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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칠칠 Jan 14. 2021

벚꽃 그늘 아래서

벚꽃이 지는 속도는 시속 5cm라던데.



    무턱대고 들어간 기온의 골목을 담아내기에는 역시 카메라만 한 게 없다. 기왕 잘못 도착한 거 발이 닿는 대로 걸었던 나는 먼저 골목길에 들어가 민가를 담기 시작했다.



    아파트 대신에 낮은 건물이 많았던 기온에는 그 높이만큼 자란 꽃나무가 가득했다. 건물 사이사이로 들어가면 보이는 아이들을 위한 잔디 공원과 꼭 내 키만큼 자라 닿을 것만 같은 꽃이 가득했다.



    골목길을 걷다 마네키네코 도자기 인형도 발견할 수 있었다. 하나는 말라비틀어졌고 하나는 물을 머금은 화분 앞에 놓인 아주 조그만 마네키네코 인형이 반가웠다.




일부러 배경을 쨍하게 보정해봤다. 첫날에 찍은 사진 중에 가장 마음에 든다.


    그리고 멀리서만 보이던 그 벚꽃. 이 벚꽃 하나를 위해서 이번 교토 여행을 왔지. 벚꽃 나무가 만든 그늘에 쉬던 나는 고개를 들어 벚꽃 나무 사진을 찍었다. 몇 년 전 마지막으로 벚꽃 놀이를 하러 갔을 때는 강변에 흐드러지게 핀 벚꽃을 먼발치에서 구경만 하다 온 게 전부였는데, 직접 떠난 여행에서는 머리 위에 바람 한 번에 비처럼 떨어지는 벚꽃을 볼 수 있었다. 작은 공터 벤치에 앉아 벚꽃 나무 아래에서 한참이나 멍하니 앉아 있던 나는 다시 일어나 발걸음을 옮겼다.



    발걸음이 아래를 향하길래 그에 맞춰 타박타박 걷다 보니 귀 무덤을 발견했다. 새삼 내가 온 곳이 우리 민족의 아픈 역사와 많은 관련이 있는 나라라는 걸 깨달았다. 그 앞에서 잠시 캐리어를 두고 기도하는 시간을 가졌다.




    쭉쭉 강의 밑으로 걷다가 이대로 밑으로만 가다가는 오늘 안에 숙소에 도착하지 못할 것 같아 다시 위로 올라가야 했다. 강을 따라 올라가고 싶어 가모 강변으로 향했다. 버스에서 내렸을 때 봤던 것처럼 강변에는 많은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었다. 보고 싶었던 벚꽃과 이름 모를 하얀 꽃이 한가득 피어 있었다.



    한참 사진을 찍다 다리를 건너 폰토초에 도착했다. 옛 교토의 모습을 간직한 골목길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워낙 사람이 많아서 도대체 어디가 옛 모습인지 알 길이 없었다. 다른 사람들은 밤에 이곳을 방문한다던데 나는 밤에 밖을 돌아다닐 계획은 세우지 않았다. 다만 숙소 근처도 옛 고성이 있는 골목이니 그곳에서 운치 있는 밤 분위기를 즐길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폰토초 길을 따라 쭉 걷다 보면 가모 강줄기가 도심 안으로 흐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방금 다녀왔던 강변보다 이곳에 사람이 더 많았는데, 아무래도 강줄기가 얇아 폭이 좁아서 옆으로 늘어진 벚꽃을 렌즈 안에 꽉꽉 담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캐리어를 열심히 끌던 나는 그 구석에 캐리어를 놓고 위에 앉아 잠시 쉬었다. 여행 첫날부터 제대로 체력 단련을 하는 느낌이었다. 고작 3일 가는 여행인데 왜 그렇게 옷에 욕심을 부렸는지는 알 길이 없다.


    폰토초를 따라 걸어온 길을 확인해보니 조금 더 위로 향하면 산죠 거리가 있었고, 그 거리를 따라 서쪽으로 걸으면 오늘 후식을 먹으려 계획 세웠던 카페가 있었다. 어차피 여행도 마지막 목적지부터 하는데 식사도 후식부터 하자는 생각으로 다시 캐리어에서 일어났다. 나름 알차게 언제 어디서 무얼 먹을지까지 다 계획해둔 여행이어서 발걸음은 거침없었다. 아니다, 무거운 캐리어를 한시라도 빨리 카페에 내팽개치고 싶어서 그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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