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유너레이션 모임 다음 날. 강낫또씨는 심한 갈증을 느끼며 잠에서 깼다. 시간을 보니 벌써 오전 11시였다. 유정씨는 거실에서 티브이를 보고 있었다.
“여보. 어제 내가 좀 늦게 들어왔지? 얘기가 길어져서 좀 늦었어.”
강낫또씨가 아내인 유정씨 눈치를 보며 말했다. 유정씨는 평소와 다르게 표정이 어두웠다.
“괜찮아요. 콩나물국 끓여뒀으니까 배고플 때 먹어요.”
“고마워. 근데 무슨 일 있어? 표정이 어둡네? 내가 어제 너무 늦게 들어와서 화 난 거야?”
“아니에요. 모임을 하고 그러면 술 좀 마실 수 있죠.”
송유정씨는 무심한 듯 티브이를 보며 말했다.
“그래. 고마워. 근데 오늘 날씨가 참 좋다. 이따 메가박스 가서 영화나 한 편 볼까?”
강낫또씨는 송유정씨의 기분을 풀어주고 싶었다.
“극장은 복잡하니까 이따 티브이로 영화나 한 편 봐요. 당신 잠깐 여기 좀 앉아 볼래요? 할 얘기가 있어요.”
송유정씨가 뭔가 결심한 듯 티브이를 끄고 강낫또씨를 쳐다봤다.
“응. 잠깐만. 물 좀 마시고.”
강낫또씨는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느끼며 마음의 준비를 하고 소파에 앉았다.
“저 더는 애들 못 가르치겠어요. 너무 힘들어요.”
송유정씨는 고개를 떨구며 조심스럽게 얘기했다.
자신은 초등학교 선생님이 잘 맞는다며 천직이라고 얘기하던 아내. 애들 가르치는 게 너무 재미있다고 얘기하던 아내였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강낫또씨는 궁금했지만 물어보지 않기로 했다. 강낫또씨 역시 회사에 다닐 때 힘들었지만 왜 힘든지 얘기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 알았어. 잘 생각했어. 좀 쉬는 것도 좋지”
강낫또씨가 말했다.
“왜 그만두냐고 안 물어봐요?”
송유정씨가 고개를 들고 강낫또씨를 보며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뭐 이유가 있겠지. 당신이 그냥 허투루 하는 얘기는 아닐 거고.”
“고마워요. 최대한 견뎌보려고 했는데 이제 한계까지 온 것 같아요. 제가 죽는 것보다는 이게 낫잖아요?”
“죽어? 당신이? 왜?”
강낫또씨는 놀라서 물었다.
평소 아내의 성격으로 봤을 때 절대 그런 얘기를 함부로 하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송유정씨는 아무 말 없이 상의를 벗고 옆구리에 생긴 띠 모양의 수포를 보여줬다.
“이게 뭔 줄 알아요?”
“아니. 그게 뭐야? 언제 생겼어?”
강낫또씨는 깜짝 놀라서 물었다. 오돌토돌한 수포가 옆구리에 가득했다.
너무 가렵고 아파서 병원에 가보니까
대상포진이래요.
“대상포진?”
“네. 극도로 심한 스트레스를 받으면 생기는 거래요”
강낫또씨는 아내의 몸에 그런 것이 생겼다는 걸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그래? 난 전혀 몰랐는데. 미안해.”
“아니에요. 당신이 미안할 게 뭐 있어요.”
송유정씨가 담담하게 말했다.
“아니야. 내가 요즘 당신한테 너무 신경을 못 썼어. 회사 그만두고 유튜브 한다고 그쪽에만 정신이 팔려서.”
강낫또씨는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최근 송유정씨는 학교 일로 힘들어 했다. 그녀가 맡은 반에서 왕따 문제가 있었는데 학부모가 교육청에 신고하며 일이 커진 것이다. 담임인 송유정씨는 여기저기 불려 다니며 조사를 받았고 학부모들과 이 문제 때문에 수차례 만남을 가지며 일을 해결하려고 노력했다.
간간이 송유정씨는 그 일을 강낫또씨에게 얘기했지만 강낫또씨는 송유정씨의 말을 귀담아듣지 않았다. 오히려 애들은 싸우면서 크는 거니까 교사인 송유정씨는 너무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고 건성으로 대답했을 뿐이다.
강낫또씨는 예전 자신이 학교 다닐 때를 떠 올리며 큰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때와 지금은 시대가 달랐다. 교사 생활을 8년 동안 해 온 송유정씨도 점점 학생을 가르치는 것에 회의를 느끼고 있던 차였다.
교권이 바닥으로 추락한 학교에서 교사가 느낄 수 있는 만족감과 성취감은 크지 않았다. 맡겨놓은 자식을 가르치는 선생님을 함부로 대하는 학부모와 선생님을 무시하는 학생. 송유정씨는 이런 것이 교사 생활이라면 더는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남들이 모두 부러워하는 선생님이라는 타이틀을 내려놓기로 했다. 남들이 볼 때는 부러운 직업이지만 송유정씨가 느낄 때는 최소한의 자존감조차 지키기 어려웠다.
“당신한테는 미안해요. 저 당분간 쉬면서 몸 좀 추스르고 다시 일 알아볼게요”
송유정씨가 말했다.
“아니야. 무슨 일을 또 해. 이제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당신은 푹 쉬라고.”
강낫또씨가 아내 송유정씨를 껴안으며 말했다.
미세하게 몸이 떨리기 시작하며 아내의 흐느낌이 느껴졌다. 그렇게 강하게 보였던 아내 송유정씨가 조용히 울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