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스타치오살구타르트
계절마다 나무에게 어울리는 옷이 있듯 케이크 속 과일에게도 그에 어울리는 크림이 있다. 뭉근하게 허물어지는 바나나에는 진한 초코크림이, 밝음의 상징인 딸기는 마스카르포네 생크림이, 감정적인 레몬에게는 잔잔한 얼그레이크림이 자연스럽다.
피스타치오크림과 살구의 만남은 한껏 성숙해진 두 사람의 만남이다. 살구는 자두나 복숭아가 지닌 앳된 소녀 이미지와는 달리 한층 더 성숙하다. 지는 노을, 한여름 한껏 달아오른 단호박의 뺨처럼 짙은 주황의 살구는 겉보기엔 여리고 어려 보여도 그 속은 침착하고 여유 있다. 그래서인지 7월의 살구에서도 그런 관조의 맛이 났다. 예민하지 않은 삼삼한 물결처럼 영혼까지 부드러웠다.
피스타치오크림은 자칫 밋밋하고 느끼할 수 있어서 주로 체리나 라즈베리와 같은 경쾌한 과일과 어울리는데, 조신한 살구와의 조합은 살짝 의아하면서도 기대가 됐다. 크림을 슬쩍 떠먹자 고소함이 먼저 왔다. 알고 보니 100% 피스타치오크림이 아닌 아몬드분말이 첨가된 피스타치오다망드크림이었다. 그 위에 살며시 올라간 바닐라크림. 두 가지 크림과 파트 사브레, 살구의 즐거운 결합을 입안에서 오래 즐겼다. 안정적인 관계. 서로에 대한 신뢰가 늘 최상인, 안일한 사이. 주름 하나 없는 반듯한 마음. 오랜만의 여행에 공항을 거니는 여유로운 마음. 그런 맛이었다.
가끔 시큼한 살구도 있었다. 그것은 미숙한 짜증이나 반항이라기보다 이유 있는 방어였다. 예고 없는 신 맛을 접한 나조차 미간 하나 찌푸리지 않고 자연스레 넘기게 되던, 여유와 포용의 과일 살구.
마지막 포크질은 한 채의 집과 같았다. 머물고, 머물게 하고, 돌아오고, 돌아가는 포용의 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