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 신앙 일기 1 >

by 이숙재

남편과 연애만 할 때는 정말 아무것도 몰랐다.

그런데 결혼을 하고 명절 무렵 시댁에 첫나들이를 가서 나는 너무 깜짝 놀랐다. TV에서나 볼 듯한 야릇한 광경들이 내 눈앞에 펼쳐지는데 '이건 뭐지?!?!'라는 생각 밖에 들지 않았다. 말로만 듣던 문화적인 충격 그 자체였다.

한 가지 예를 들자면,

밥을 먹을 때 남자 여자 구분해서 따로 먹는 것이다. 물론 밥상을 두 개 차려야 하는 것이다.

그것도 남자들은 거실에서 큰 상 앞에 우두커니 앉아 여자들이 차려다 주는 밥상을 앉아 받아만 먹는다. 그리고 여자들은 부엌 쪽 싱크대 옆에 자그마한 밥상을 차려놓고 먹는다. 좋다, 그것도 이 집 가풍이라면 따라야지 하며 부글부글 타오르는 나를 아무도 모르게 달랬다.

그런데 더 심한 것은,

여기저기 뒤치다꺼리를 늦게까지 하느라 겨우 밥상에 앉아 밥을 먹으려고 하는데... 품위 있게 거실에 앉아 식사를 하고 계시던 남자분들이 식사를 다 하셨으니 나 보고 과일을 깎으라는 것이다. 그것도 남자가 아닌 똑같은 여자분, 큰 형님께서 눈짓을 보낸다.

밥을 먹다가 갑자기 머릿속이 하얘졌다.

‘이건 또 뭐지?!?!!!’

생각할 겨를도 없이 큰 형님이 자꾸 내게 눈짓을 한다.

‘사과, 배 저기 있다!’ ‘빨리 깎아서 남자분들 갖다 드려라!’하고 무언의 압력을 넣기 시작했다.

‘밥 먹을 땐 개도 안 건드린다는데… 이게 뭔 일이지!’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갓 시집온 새색시라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밥 먹다 말고 일어나 과일을 깎아 남자분들께 갖다 받쳤다. 과일을 깎는 내내 ‘나도 우리 친정집에서는 귀한 딸인데... 내가 이 집 하인도 아니고... 엄연히 그렇게 귀한 남자분이 사랑하는 귀한 여자분인데… 이건 뭐지… 이건 뭐야!!!’라는 생각에 설움이 북받쳐 올랐다.


명절이 끝나고 집에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남편과 한바탕 한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남편은 어렸을 때부터 그런 풍습에서 자라서 그런 것들이 전혀 이상할 것도, 아니 오히려 당연하다고 생각했을는지 모른다. 그러나 서울 태생인 나는 너무나 이상하고 기괴한 풍습 중에 하나라 이해하기 정말 힘들었다. 그래서 시댁에 갔다 오는 날에는 거의 차 안에서 한바탕 난리를 치르곤 했다. 서로 이해할 수 없다고... 고래고래... 차가 들썩들썩할 정도로 ㅠ...

처음에 남편도 아내인 내가 이상하리만치 이해가 가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어느 때부터인가 시댁에 가면 설레발을 치며 그동안 내려오던 풍습을 없애기 위해 노력하는 눈치였다(본인 스스로 잘못된 풍습이라 생각하는 건지 아니면 나랑 한바탕 하는 것이 싫어서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내게는 좋은 결과를 가져다준 것으로 ok! ㅎ). 그 덕분인지 이제는 한 밥상에서 같이 밥을 먹는다. 간혹 남편이 설거지를 할 때도 있다 ㅎ. 시댁 식구들은 남편의 돌발 행동에 깜짝 놀라기도 했겠지만 여자들은 은근히 좋아하고 부러워하는 눈치였다.


그런저런 이유로 결혼한 지 30여 년이 지났는데도 시댁과의 마음의 거리는 그리 가깝지는 않다. 결혼 전부터 시부모님 모두 안 계셨고, 위에 두 형님과 아래 동서, 이렇게 네 명의 동서가 있지만, 글쎄... 그리 엎어치고 매치고 할 정도로 친하게 지내는 편은 아니다. 그나마 아래 동서는 대학 동창이라 마음으로 통하는 편이지만 그렇다고 동서들끼리 만나고 하는 일은 거의 없다. 싫어하거나 미워하지도 않지만, 동서 간의 질투, 이런 것도 없지만 왠지 가까워지지 않는 그런 애매한 사이 ㅋ. 아마도 서로 유난스럽거나 요란스럽거나 하지 않고 조용조용한 성품들이라 그럴 수도 ㅎ.


그래서 그런지 정말 창피한 일이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믿음이 없는 시댁 식구들을 위해 기도를 한 적이 거의 없는 것 같다.


지난주 교회에서 전도 대상자의 이름을 쓰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런데 갑자기 시댁 식구들 중 믿지 않는 분들의 얼굴이 떠올랐고 그분들의 이름을 쓰고 싶었다.

‘과연 가능할까?’ ‘철옹성 같은 그분들의 마음이 과연 열릴까?’라는 생각들이 그동안 나를 얽어매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님을 믿는 내가 하나님 믿는 남편을 만나 하나님 믿는 가정을 이루고 살지만, 시댁 식구들을 위해 과연 얼마나 기도했나 하는 생각이 문득 들면서 하나님께 너무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하나님께서 이곳, 믿지 않는 시댁에 보내신 이유가 바로 이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한 자 한 자 정성을 다해 이름들을 써 내려갔다.

그리고

‘내 생각을 버리자!’

‘성령님께서 일하실 때를 기다리며 기도만 열심히 하자!’

‘내가 서 있는 그 자리에서 묵묵히 기도만 하며 때를 기다리자!’

‘너무 성급하게도 생각하지 말고, 욕심도 부리지 말고 천천히 천천히 한발 한발 나아가 보자!’

‘성령님께서 도와주실 것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갑자기 친해지려고 지나치게 노력도 하지 말고, 갑자기 과하게 친절하려고 애쓰지도 말고,

일상 속에서

내가 선 그 자리에서

천천히 서서히......

기도하며 나아가자!


https://youtu.be/2tSN0sQiLe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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