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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금신고

어제도 오늘도, 쓸모 있는 사람

by 이루고

열심히 노력하다가 갑자기 나태해지고, 잘 참다가 조급해지고, 희망을 꿈꾸다 절망에 빠지는 일을 반복하고 있다. 그래도 계속 노력하면 수채화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거라 믿는다. 만약 그게 쉬운 일이었다면, 그 속에서 아무런 즐거움도 얻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니 계속해서 그림을 그려야겠다.

「 빈센트 반 고흐 」



타닥타닥. 홈택스...

5월 종합소득세 신고... 클릭.




작년 11월.

일주일 간의 갑작스러운 입원 후, 배에 물이 차기 시작했다.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정기적으로 병원에 다니고 있었으니까.


코로나 이후, 대학병원 토요일 진료는 중단되었다. 외래진료는 평일에만 가능했다. 월차도 연차도 없던 작은 중소기업에 다니던 나는. 평일 근무를 빼달라는 말을 하기가 눈치 보였다.


12월 말까지 계약되어 있었고 곧 재계약을 앞두고 있었다.

퇴원 후, 첫 출근 날.

"갑작스럽게 자리를 비우시니까 조금 당황스럽네요. 혹시 이런 일이 앞으로도 반복될 가능성이 있을까요?"라는 말을 들었다. 병이 있다는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 그 질문에도 그렇다고. 말할 수가 없었다.


불이익을 당할까 봐. 두려웠다.


12월 20일. 정기 외래 진료가 잡혀있었다. 근무를 빼달라는 말을 꺼내려 용기를 냈다가도, 그때의 질문이 자꾸만 떠올랐다. 일어났다 앉았다를 반복하며 그저 자리를 서성일 뿐이었다. 외래 날짜를 결국 1월 초로 미뤘다. 그때 생길 며칠의 휴가를 이용해 다녀오면 될 거라 생각했다. '고작 2주잖아'라고 말하면서.


맞는 바지 사이즈가 없어졌지만, 별거 아니겠지 하고.

한 달 전부터 숨이 찼지만, 빈혈 수치가 안 좋아서 그런가 보다 하고. 넘겼다.


'약을 먹고 있으니까, 괜찮겠지.'



1월 3일.

"요즘 이상하게 숨이 많이 차네요. 왜 그럴까요?"


“... 왜 이렇게 늦게 오셨어요?”

배에 차오르 던 물이 조절되지 못한 채, 폐 주변까지 번지고야 말았다. 류마티스 내과에서 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선 상태였다. 종이 한 장을 들고 선, 에스컬레이터에 발을 올렸다. 그때까지도 별일 아니겠지 싶었다. 신장내과. 낯선 네 글자가 적힌 문을 두드렸다.


루푸스 환자라면 누구나 들을 수 있는 말.

가장 듣고 싶지 않았던 단어.

그 두 글자가, 그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이대로 가다간 투석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나는 참, 바보 같았다.
몸이 망가지는 줄도 모르고. 무엇을 위해 그렇게까지 버티며 일했던 걸까.


재계약 제안을 거절했다. 건강상의 이유로 회사를 그만두겠다고 말했다.


업무 속도를 조금이라도 올려보겠다며 샀던 게이밍 파란 마우스.

오후 두 시, 나른해지는 시간.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가득 채워 마시던 민트색 스텐리 텀블러.

외부 출장에서 돌아올 때마다, 수고했다며 자신을 내어주던 하얀색 크록스 슬리퍼.


하나씩, 하나씩 가방에 담았다. 고단한 하루를 언제나 묵묵히 곁에서 응원해 주던 아이들을.

비어버린 책상 앞에 한참 동안 서있었다. 어떻게든 남고 싶었던 그 작은 보금자리를 떠났다.




백수 5개월 차.

장바구니에 들어있는 민소매 하얀색 원피스.

<구매하기> 버튼은 누를 수가 없다. 바뀌어버린 통장 잔고 앞자리는 감추려 해도 감출 수 없는 커다란 불안감을 데려왔다.




오늘, 종합소득세 정기신고를 했다.


‘그래, 나도 작년까지 일했었지.’


한때는, 나도 쓸모 있는 사람이었구나.


돈을 번다는 게 전부는 아니라는 걸, 안다.
살아 있다는 것. 그 존재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걸, 안다.

지금 해야 하는 일은 건강을 회복하는 일이라는 걸, 안다.

잘할 수 있는 일, 좋아하는 일을 찾아가는 시간으로 이 나날들을 써도 괜찮다는 것도 안다.


그럼에도.

혼자 거실에 앉아, 모두가 분주히 아침을 나서는 모습을 바라볼 때면.

가끔, 내가 쓸모없는 사람처럼 느껴진다.


이따금씩 방 안을 가득 채우는 불안과 자책.

이 감정들을 애써 밀어내고 싶지는 않다.


세금신고를 하면서 나 자신에게 수고했다고. 고생했다고. 말해줄 수 있다는 건

세금신고를 해야 하는 사랑하는 사람들이 그만큼 고생하고 있다는 뜻이니까.

그들을 존중하고, 감사해야 한다는 뜻이니까.



나는 바보였다.

기준을 내 안이 아닌, 밖에 두고 살았다. 나를 잃어가는 줄도 모른 채.


오늘 나는, 더 아프지 않고 하루를 보냈다.

아침과 점심을 챙겨 먹고 따듯한 햇살 아래를 걸었다.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좋아하는 소설을 읽었다.


나는 참 잘하고 있다.


어제보다 더 나은 내가 되기 위해 조금이라도 애썼다면

그건 쓸모 있는 하루를 보냈다는 뜻이고

그 하루를 살아낸 나는 쓸모 있는 나였다는 뜻이다.



그저, 조금 더 쓸모 있는 내가 되기 위해.

건강한 저녁을 만들러 부엌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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