이 바닥에 뛰어들었다. 해 두 해 보내다 보니 어느새 팔순에 이르렀다. 사이 우리 사회도 많이 변했다. 이제 어느 사업장이나 근로자의 산업안전보건이 중요시되는 시대가 되었다. 근로자가 사고를 당하면, 사업주에게 법적 책임을 묻는 엄중한 환경이 만들어진 것이다. 그러니, 나이가 너무 많으면 혹시 갑자기 쓰러지기라도 할까 봐 주민들이 먼저 불안해할 정도다. 용역회사는 값싼 맛에 고령자를 채용하기도 하지만, 사업장의 주민들 눈치를 살필 수밖에 없고 동시에 근로자의 건강상태도 면밀히 관찰해야 한다. 단기 근로자를 어떻게 채용하고 어떻게 해고해야 하는지를 잘 아는 전문가 집단이다. 반장의 소속 경비회사는 그의 나이를 감안하여 이미 한 달 전, 그에게 해고예고를 해놓은 상태였다. 근로계약을 갱신할 때마다 단기로 하고, 그 자리에서 미리 만료 시점에 계약을 종료할 수 있다는 설명과 함께 서면 다짐을 받아놓는다는 게 업계의 관행이라고 한다. 이른바 갱신기대권이 발생하지 않도록 선수를 치는 것이다. 다시 말해, 강 반장은 이달 말로 만료되는 그의 근로계약을 다시 연장하지 않겠다는 사전 서면통보를 받아놓고 있었다. 그럼에도 강 반장은 일을 더해야 할 피치 못할 사정이 있다며 조금만 더 일할 수 있게 해달라고 매달렸다. 그가 미리 포섭해놨는지 노인회장, 통장, 과거 부녀회장이 한꺼번에 관리사무소로 찾아와 선처해달라고 가세하였다. 용역회사에서는 내가 소장으로서 참고해보시라고 전달한 의견을 듣고 난처해하더니 즉각 절충안을 내놓았다. 그렇다면, 연말까지만 한번 더 연장하고 더 이상은 하지 않는 걸로 하자는 복안이었다. 그러면서 오히려 나에게 "그때는 소장님이 단호하게 마음먹고 절대 흔들리지 말아달라"고 당부를 하였다.




강 반장 일로 찾아온 마을 인사들은 정작 먼저 나가야 할 사람은 신 반장이라며 뭔가 순서가 뒤바뀌었다고 자초지종을 물었다. 70대 중반으로 강 반장보다 젊기는 하지만, 경찰 출신의 신 반장은 특히 너무 말이 많은 데다가 목소리까지 커서 마을이 시끄럽다는 것이었다. 또 동대표인 박 이사가 그와 다툰 적도 있었다며 경비원이 동대표를 이기려고 하는 그런 태도는 곤란하다고 입을 모았다. 그런 얘기를 몇 사람한테서 들은 바 있고, 나 역시 그렇다는 걸 느끼고 있었지만, 그 자리에서 합세하듯 말하지는 않았다. 거기도 문제가 있는 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강 반장의 계약 만료가 먼저 도래하고 있었고, 게다가 내 나름의 평가와 판단도 있었기 때문이다. 강 반장은 A조, 신 반장은 B조이다. 얼마 전 강 반장이 근무하던 날, 지하주차장 미화원실에서 사용하다가 못쓰게 된 냉장고며 침대 등 각종 폐기물을 여성 미화원들과 함께 지상 재활용장으로 옮기려고 내가 도움을 청한 일이 있었다. 소장이 하는 말은 두말없이 따라줄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그런 건 외부 차를 불러서 해야 한다며 뒷짐만 짓고 옆에 서있었다. "아니, 반장님, 어찌 이럴 수 있죠...?" 그는 너무 나이가 들어 힘들어서 못하겠다는 듯한 태도로 우물쭈물하고 있었다. 같이 힘을 합쳐 처리하자는 것이었는데, 전혀 의외의 반응을 보여서 여간 실망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나는 일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아쉬웠고, 총괄 지휘자로서의 영(令)을 세울 필요가 있다는 것을 절감하였다. 주민들은 연로한 경비원들이 다소 부족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인정에 끌려 양보할 수도 있겠지만, 소장은 그래서는 안 된다. 어떻게든 일이 돌아가도록 해야 할 책무가 있다. 미안하지만, 그렇게 할 수 있는 조치가 필요하다는 걸 그 자리에서 절실히 느꼈다. 한편, 이미 주민들의 눈밖에 난 신 반장도 같이 취급되며 역시 암암리에 연내 퇴출의 수순을 밟고 있었다.



퇴출 압박은 관리사무소에도 현재 진행형이다. 내년이면 67세가 되는 왕 주임 얘기다. 7년째 기전직 촉탁직원으로 근속 중이어서 각종 시설도 잘 알고, 아는 주민들도 제법 많다. 하지만, 일을 하는 태도가 안일하고 책임의식이 약하다는 것이 주민들과 몇몇 동대표로부터 종종 들려와 곤혹스럽게 하였다. 하긴 내 눈에도 만족스럽지 않은 구석이 좀 있기는 하였다. 다소 힘들기는 하더라도 지난 추석 전까지는 마무리지어주기를 기대했던 지하주차장 트렌치 청소를 하다 만 것은 정말 실망스러운 일이었다. 뭘 물으면, 긍정보다는 부정적인 답변으로 응수하는 태도도 마음에 들지 않지만, 대안 없는 말만 늘어놓는 태도는 더더욱 나를 화나게 하였다. 그 나이에 이르도록 주임으로만 일하며 굳어진 탓인지 모르겠지만, 결코 좋게 평가할 수가 없었다. 방귀깨나 뀐다는 몇몇 주민들은 왕 주임을 빨리 정리하라고 나에게 은근한 압박을 가해왔다. 너무 오래 근무하면 그렇게 나태해지기 십상이니 그런 사람은 하루빨리 내보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미 무기직이 돼있는 사람을 자르기란 쉽지 않다. 법 따지고, 규정만 들먹이는 내가 그들 눈에는 답답하게 보였을 것이다. 필요할 때에는 해고를 잘하는 것도 소장의 능력이라고 보는 일각의 시선이 곤혹스러웠다. 그들은 나를 보고 좀 악해지라며 미묘한 웃음으로 압박을 가하였다. 취업규칙에 의하면, 촉탁사원의 정년은 70세로 규정되어 있다. 관리사무소 사정상 그것을 금과옥조 처럼 반드시 지켜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필요하면 써먹을 수 있는 명분과 근거가 될 수는 있다. 지난주, 왕 주임과 다시 3개월 단기 계약서를 쓰기 전, 얘기를 나눠봤더니 그는 70 넘어서까지 일할 생각은 없다고 하였다. 그 말을 뒤집어 보면, 지금 물밑 움직임이 그렇다 하더라도 앞으로 몇 년은 더 일하고 싶다는 뜻으로도 비쳐져서 걱정스러웠다.



소장은 촉탁직 적용을 받지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마냥 안전할 수가 없기는 다른 직원들과 다를 바가 없다. 지난달, 정기 입주자대표회의를 마치고 나서 박 이사가 나에게 핀잔하는 소리를 한마디 던지고 갔다. 내가 행정직 출신이라서 기계나 시설 등을 잘 모른다며, 소장을 뽑을 당시 자신이 그 점을 간과했다고 말하였다. 후회가 된다는 뜻이었다. 그 반대도 생각해볼 수 있었을 텐데 왜 그렇게만 보나. 경우가 좀 지나치다고 생각하였지만, 치사하게 항변하고 싶지는 않았다. 누구나 생각이 같지는 않을 테니까. 이렇듯 그만둬야 한다면 받아들이기에 따라 그 이유는 어디든 널려 있었다. 물 위에 떠있는 나룻배가 어느 파도에 뒤집어질지 모르는 것처럼 관리사무소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처지가 항상 그러하다는 걸 되새김질하였다. 같은 문제라도 나이가 더 든 사람들에게 그 압박감은 훨씬 더 크다. 일을 찾는 사람들이 차고 넘치는 마당에 각자 한계에 가까워지고 있는 자신의 연령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지금 있는 자리에서 끝내 물러나야 한다면, 그 자리가 단돈 몇 푼이라도 벌며 일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 거기서 물러나면 과연 또 다른 기회가 있을 것인지 결코 장담할 수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나이 든 사람들에게 그만 자리를 내놓으라는 신호가 오면 그래서 힘들고 서글프다. 우리 사회의 적지 않은 어르신들이 겪는 모습이자 머지않은 미래의 내 자화상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 기분이 씁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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