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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 이태리 티볼리 #3

이태리에서의 셋째 날 (2016년 6월 19일)

by 정원철


빌라 데스테 ⓒ 정원철

로마에 발을 내딛는 순간 흥미와 감탄 속에 몰입한 나머지 잠시 쉴 사이 조차 없었다. 사실 그게 문제였다. 이곳은 거리의 돌조차도 고대의 숨결이고 탄생의 비밀을 가지고 수많은 이야기로 넘쳐났다. 로마는 나 먼저 봐달라고 나를 지나치지 말라고 나의 지친 다리를 이리저리 끌고 다니는 것 만 같았다. 어제저녁 늦게까지 로마 시내를 돌아다녔다. 며칠 사이에 수천 년의 이야기를 들으려 하니 몸이 부대꼈다. 그냥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쉬고 싶었다. 그래서 아침에 일어나자 즉흥적으로 선택한 곳이 티볼리였고 아무런 준비도 없이 그냥 무작정 떠났다.


DSC01488.JPG 빌라 데스테 ⓒ 정원철

오후 2시 23분에 로마 떼르미니에서 티볼리로 가는 기차에 올라탔다. 로마에서 1시간 거리인 티볼리는 빌라 데스테라는 아름다운 정원을 간직하고 있다. 자동차 이름으로 익숙한 지명이었기에 궁금하기도 했다. 기차가 로마를 벗어나자 잡목의 너른 들판이 계속되었다. 평야의 단순함이 주는 평온함이 있다. 너른 들판이 거의 지평선을 이루었던 고향의 들녘을 보는 기분이었다. 기차는 한 시간 정도를 달리고 티볼리에 도착했다. 로마를 출발할 때 해가 쨍쨍해 더위마저 느껴져 간단한 옷차림으로 출발했었다. 그런데, 티볼리는 소나기가 한바탕 세차게 내렸고 제법 쌀쌀하기까지 했다. 한기를 느끼는 것도 잠시 티볼리에 도착하니 작고 소박한 마을에서 온기가 느껴졌다. 티볼리는 빌라 데스테라는 정원을 품고 있다. 이 정원이 여기에 온 이유였다.

DSC01416.JPG 빌라 데스테 ⓒ 정원철

이곳은 이탈리아 정원 예술의 걸작으로 평가되고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도 지정된 곳이었다. 분수정원으로 유명세를 탄 이곳의 분수들은 인간의 상상력과 아름다움에 대한 경외심을 갖게 했다. 데스테 별장 건물을 중심으로 웅장한 넵튠 분수와 그리스 사산의 여신 디아나를 상징하는 네이처 분수를 보면 누구나 이 곳의 매력에 반할 것이다. 대평원을 굽어보고 있는 이 별장 정원의 주인은 교황 선거에서 낙선한 추기경이 마음을 달래려고 만들었단다. 종교계의 권력 다툼이 이 아름다운 정원의 탄생 비화라니 좀 실소했다. 사방에서 들리는 물소리들이 어디선가 불어온 바람에 실려 정원에 가득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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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SC01456.JPG 빌라 데스테 ⓒ 정원철

티볼리는 여행의 일탈이었다. 일상과 같은 여정에서 잠시 벗어난 것이었다. 애시당초 모범생이 되기는 글렀다. 정형화된 삶에 대한 참을수 없는 염증을 일으키는 유전자가 내 안에서 다시 활개를 쳤다. 여행 13일 만에 미리 계획해 놓은 일정을 허물어 뜨렸다. 무작정 가고 싶은대로 발길을 돌린 날이었다. 지나온 인생이 이와 비슷했다. 잘 다니던 직장도 이런 식으로 다른 길로 접어들었다. 오늘 같이 재수가 좋은 날은 천상의 정원을 걸었다. 그렇지 않았다 해도 실망하지 않았을게 분명했다. 나에게는 새로움에 대해 촉감하고 삶의 지면에 의미있는 일로 적어놓는 변형된 유전자가 있었다. 정원의 돌담을 손으로 쓰다듬으며 지났다. 손에서 다듬어 놓은 돌담이 까끌거렸다. 로마로 돌아갈 시간이 넋을 놓은 발길을 돌려 세웠다.

DSC01403.JPG 빌라 데스테 ⓒ 정원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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