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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day Jun 02. 2022

후르츠케이크를 먹는 순한 시간

후르츠케이크

한적한 일요일, 동네 케이크 가게에 왔다. 주문하려고 카운터 쪽으로 가니 쇼케이스 속 한 케이크가 눈에 띄었다. 오랜만에 보는 얼굴에 절로 나오던 미소. 들뜬 마음으로 후르츠케이크를 주문했다.


키위와 오렌지, 체리가 모인 케이크. 개성과 매력이 제각각이라 어디서든 상큼함을 내로라하는 성격들인데, 푹신한 제누와즈와 생크림 사이에 있으니 한껏 얌전한 모양새다. 후르츠케이크에 들어가는 과일은 대부분 키위, 오렌지, 체리, 딸기와 같이 신맛을 품는 녀석들이다.

옹기종이 모여 있는 꼴이 귀엽기도 하고 재밌어서일까. 후르츠케이크를 먹을 때면 마음속으로 한 번쯤 후르츠라는 단어를 읊게 된다. 그 어감이 말랑말랑한 게 꼭 과일들이 만들어낸 하나의 단어 같기도 하고. 어쩐지 그 안에 있으면 하루하루를 젊고 밝게 살 것 같다.

 

후르츠케이크는 사계절 어느 때에 먹어도 어색하지 않다. 그들의 세계는 다양해서 계절에 따라 이웃 과일들이 이리저리 오가기도 하고, 첫 만남에도 다 함께 푹신한 빵 시트에 모여 쉬기도 한다.

후르츠의 세계는 영원한 일요일이다. 좋아하는 이자카야에서 마시는 시원한 맥주, 바람의 이동에 따라 천천히 거니는 오후 산책, 강물 따라가는 조깅, 휴일의 드라이브, 둘만의 시간, 한바탕 늦잠과 비몽사몽 점심, 조그만 사건에도 생생히 살아있는 시간들, 소소한 일상을 마음껏 가볍게 사랑하는 시간들.

 

제누와즈가 심히 부드러워서 포크질을 조금만 잘못해도 키위와 오렌지가 우르르 몰려나온다. 후드득 쏟아지는 마음처럼. 그래서 과일케이크를 좋아한다. 꼭꼭 숨어있지 않고 잔뜩 반겨준다. 이날도 마중 나온 키위의 마음에 잔뜩 설렜다.

만드는 이의 취향과 세심한 손길을 느낄 수 있는 케이크. 침대에 편히 누운 오렌지와 키위의 몸 위로 새하얗고 도톰한 마음 하나가 떨어진다. 곧 스패출러로 그들을 부드럽게 쓰다듬는 파티시에. 사계절 내내 후르츠한 그들의 세계, 그들의 집. 오늘 중 가장 순하고 솔직한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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