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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 스위스 융프라우 #2

스위스에서의 둘째 날 (2016년 6월 14일)

by 정원철
DSC00892.JPG 융프라우로 가는 길 ⓒ 정원철

아침부터 마음이 분주했다. 간단히 챙겨 담아놓은 백팩을 열어 짐을 꺼내 보고 다시 담았다. 오늘 알프스의 융프라우를 다녀올 생각에 어젯밤 잠도 쉽게 들지 못했다. 아침 8시 04분 베른에서 인터라켄으로 가는 유레일을 타기 위해 호텔을 나왔다. 인터라켄에 도착하면 융프라우요흐까지 가는 등산 전차는 그륀델발트로 또는 라우터브루넨 두 갈래 길이 있다. 이 두 길 모두 클라이네 샤이데크에 도착하고 이곳에서부터 해발 3,454미터에 있는 융프라우요흐 전망대까지 산악기차가 간다. 아침 9시 35분 라우터브루넨을 지나 융프라우요흐 전망대로 가는 산악기차를 탔다.



20160614_084724.jpg 융프라우로 가는 길 ⓒ 정원철

융프라우를 향해 달리는 기차 안에서 밖을 내다보았다. 잔뜩 흐린 하늘이 이불솜처럼 알프스를 덮고 있었다.스위스의 풍광이 흑백사진을 찍듯이 내 동공을 통해 마음에 새겨졌다. 뜬금없이 내 나이 스무 살이 떠올랐다. 융프라우에 오고 싶었다. 지난 시간으로 끌어당기듯 기차가 한없이 가는 동안 구름은 참회의 눈물을 한바탕 쏟아냈다. 알프스는 촉촉한 물기에 슬프게 젖어 있었다.



DSC00891.JPG 융프라우로 가는 길 ⓒ 정원철

알프스를 휘감고 있던 구름들이 바람에 휩쓸리 듯 흩어졌다. 구름의 장막이 걷히자 코발트색 하늘 아래 만년설로 뒤덮인 알프스가 살짝 얼굴을 내비쳤다. 그리고, 이내 다시 구름을 끌어모아 장막을 쳤다. 알프스는 시야에 가두어 보려는 나의 헛된 욕망을 비웃고 있었다. 어떠한 말과 사진으로도 알프스를 담을 수가 없었다. “그 옛날 카르타고의 명장 한니발이 어떻게 저 산을 넘었을까?” 기차는 알프스의 허리춤을 움켜 안고 오르고 또 올랐다.



DSC00893.JPG 융프라우로 가는 길 ⓒ 정원철

아침 10시 07분 클라이네 샤이데크를 출발한 기차는 11시 50분 융프라우요흐 전망대에 도착했다. 기차에서 내리니 처녀의 신 ‘알프스’는 수줍은 처녀처럼 구름 뒤에 숨어 있었다. 구름은 마치 하얀 천이 휘감듯 알프스를 감싸 안았다. 그리고 어느새인가 살풀이 춤 꾼의 손에서 무명천이 미끄러지듯 흘러내렸다. 융프라우가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이유는 이런 변화무쌍한 날씨이다.



DSC00863.JPG 알레치 빙하 ⓒ 정원철

구름이 물러가고 끝없이 뻗어있는 알레치 빙하가 알몸을 드러냈다. 융프라우가 손을 뻗으면 닿을 듯 눈앞 가까이에 있었다. 이곳에서 흥분을 이기지 못하고 융프라우를 향해 달리는 사람은 3,453M의 높이를 실감한다. 이곳에 같이 온 아이들이 고산증을 호소해 오래 머물지 못하고 그만 내려가기로 했다. 융프라우요흐 전망대에서 신라면 컵라면을 먹을 수 있다. 아이들은 고산증에도 컵라면은 포기하지 않았다. 고산증은 고산증이고 컵라면은 컵라면이었다. 오후 1시 30분 알프스를 내려가는 기차를 탔다.



DSC00865.JPG 융프라우로 가는 길 ⓒ 정원철

구름이 걷히고 밀려오기를 반복해 알프스를 제대로 보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다. 그 아쉬움을 처녀의 신이 알았던 것일까? 산악기차를 타고 내려가는 길에 알프스는 구름을 걷어내고 온전히 자태를 드러냈다. 알프스의 속살을 온갖 꽃들과 연녹색의 풀들이 빈틈없이 메우고 그 사이를 빙하 녹은 옥빛 물이 흘렀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코발트색 물감을 푼 듯 파란 하늘이 스노우 볼처럼 알프스를 담고 있었다. 알프스를 보는 내내 행복하기보다는 곧 떠나야 하는 아쉬움이 더욱 컸다. ‘돌멩이 하나 풀 한 포기라도 좋으니 너의 곁에서 너의 일부가 되고 싶구나’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오후 5시 인터라켄에서 베른으로 돌아가는 기차를 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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