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먹는 건 있을 수 없는 일?
맡은 구역에서 cc를 따기 위해 상점들을 들쑤시고 있었다. 몇몇 상점에서 cctv 영상을 확인해 볼 수 있었지만 별다른 소득은 없었다. 이때 동기 윤 기자가 구급 대원 출동과 이송 영상을 확보했다. 뼈 선배는 이제 피의자를 경찰이 연행하는 장면을 구해보자고 했다.
윤 기자와 나는 경찰의 출동과 호송 경로를 추측해 다시 cctv 탐문에 나섰다. 이번에도 윤 기자가 경찰에서 출동하는 장면이 담긴 영상을 확보했다. 이미 많은 영상을 확보했지만 계속해서 탐문을 이어갔다.
오후 3시가 조금 넘었을 때 뼈 선배가 기사 링크를 하나 보내왔다. 해당 cc만 더 시도해 보자는 것이었다. 보도된 영상에는 피의자가 경찰에 붙잡혀 가는 장면이 담겨 있었다. 이미 인근을 수차례 탐문했기 때문에 영상을 보고 몇 번 출구 쪽인지 가늠이 됐다. 지하철 출구 쪽에 도착해 보도된 영상의 각도와 위치를 살펴보니 어떤 상점의 어떤 카메라에 찍힌 것인지 알 수 있었다.
이 상점은 윤 기자와 연행 장면을 확보하기 위해 처음 방문했던 상점이었다. 당시 사장님은 가게 입구를 박스로 막아두며 cctv를 보여주지 않을 테니 기자들은 들어오지 말라고 완강히 거부하셨다. 너무나 단호한 사장님의 태도에 다른 상점들을 먼저 살펴봤던 우리였다.
다시 상점에 방문하니 이미 KBS와 JTBC 기자님들이 와서 사장님을 설득하고 있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사장님은 더 이상 기자들이 찾아오지 않도록 타사와 풀을 하라며 영상을 제공했다고 했다. 영상은 풀이 안 됐고 보도가 나갔다고 하니 사장님은 기사를 낸 기자가 어디 있느냐고 화를 내며 가게를 뛰쳐나가셨다.
기자님을 찾지 못하셨는지 사장님은 다시 돌아오셨고 우리의 설득에 결국 영상을 보여주셨다. 우리는 타사에 확실히 영상을 풀하겠다는 약속을 하고 혹여 다른 기자들이 찾아오면 우리의 연락처를 알려주시라며 명함을 내어 드리고 왔다.
어느덧 오후 4시가 되었다. 뼈 선배는 윤 기자와 나에게 그동안 확보한 인터뷰 워딩을 풀거나 영상을 인제스트 해달라고 했다. 미션을 마친 우리는 타사에서 새로운 단독이 나오는지 계속 체크했다.
이날 출근하면서부터 뼈 선배는 평소 타사 보도를 확인할 때 쓰던 키워드 외에 ‘신당역’을 추가로 넣어 보도 내용을 확인해 달라고 했었다. 큰 강력 사건이 터지니 단독 기사들이 쏟아져 나왔다. 어느 정도 사건이 마무리될 때까지 우리 라인에서는 ‘신당역’ 키워드를 항상 챙겨야 했다. 사소한 것 같지만 이런 경험은 이태원 참사가 벌어졌을 때 보다 발 빠른 대처가 가능하게 만들었다.
뼈 선배는 기사를 쓰러 회사에 들어갔고 나와 윤 기자는 여전히 신당역에 남아 대기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바이스에게 연락이 왔다. 어제 오후 조였냐며 바이스는 물었다.
“중부 형님들이 아무도 귀띔을 안 해주디?”
오후 조였지만 나는 성북서에 있었고, 중부서는 가본 적도 없었다. 바이스는 나와 윤 기자 중 누가 중부 관내를 돌았느냐, 누가 중부서 담당이냐며 계속해서 물었다. 큰 사건을 타사에 물먹은 것에 화가 나신 것 같았다. 카톡으로 묻던 바이스는 답답했는지 전화를 걸었다.
솔직하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그동안 종로서 한 곳만 가봤고, 어제 처음 성북서를 가봤다고 이야기했다. 바이스는 누구 지시로 그렇게 마와리를 돌았느냐고 물었다. 당연히 선배 지시를 받고 그런 것이지만 차마 선배 지시라고 말을 하지 못했다. 뭔가 고자질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내가 머뭇거리자 1진과 이야기하겠다며 바이스는 전화를 끊었다. 바이스와의 전화 내용을 뼈 선배에게 보고했다. 다행히 나와 윤 기자에게 더 이상 이 이야기가 언급되지는 않았지만 아마도 1, 2진 선배들이 바이스에게 많이 깨진 것 같았다.
신당역 대합실에서 계속해서 상황을 지켜보고 있는데 6시쯤 사건 현장인 화장실 앞에 추모공간이 조성됐다. 사실 강력사건이 처음이기도 했고 비상이기도 해서 종일 선배가 내려주는 미션을 완수하기에 벅찼다. 추모공간이 만들어지고 그 위에 올려진 국화를 보니 피해자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이 그제야 느껴지기 시작했다. 공간 조성에 대한 사실을 뼈 선배에게 보고하고 잠시 피해자를 추모한 뒤 대합실로 돌아갔다.
이날은 피해 갔지만 라인 내에서 강력사건이 벌어졌기 때문에 당장 다음날부터 총을 맞거나 일정을 챙길 일들이 생길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예상은 빗나갔다. 다음날 오전에 금융노조 총파업이 예정되어 있었는데 이 기사를 내가 챙기라는 지시가 바이스에게서 내려왔다. 뼈 선배에게 집회시위 기사를 어떻게 준비할지 가이드를 받으며 정신없던 하루를 마무리했다.
- 신당역 살인사건 피해자의 명복을 빕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