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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숙재 Mar 04. 2024

미역국에 대한 집착

보고프다...  < Life 레시피 >

‘미역국’ 하면 떠오르는 일이 있다. 

몇 년 전에 내 생일날 미역국을 먹지 못해 난리를 쳤던 일이다. 지금 생각해도 너무 지나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나도 나 자신이 이해가 가지 않았고, 옆에서 그냥 아무 대책 없이 당한 남편과 딸아이. 얼마나 황당했을까... 그래도 나의 황당한 행동에도 미안하다고 눈을 못 마주치는 두 사람에게 지금 생각하니 고마울 뿐이다. 참, 착한 사람들이다. ㅎㅎㅎ. 

그 덕분에 요즘은 내 생일날에는 딸아이가 꼬박꼬박 미역국을 끓여주는 호사를 누리고 있다. 난리는 쳤지만, 그래도 좋다.


내게 미역국은 무얼까? 특히 생일날 먹는 미역국 말이다. 


나는 왜 미역국에 집착하는 것일까???


정확하지는 않지만, 나도 잘 모르지만, 왜 미역국에 집착하는지 내 안에 자리하고 있는 미역국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려 한다. 정답은 찾지 못하겠지만, 미역국에 대한 나의 감정을 들여다보아야겠다.


모든 미역국에 집착하는 것은 아니다.  


이건 분명하다. 

모든 미역국에 집착하는 것은 아니란 말이다. 

내가 집착하는 미역국은 생일날 먹는 미역국에 한정되어 있다. 그래서 나는 남편과 딸아이의 생일날에는 아무리 피곤해도 미역국을 끓여내고야 만다. 두 사람 중 어느 누구도 강요하거나 요구하지도 않는데 아내로서, 엄마로서의 의무, 책임감, 거창하게 사랑(ㅎㅎㅎ) 등... 의 이유로 하늘이 두 쪽이 나도 반드시, 꼭 끓이고야 만다. 


그런데 문제는 이것이다. 

내 생일날 식구 중 누구도 내 미역국에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생일날, 즉석 미역국으로 


친정 엄마가 살아계실 때는 내 엄마가 내 생일날 미역국을 끓여주셨다. 두 다리가 성치 못해 질질 끌고 다니면서도 늙은 엄마는 나이 든 딸의 생일날, 미역국을 끓이기 위해 새벽부터 분주하셨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내 생일날 미역국을 끓여 줄 엄마가 없어져 버렸다. 볼 수도, 만질 수도, 냄새를 맡을 수도 없는 아주 먼 나라로 여행을 가셨다. 그때부터 나는 내 생일날 미역국을 먹을 수가 없게 되었다. 엄마가 돌아가신 첫 해는 딸이 입시생이라 딸에게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런데 문제는 남편이었다. 

내 생일날 미역국을 먹지 못한다는 사실에 허전한 마음을 달랠 길이 없었다. 엄마가 내 옆에 없는 것도, 생일날 엄마가 끓여주는 미역국도 없다는 사실에 마음 둘 곳이 없었다. 그런데 그 화살이 그만 옆에 있는, 늘 나를 사랑한다는 남편에게 돌아가고 말았다. 

 

‘사랑한다면서 내 생일날 미역국도 안 끓였어!’

‘엄마도 없는데... 엄마가 끓여주는 미역국도 없는데... ㅠㅠㅠ.’ 


갑자기 서러운 감정이 먹구름처럼 몰려와 나의 감정을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그때 바로 옆에 남편이 보였다. 순간 내 안에 든 아픔을 남편에게 쓸어버리듯이 쏟아냈다(지금 생각해 보면 남편은 길다가 물벼락을 맞은 꼴이었을 것 같다). 


그날 밤, 공부하느라 밤늦게 돌아온 딸과 남편을 앉혀놓고는 일침을 놓기 시작했다. 딸에게는 입시 때까지만 참을 것이고 입시 끝나면 반드시 내 생일날에는 미역국을 끓이라고 명령을 내렸다. 그리고 남편에게는 미역국을 끓이지 못하면 편의점에서 즉석 미역국이라도 사다가 끓이라고 단호하게 말했다(지금 생각해도 웃긴 일이다. 미역국을 끓이는 것은 끓이는 사람 마음인데, 이래라저래라 강요했으니 참... 대단하다. 나란 사람). 

 

그다음 해,

정말 남편이 편의점에서 즉석 미역국을 사다 끓여 놓았다. 

와! 우리 남편도 대단하다. 

내가 말한 그대로 새벽에 나가 편의점에서 즉석 미역국을 사다 끓여 놓았다. 웃기기도 하고 한숨도 나왔지만, 그래도 잊지 않고 최선(?)을 다한 모습에 푸흡 웃고 말았다.


이제는 딸이 끓여준다. 생일 미역국을!


입시를 끝나고 난 딸은 잊지 않고 내 생일날 미역국을 끓여준다. 

잊지 않고 어김없이 끓여주는 딸. 

정말 고맙다. 

엄마 마음을 정확하게 알지도 못할 텐데 그래도 엄마가 원하는 일이라 군소리 않고 꼬박꼬박 끓여주는 딸이 대견하기도 하고 진짜 고맙다. 


나에게 미역국은 엄마에 대한 그리움이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아마도 나에게 미역국은 엄마에 대한 그리움인 것 같다. 내 생일날 먹는 미역국 외에 다른 미역국에는 별다른 감정이 없는 것만 봐도 그렇다. 


나이 든 딸 생일날, 

성치 못한 두 다리를 끌고 다니면서 미역국을 끓이시던 늙은 엄마의 모습을 생각하니 마음이 미여진다. 


엄마가 

그립고 보고프다. 

진하게 우려낸 미역국처럼... 

                                      

                                    

그림 : 김자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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