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네버더레스 Jul 30. 2024

마룻바닥




어릴 적 초등학생 때는 일주일에 한 번씩 가지각색의 마룻바닥을 왁스로 청소하는 날이 있었습니다.

나무 책상을 뒤로 모두 밀고 왁스통을 들고 주걱으로 치약만큼 톡, 톡 바닥에 떨어뜨리면 

친구들이 꼬깃꼬깃 집에서 가져온 걸레로 바닥을 광이 나게 닦았죠. 

청소를 하는 날이면 수건장을 열고 색이 바랜 수건을 찾았습니다. 

'93년도 OO체육대회 기념'으로 받은 낡은 수건이 제격이었습니다. 겉은 꺼끌꺼끌해졌고 수건의 끝은 올이 풀려있었죠. 색도 원래 하얀색이었던 것 같은데 지금은 회색빛이 도는 수건이었습니다. 

청소를 하고 나면 새 집처럼 오래된 교실이 빛이 났고 다음 날 아침 등교를 하면 교실에 

나무향기와 왁스냄새가 뒤섞여 오묘한 편안함을 주었던 것 같습니다.


오늘은 하루종일 걸레질을 것처럼 어깨에 힘이 들어가 있었습니다.

시간은 지나고 있고 먹고사니즘에 대한 고민이 깊어지는 시기가 왔나 봅니다.

이상과 현실의 괴리감이 있는 것이야 알고 사는 게 인생입니다만 괴리감이 눈앞에 찾아왔을 때는 

광이 나지 않는 텁텁한 인생의 마룻바닥을 왁스질 해야 할 시기가 온 겁니다. 

걸어가는 길에 대한 자신감이 필요한 거죠.

이상적인 것이 아니냐고 말할 수 있습니다만 전 터무니없는 자신감은 성장의 폭을 무한대로 끄집어내는 좋은 동기요인이라 생각하거든요.

이제 함께 마룻바닥을 닦을 친구들은 사라졌습니다. 

빛바랜 수건 몇 개와 빛바래가고 있는 수건 몇 개, 아직 상태 좋은 놈도 몇 개 남아있네요. 

수건들에는 성장과 실패의 순간들이 '00년도 00 기념'으로 적혀 있습니다.

어릴 적 넓어 보였던 교실이 지금은 작아 보여야 하지만 혼자 서있는 교실은 여전히 넓습니다. 

아닌가, 몇 명 더 서 있나 둘러봐야겠네요. 왁스라도 '톡, 톡' 주걱으로 찍어만 줘도 괜찮습니다.

구석부터 하나하나 해나가야겠습니다. 






이전 17화 스티커 자국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