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에 가게되면 가장 먼저 배우는 표정이 있다. 바로 무표정이다. 혈압 190이 나와도, 끔찍한 상처를
봐도, 환자의 목숨이 위태로워도 의료진은 무덤덤해야한다. 마음 속으로는 놀라고, 무서워도 환자앞에서는 절대 티내면 안된다.
실습 첫 날 오티에서 가장 중요하게 공지받는 일도 바로 무표정이다. 혈압이 높거나 체온이 높아도 환자앞에서 호들갑떨지말 것. 조용히 바이탈을 재고와서 간호사 선생님께 보고할 것. 무표정을 마음에 새겨놓고, 환자분들의 치료를 묵묵히 케어하는 간호사 선생님들을 보면서 무표정을 가장 먼저 익힌다.
산후조리원 드라마를 보면 무덤덤한 의료진에 대한 묘사가 나온다. 환자는 아파죽겠는데, 무표정하게 자기 할 일을 하는 의료진이 비춰진다. 그게 참 매정
하고 무뚝뚝해보인다. 유튜브 댓글에는 분만을 하면서 겪었던 무뚝뚝한 의료진에 대한 성토가 이어진다. 하지만, 컨베이어벨트처럼 이어지는 출산과정은
신속하게 이뤄진다.
한 번은 실습하면서 200이 넘는 혈압을 보고 환자 앞에서 놀란 일이 있었다. 120/80이 정상인데 200이라니 얼마나 높은 수치인가. 간호사 선생님께 알려서 의사 처방을 받아 혈압을 내리는 약을 드려서 수치가 내려갔지만, 이미 나는 환자와 보호자 앞에서 놀라버렸다.
그랬더니 환자와 보호자는 엄청나게 불안해했다. 내가 놀란 순간부터 큰 병에 걸렸을지도, 잘못될지도 모른다는 마음을 가지셨다. 왜냐면 간호사나 의사선생님은 큰 일에도 잘 안 놀라기 때문이다. 그들은 스테이션에 와서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고, 다시 무표정한 모습으로 환자에게 가신다.
내가 놀라면 환자는 더 불안해한다는 걸 깨닫게 된 때가 그 때이다. 그리고 나는 실습에서 좀 더 포커페이스를 유지하기 위해 애쓰게됐다. 환자에 대한 마음케어는 필요하다. 하지만, 어려운 치료 과정이 끝나고서 시행해야한다. 무표정하게 자기 할 일만 하는 의료진을 너무 미워하지 않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