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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니엘 Mar 26. 2024

여행 가서 어디까지 잃어버려봤니

여행에서 배우는 상실


"유럽에서 소매치기 조심해.

잠깐 한눈팔고 있으면 지갑 없어지는 거 순식간이다~"


많은 사람들이 내게 묻곤 한다. 여행 가서 진짜 소매치기 많냐고.

내가 겪어보기엔 "그다지?"

본인이 어설프게 '내 지갑 여깄소~' 하며 덜렁거리지만 않으면 대부분의 나라는 괜찮은 것 같다.

(프랑스 파리, 스페인처럼 뜨내기 관광객들이 많은 곳은 조심해야 하는 것이 당연지사.)

우리나라도 '눈 뜨고 코 베어 간다'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어디든 사람 사는 데는 비슷한 것 같다.


 



그렇게 자신감에 차 있던 나도 여행에서 '무언가를' 잃어버린 적이 있다.

돈, 카메라, 캐리어 바퀴.

3번의 상실을 통해 나는 따끔하고 맵고 아픈 맛의 감정을 배웠다.




두 번의 야간 버스행 이후 돈이 사라졌어요!


시원한 바람이 기분 좋게 불던 10월의 가을날, 3살 터울 동생과 한 달 동안 터키 여행을 하고 있을 때였다. 여행 막바지에 이르러 터키가 익숙해졌고, 기분 좋은 가을 날씨에 내 마음도 여유로워졌다. 시간을 허투루 쓰는 걸 싫어하기에, 숙소 비용을 아끼고 시간을 최대한 관광집중하기 위해 야간 버스를 타기로 결심했다. (터키는 땅이 넓어 도시를 돌아다니려면 버스 및 비행기가 필수다!)


야간 버스는 누워서 잘 수도 있을 만큼 꽤 매력적인데, 문제는 이틀 연속으로 야간 버스를 잡았단 말이지. 덜컹 거리는 버스 속에서 잠을 고, 버스에서 일어나 하루 종일 도시를 돌아다니며 구경하고, 다시 버스에 올라 잠을 청했다. 그렇게 터키 버스는 우리를 태우고 카파도키아에서 샤프란볼루를 거쳐 이스탄불까지 500km+400km... 2박 3일 동안 거의 10시간 1000km를 달렸다.


@pixabay. 터키 버스는 우리나라 버스랑 비슷한 편이다.


나는 체력이 정말 좋은 편이라 웬만해서는 안 지친다고 생각했다. 군대를 갔다 와서 가장 체력이 좋을 내 동생에 맞먹을 만큼 엄청난 내 열정이었지만, 조금씩 지쳐가고 있던 몸은 그렇지 않았나 보다. 마지막 행선지인 이스탄불에 새벽 6시에 도착해 숙소에서 쉴 수 있었다. 8인 혼성 도미토리에 몸을 뉘었고 돈이 들어있는 조그만 손가방을 머리맡 어딘가에 놔둔 채 곯아떨어졌다. 비몽사몽 누군가가 나가고 들어오는 소리는 들었지만, 피곤했던 내 몸은 움직여지지가 않았다.


몇 시간 동안 잠으로 휴식을 취하고 개운하게 일어나 이스탄불에서의 일정을 다니기 위해 준비하기 시작했다. 이틀간 야간 버스로 지친 몸을 따뜻한 물로 씻고, 사진 찍기 예쁜 옷을 꺼내고, 편안한 운동화를 신고, 오늘의 돈을 쓰기 위해 손가방에 돈은 더 넣.... 어어?? 내 돈????


나도 모르게 하루치 돈이 없어져 있었다. 터키 돈과 달러를 합해 10만 원쯤. 우습게도 한국 돈은 지갑에 그대로 있었다. 이제껏 분실한 경험이 없었기에 당황했다. 돈을 잘 간수하지 못한 나 자신도 짜증 나고, 그간 아껴서 도둑을 배부르게 해줬구나 싶어 더 짜증 나고, 같이 다니는 동생에게도 미안했다. 누군가에겐 툴툴 털어버릴 수 있는 정도의 돈일 수 있지만 나는 몇 만 원도 아끼던 학생의 마음인지라 속상한 마음이 많이 들었던 것 같다. 이미 엎질러진 물- 없어진 돈인지라 마음속에서 털어버리려고 노력했지만, 그날 하루동안 마음 한 구석에 감정이 남아 마음껏 웃을 수가 없었다.




그런가 하면 터키에서 캐리어 바퀴가 빠진 적도 있다. 나와 동생은 기내용 캐리어 하나씩 드르륵드르륵 가지고 다니며 여행을 하고 있었다. 낄낄거리며 동생과 장난치며 수다 떨며 터키의 수도 앙카라 거리를 걷고 있는데, 문득 우리를 스쳐 지나가는 청년들이 우릴 부르는 것이었다.


헤이~~, 캐리어 바퀴 여깄다!
@pixabay. 기내용 캐리어 하나로 한 달 배낭여행은 충분했다.


"헤이! 이거 너네 캐리어 바퀴 아니니? 여기 떨어졌는데?"

엥?? 아뿔싸, 캐리어를 쳐다보니 정말 4개 바퀴 중 하나가 비어 있었다. "오, 땡큐! 테세큐르 에데림!"


오노.. 그렇게 우리는 여행의 중간에 캐리어 바퀴를 하나 잃었다... 그것도 눕혀서 끌 때 안 굴러가는 안쪽 바퀴! 도시 간 이동을 할 때면 아령 들듯이 10kg이 넘는 캐리어를 번쩍 들고 다녀야 했다. 동생 2번 들고, 나도 1번 들고. 그렇게 돌아가며 캐리어를 신주 모시듯 들고 다녔고, 지금에야 웃으며 이야기하는 추억이지만 그때는 정말 너무너무 불편했었다.


이렇게 2주간을 캐리어를 들고 다니니 마지막 행선지인 이스탄불에 도착할 무렵엔 더 체력이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한 달이나 여행하면 일상 속에서 꽤 재미난 일들이 많이 생긴다.




앞의 두 이야기는 사실 에피소드로 넘길 수도 있는 가벼운 사건들이다. 이제 마지막 이야기.


10일간의 추억이 모두 담긴 카메라여, 안녕.


여름휴가로 남프랑스와 스페인을 혼자 10일간 여행을 하고 있었다. 혼자 여행은 사진 찍기가 참 어렵다. 매번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찍어달라고 하기도 그렇고, 우리와 사진 찍는 스타일이 다른 외국인들에겐 부탁해 봤자 내가 좋아하는 느낌의 사진이 안 나온다. 그래서 나는 혼자서 사진 찍기의 달인이 되었다. 평평한 돌을 찾아본다. 그 위에 카메라를 올려놓고 10초 타이머를 누른다. 미리 구상해 놓은 위치와 걸맞은 포즈를 취하며 치즈~ 웃어본다!


그렇게 9일 동안 열심히 찍어댔다. 풍경 사진이고 인물 사진이고.. 10일간 여행이면 이천 장은 거뜬히 넘을 거다. 그렇게 애지중지 재밌게 보낸 시간들. 이제 돌아가기 전 마지막 하루는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끝을 낸다. 당일날 아침, 짐을 정리하는데 왠지 카메라 SD 저장 기기를 바꿀까 하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이때의 나, 내 감을 믿으라고!! feat. 인터스텔라)


'뭐, 마지막 날인데 무슨 일이 있겠어?' 안일하게 넘긴 나는 이미 많이 찍어놓은 사진기를 그대로 들고 여정을 나섰다. 마지막 날의 일정은 가우디의 발자취를 따라다니며 구경하는 반나절 투어. 혼자 구경하는 것보다는 설명을 들으며 돌아다니는 것이 좋을 같아서 당일치기 가이드 투어에 참여했다. 새로운 도시 속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 새로운 지식을 들으니 자연스레 더 정신이 빠졌다.


가우디 대 성당을 보기 위해 지하철을 타던 도중, 너무나 어이없게도 나는 옆 사람과 이야기를 하다가 내 소중한 카메라를 역 의자에 놓고 지하철을 타버리는 어리석은 짓을 하고야 말았다. 뜨! 지하철을 타자마자 "어! 내 카메라! 놓고 왔어요!" 급히 외쳤고, 급히 한 정거장을 되돌아가 그 자리에 갔지만 역시나 카메라는 없었다. 한국에서는 그대로 있거나 분실물 센터에 있었을 수도 있다. 우리나라였으면 실낱같은 희망이라도 있었겠지만. 그곳은 스페인이다. 혹시 몰라 센터에 문의했지만 역시나는 역시나였다.


핏기가 싹 가셨다. 가만히 있어도 훔쳐간대는데, 내 부주의로 카메라를 두고 갔는데 안 훔쳐가고 배길까. 일행의 분위기를 흩트리면 안 된다는 생각에 "아유 괜찮아요~ 어쩔 수 없죠" 하며 센 척 괜찮은 척을 했지만, 깊은 상실 속 흙빛이 되어버린 내 정신은 온전할 리 없었다. 가우디 성당이고 구엘공원이고 그 뒤 일정이 있었지만 난 하나도 집중할 수 없었다. 그날을 함께한 일행들이 안쓰러운 눈으로 내 사진을 틈틈이 찍어주었지만, 난 사라져 버린 내 10일의 추억이 허무하고 그렇게 만든 나 자신이 자책되어 견딜 수가 없었다.


@pixabay. 내 머릿속에만 남아버린 아름다운 풍경들.


스페인 바르셀로나는 내게 그런 곳이었다. 내 10일간의 휴가에 허무함을 남긴 곳. 사진의 의미가 무엇이었을까. 사진을 너무 좋아하는 내가 빈 손으로 돌아가게 된 순간을 잊을 수 없다. 온갖 발랄한 포즈를 해가며 아름다운 풍경과 어우러져 베스트 사진을 찍었던 그 노력이 물거품이 되었다. 특히 라벤더가 예쁘게 핀다고 해서 일부러 6월에 남프랑스 휴가를 다녀왔는데, 그 보랏빛 들판의 향연은 내 마음속에만 남았고 시간이 지나며 희석되어가고 있다. 아비뇽과 아를, 스페인의 각종 거리 등등 아름다운 마을 속의 나, 내 젊은 날의 흔적이 사라지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두고 보자 스페인, 내가 다시 가나 봐라. 이를 바득바득 가는 슬픔이었다. ㅋㅋ

 



돈이 없어졌을 때 내 부주의를 조심하게 되며, 얼른 털어버리고 일상에 복귀하는 연습을 한 것 같다.

캐리어 바퀴를 잃어버렸을 때는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이 없어진다면 느껴지는 소중함을 배웠다.

그리고 카메라... 를 분실했을 때는, 정말 깊은 허무감, 상실, 답답함, 슬픔, 속상함, 자책 등등 온갖 감정의 실타래 속에서 버텨내며 현재에 집중하려는 노력을 했던 것 같다. 때로는 예측할 수 없는 사건을 맞이해 그 속에서 혼란스러워하는 나를 보게 된다. 조금만 지나면 괜찮아진다는 말은 못 할 것 같다. 10년이 지난 지금도 나는 여전히 카메라를, 그 속에 담긴 내 추억을 아쉬워하니까. 다만 그런 시간들 하나하나가 모여서 나 자신이 더 유연해지고 너그러워진다는 생각은 든다. (허, 어쩔 수 없지. 허허)


여행의 묘미란 이런 것이다. 평상시 학교-학원-집, 회사-운동-집 이란 루트에서 벗어나 새로운 경험에 내가 던져진다. 그 속에서 울고 웃고 배우고 성장해 가는 지난날의 나에게 너그럽게 웃음 지어 본다. 


그나저나 삶을 살며 맞이하는 "상실"에는 어떻게 대응해야 가장 좋을까요? 많은 고민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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