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쾰른 : 뭘 좋아할지 몰라서 다 넣어봤어 3

비스니스 여행자의 세계출장 견문록 22

by chill십구년생guy


갈 수 없는 곳을 가게 하고,
만날 수 없는 사람들을 만나게 하는.



이튿날 아침, 다시 게임스컴 2018의 막이 올랐다. 어제 하루 거친 현장을 겪으며 어느 정도 감을 잡은 덕분일까. 우리는 한결 여유로운 마음으로 쾰른 메쎄에 도착해 관람객 맞이 준비를 시작했다.


미리 전략을 세운 대로, 오늘은 ‘갤럭시티’ 내의 ‘고공 파이프 건너기’ 콘텐츠를 전면에 내세워 체험을 유도했다. 사실 고소공포증이 있는 사람이라면 차마 발을 떼기조차 힘든,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아찔한 콘텐츠였지만, 역설적으로 오직 VR이기에 안전하게 즐길 수 있는 도전이기도 했다.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사람들은 극한의 긴장감 속에서 오히려 더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가느다란 파이프 위에 나란히 올라선 두 친구가 서로 겁을 주고 장난스레 밀어내다 결국 허공으로 떨어지는 모습을 지켜보며, 지켜보던 주변 관람객들까지 박장대소하며 즐거워했다. 그 풍경은 단순한 게임 시연 그 이상이었다. 겁먹은 표정으로 웃고, 추락하면서도 즐거워하며, 다시 한번 붙어보자고 외치는 이들의 얼굴 속에는 우리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전달하고 싶었던 ‘함께 나누는 즐거움’이라는 메시지가 선명하게 녹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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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인터뷰라면 잔뜩 쫄아있던 예전의 내가 아냐



유럽 각지의 게임 전문 매체 관계자들도 우리 부스를 찾았다. 한국콘텐츠진흥원 공동관의 특성상 이들은 여러 참가사를 차례로 돌며 인터뷰를 진행했는데, 짧은 찰나에 우리의 비전과 프로젝트의 정수를 설명해야 했기에 매 순간 단어 하나하나를 선택하는 데 신중을 기했다.


인터뷰와 미팅이 이어지는 와중에도 체험을 희망하는 인파는 끊이지 않았다. 앞에서 내가 관람객 응대와 인터뷰를 맡으면, 뒤에서 친구가 시스템 백그라운드를 기민하게 제어하며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갔다. 시간은 말 그대로 쏜살같이 흘렀고, 정신을 차려보면 어느덧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잘 먹겠습니다



반가운 얼굴도 마주했다. 게임스컴의 인파 속에는 멀리 일본에서 온 관계자들도 적지 않았는데, 그중 대만 출장 당시 인연을 맺었던 파트너사 ‘미디어 쿠보(Media Kubo)’의 담당자를 우연히 만난 것이다. 그녀는 고맙게도 나리타 공항에서 정성껏 챙겨온 일본 간식을 선물로 건넸다. 끝없는 손님 맞이로 몸과 마음이 지쳐갈 때마다 그 달콤한 간식들은 아주 요긴한 ‘생명수’가 되어주었고, 덕분에 바닥난 당을 충전하며 다시 현장으로 뛰어들 에너지를 얻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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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미야게 from 나리타



첫날 푸드코트에서의 충격적인 물가를 교훈 삼아, 우리는 이튿날부터 점심시간만큼은 반드시 행사장 밖으로 나갔다. 쾰른 메쎄 주변은 의외로 식당이 드물어 제대로 된 한 끼를 먹으려면 꽤 먼 거리를 발품 팔아야 했지만, 비싸고 북적이는 전시장 안에서 대충 때우는 것보다 바깥 공기를 쐬며 잠시나마 휴식을 취하는 편이 훨씬 유익했다. 덕분에 우리는 매일 점심마다 독일 전통식부터 중국식 뷔페, 일본 라멘집까지 다양한 국적의 식당을 탐험하듯 도장 깨기 하며 다녔다.


그중에서도 특히 기억에 남는 메뉴는 독일의 영혼이 담긴 길거리 음식, ‘커리부어스트(Currywurst)’였다. 투박하게 썰어낸 큼직한 소시지에 새콤달콤한 커리 소스를 얹은 단순한 요리였지만, 한입 베어 무는 순간 진한 향신료의 풍미와 짭조름한 육즙이 입 안 가득 퍼지는 감각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KakaoTalk_20250530_123122079_02.jpg 바쁜 일정 속 맛있는 음식은 유일한 도피처이자 안식처



사실 식사라기보다는 완벽한 술안주에 가까운 풍미였기에, 결국 유혹을 참지 못하고 맥주 한 잔을 주문하고 말았다. 쾰쉬 라인업 중 하나인 ‘라이스도르프(Reissdorf)’를 곁들여 먹으니, 비록 짧은 점심시간이었지만 그 순간만큼은 치열한 비즈니스 현장을 떠나 느긋한 여행자가 된 듯한 기분에 흠뻑 젖어들었다.



다음을 기약하며



전반적으로 시연과 미팅이 촘촘하게 맞물린 탓에, 정작 전 세계 게이머들의 축제인 게임쇼를 제대로 둘러볼 여유는 없었다. 내가 다른 부스들을 구경할 수 있었던 시간이라곤 출퇴근길에 스쳐 지나가거나, 점심을 먹으러 나갈 때, 혹은 화장실에 다녀오는 길에 멀리서나마 눈동자를 굴리는 것이 전부였다.


그토록 좋아하던 게임들의 로고가 눈에 띄면 아쉬운 대로 휴대폰을 꺼내 재빨리 사진 한 장을 남기고는, 서둘러 우리 부스로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게임 업계에서 처음 사회생활을 시작할 때, 선배들이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내뱉던 말이 뼈저리게 실감 나는 순간이었다. “우리는 가장 좋아하던 취미 하나를 잃은 거야.” 즐기러 온 이들로 가득한 축제의 장에서, 즐기지 못한 채 일해야 하는 업계인의 숙명 같은 것이 느껴졌다.



KakaoTalk_20250530_123122079.jpg 나도 블리자드 부스에 줄서서 히오스 새로운 모드 해보고 싶었다구



하루하루가 정신없이 흘러갔다. 개인적으로는 더 많은 게임을 직접 플레이해 보지 못한 갈증이 컸지만, 회사의 관점에서는 비약적인 성장을 이룬 시간이었다. 부스를 찾은 수많은 방문객의 생생한 피드백을 수집했고, 유의미한 미디어 노출은 물론 글로벌 비즈니스 파트너들과의 소중한 연결 고리를 만들어냈다.


그렇게 우리는 스타트업으로서 달성하고자 했던 목표들을 가슴에 묵직하게 품은 채, 다시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후일담



게임스컴 현장에서 나는 깊은 고뇌에 빠져 있었다. 당시까지만 해도 ‘갤럭시티’의 정체성을 외부에 어떻게 정의해야 할지 확신이 서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것을 순수한 ‘게임’이라 불러야 할지, 아니면 단순한 ‘VR 체험’이라 해야 할지, 제작자인 나조차도 모호한 경계 위를 걷고 있었다.


그러던 중 매체 인터뷰를 앞두고 시연 부스를 찬찬히 훑어보던 순간이었다. 아찔한 고공 파이프 위에서 플레이어들이 서로를 밀치고, 비명을 지르며, 그러면서도 아이처럼 유쾌하게 웃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현실에서는 도저히 마주하기 힘든 낯설고도 생생한 광경이었다. 그 찰나의 순간, 머릿속을 스치는 강렬한 문장 하나가 있었다.


“게임을 통해 갈 수 없는 곳을 가게 하고, 만날 수 없는 사람들을 만나게 하는 가상현실 서비스.”


이 문장은 그날 인터뷰에서 처음 세상에 나왔다. 그리고 훗날, 카카오그룹에 회사를 매각할 당시 우리의 비전을 상징하는 IR 자료의 첫 페이지를 장식하는 핵심 슬로건으로 거듭나게 된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 뜨거운 반응을 이끌어낸 결정적 요소가 실은 예기치 못한 ‘실수’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이다. 전시를 앞두고 급하게 빌드를 완성하는 과정에서 캐릭터 간의 물리적 충돌을 막는 ‘컬리전(Collision)’ 기능을 비활성화하는 것을 깜빡 잊었던 것이다. 그 덕분에 원래라면 허공을 가르듯 서로를 스쳐 지나갔어야 할 플레이어들이 실제 몸을 부딪치며 밀고 당기는 상호작용이 가능해졌고, 이 우연한 물리적 접촉이 예상치 못한 몰입감과 재미를 폭발시켰다.


이 ‘의도치 않은 실수’는 우리에게 기술보다 중요한 가치를 일깨워준 소중한 계기가 되었다. 전년도 도쿄에서 다짐했던 초심, 즉 단순히 신기한 기술력을 과시하는 데 그치지 않고 ‘함께하는 즐거움’을 전하고자 했던 그 진심을 다시금 일깨워준 것이다.


출장에서 돌아온 후, 우리는 갤럭시티의 모든 콘텐츠에 상호작용과 협동 요소를 최우선으로 도입했다. 그 결과 그해 11월, 베타 유저들로부터 열광적인 호응을 얻었으며, 대부분 1인 플레이 위주였던 당시 VR 시장에서 ‘멀티플레이 가상현실’이라는 신선한 반향을 일으킬 수 있었다.


쾰른에서의 시간은 우리 팀의 내공을 한 단계 더 단단하게 다져주었다. 그리고 바로 다음 달, 우리는 우리의 초심을 하나로 묶어준 고마운 나라를 향해 또다시 새로운 여정의 닻을 올렸다.




다음편, '일본 도쿄 : 쑥스러운 첫경험과 합리적 의심 1' 로 이어집니다
'비즈니스 여행자의 세계출장 견문록'은 브런치스토리에서 매주 화요일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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