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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니엘 Oct 15. 2024

회사를 놀이터로 만들다

그녀의 회사 생활



회사 생활 10년 차, 나는 회사가 놀이터 같다.

내 많은 취미 생활 중 하나처럼 느껴진다면 이상할까.

회사에서 일을 적당히 한다는 것이 아니다. 나는 출근해서 루틴하게 돌아가든 갑작스레 일이 빵 터지든 오늘도 어떻게 하면 재밌게 보낼까를 고민한다. (물론 쉬엄쉬엄 하는 날도 안락하고 월급루팡 같이 느껴져 좋다. ㅋㅋ)

 

이것은 내가 주체적으로 일하고 있기 때문이다. 주인의식은 내가 사장처럼 끝없이 열정가지며 일하는 것이 아니라 내 인생에 회사가 주는 의미를 잘 조율하고 있다는 의미라고 생각한다.



매년마다 내가 겪은 업무들을 크던 작던 기록 하며 포트폴리오를 만들어나간다. 어떤 새로운 일이 생긴다면 그것은 새로운 경험일 테니 내 기록장에 추가가 되겠지. 재밌다. 본사에서는 억지로 금요일마다 주간 업무 보고를 작성하였다면, 지점에서는 아이처럼 신나서 '나 이만큼 더 매출 올렸어요!' 보여주고 싶다.



지점은 '워라밸'이 잘 되어 있는 분위기와 사무실에 꼭 들릴 필요가 없다는 이점으로 퇴근 시간이 되면 소리 없이 사라지면 되었다. 일주일에 주 40시간만 맞춰 일하면 되니 아침에 운동을 갔다가 상쾌한 마음으로 회사를 가기도 했다. 하루에 만오천 걸음 걷는 뚜벅이 생활로 회사원의 고질적인 문제인 거북목, 허리 디스크, 눈 시림, 어깨 결림과 같은 건강 염려에도 벗어났다. 자유롭게 움직이며 생활하니 하루가 후딱 지나갔다.


너무 좋은 일상의 행복이 많은데? 땡큐!





내게 가장 뿌듯하고 행복했던 회사 라이프를 이야기하라면 "아빠와 출퇴근 함께 하기"이다.

마침 내가 발령받은 지점은 아빠 회사와 출퇴근이 비슷했다. 키비키야! 운이 좋았다. 자연스럽게 아빠 차 옆좌석은 내 자리가 되었다.



아빠와 대화를 많이 해본 적이 있는가? 내 기억 속 아빠의 모습은 '고등학교 시절, 눈 내리는 겨울에 좋아하는 해리포터 영화를 함께 보러 갔다가 옆에서 졸고 있는 아빠를 발견한 순간'이라던가, '고등학교 시절, 12시까지 학교에서 공부하던 딸이 걱정되어 학교로 마중 나왔던 순간' 등등 생각보다 오랜 시간을 함께 한 적이 없었다. 아빠는 내 옆의 당연한 존재였을 뿐, 20대의 바쁘게 살아온 시절동안 슬프게도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직장 덕분에 나는 '아빠와의 출퇴근'이라는 너무도 소중한 시간이 생긴 것이다. 40여 분의 막히는 출퇴근 거리를 슝슝 돌파하는 아빠를 옆에서 바라보았다. 아빠는 이 길을 20년 이상 다니고 계셨다. 그 기나긴 에 내가 반짝이며 들어온 것이다. (아빠 눈엔 귀찮은 빈대일 수 있다. ㅋㅋ)



벚꽃이 흩날리는 봄날을 드라이브하며 지나갔고, 이팝나무 조팝나무 헷갈리는 나무의 이름을 알려주시며 여름을 시작하였으며, 풍성한 가을 단풍잎들 사이로 운치를 즐겼다. 눈이 내리면 차가 막혀 지각할까 봐 발을 동동 구르다가 나는 가까스로 도착, 아빠는 지각한 웃픈 기억도 있다.



그렇게 3년. 아빠와 많은 추억이 생겼고, 이야기를 나눴다. 때로는 라디오를 들으며 사회 현실에 대해 토론하였고, 때로는 내 개인적인 고민을 들어주셨고, 때로는 회사 생활 속 조언을 구하기도 했다.  



30대에 이 순간이 주어진 것으로도 '지점행' 선택에 후회가 없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회사를 오래 다니며 '1년에 1 자격증 따기' 취미 생활을 하고 있었다.

최선 다해 열심히 달린 다기보다는, 어차피 있는 시간 뭐라도 재밌게 배워보자는 가벼운 마음이었다.

(가만히 있지 않는 ESTJ의 성향이다.)



첫 해에는 회사 업종이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깊게 알고 싶어서 자격증을 따며 관련 공부를 했다.

다음 해에는 미래를 볼 수 있다는 타로가 신기해서 원리를 알고 나도 점쳐보고 싶어서 타로를 공부했다.


부동산도 알고 민법을 공부해보고 싶어서 공인중개사 1차, 2차를 2년에 걸쳐 땄다. 공인중개사 자격증은 생각보다 어렵고 외울게 많아서 긴장하며 독서실까지 다니며 열심히 준비했다. 다행히 성적 발표날 '만세!' 소리를 질렀다. ㅋㅋ 미래를 불안해하며 걱정할 때, 미래의 직업 중 하나의 무기를 만든 것 같아 뿌듯했다.  



그뿐인가, 회사에서 복지처럼 제공하는 교육들을 찾아다니며 들었다. 해외 살이가 궁금해서 주재원 교육, 카메라로 감성을 살리며 더 잘 찍는 방법을 배우는 사진 교육, 저출산 고령화와 같은 사회 문제를 고민하는 토론 시간... 회사는 내 놀이터였다.



나는 회사를 퇴근하고서 도서관을 자주 다녔고, 남자친구와 서로가 성장하는 뿌듯한 데이트 일상이었다. 이 것은 내가 모든 시간과 관심을 회사에만 몰빵 하지 않았기 때문에 생기는 여유였다. 인생에서 가장 바쁜 시기인 30, 40대라는데 나는 한가해서 할 것을 찾아다녀야 하는 사람이 되었다. 그래서 난 취미와 데이트에 많은 시간을 투자할 수 있었다.



뇌는 쓰면 쓸수록 똑똑해진다. 그런데도 왜 나이가 들면 머리가 나빠진다고 느끼는 걸까? 매일 같은 방식으로만 사용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발달한 부분의 뇌만 사용하고, 약해진 부분에는 자극이 거의 들어오지 않기 때문에 뇌가 일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결국 사용하지 않는 부분들은 녹이 슬다 못해 나중에는 기능을 상실해 버리게 된다. 반면 새로운 자극을 주면 뇌는 나이와 상관없이 신경세포 간의 새로운 연결을 만들어 내며 변화한다. 외부 자극에 따라 끊임없이 신경 회로망을 재배열하며 성장해 나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간 잘하지 않았던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것이 똑똑해지는 지름길이다.

평생 육체노동만 해 온 할머니들은 학교에서 공부하는 동안 훨씬 똑똑해졌을 것이다. 반면 책상에 앉아 일한 사람은 운동을 하거나 몸 쓰는 일을 하면 더욱 똑똑해진다. 이와 비슷하게, 일상과는 구별되는 취미 활동을 하거나 생소한 언어를 습득하고, 미뤄 둔 인문학 공부를 시작하는 등 아이처럼 호기심을 가지고 무엇이든 알고자 노력하는 태도는 언제라도 우리의 뇌를 발달시킨다. 80세가 넘어도 '뇌 가소성'이라는 특성으로 인해 뇌가 퇴화하기는커녕 더욱 발달할 수 있다는 얘기다. p.227

<벌써 마흔이 된 딸에게, 한성희>


운동도 하고, 몸도 쓰고, 취미도 많이 하고!

나는 다양하고 새로운 방식으로 뇌를 쓰고 있었다.


'지점행' 선택은 20대 당시는 회사에서 살기 위해 당연하다고 생각했으나 돌아보면 향후 나의 30대와 40대를 좌우한 엄청난 결정이었다. ㅎㅎ



그리고 내 선택에는 알게 모르게 쌓인 가족력도 있으리라 생각한다.

https://brunch.co.kr/@chick070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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