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작가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라는 책 속에 장미꽃 한 송이의 이야기가 나온다. 어린 왕자가 혼자 사는 작은 별에 씨앗 하나가 날아왔고 장미꽃을 피웠다. 어린 왕자는 그 꽃의 아름다움에 감탄했지만 꽃은 허영과 자만으로 가득했고, 바람막이도 해 주고 밤에는 유리 덮개를 씌워달라는 등 자신만을 위한 일들을 어린 왕자에게 요구했다. 어린 왕자는 아랑곳하지 않고 온 정성을 다해 장미꽃을 가꾸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갈수록 꽃의 이기적인 말에 싫증을 느낀 어린 왕자는 결국 자신의 별을 떠나게 된다. 어린 왕자가 떠나던 날, 장미꽃은 고백한다. 당신을 사랑했었노라고.
어린 왕자가 다른 여러 별을 거쳐 지구에 온 후, 자신의 별에 있을 때를 회상한다. 꽃은 그냥 바라보고 향기를 맡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으며, 꽃이 하는 말로 판단할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판단해야 했었다고 후회한다. 그리고 꽃이 자신에게 투정을 부린 것은 자신을 좋아하고 있기 때문이란 것을 그때는 알지 못했다고 아쉬워한다. 어느 날, 정원에 핀 오천 송이의 장미꽃을 보고선 많은 장미꽃이 아름답기는 하지만 자신의 별에 있는 한 송이의 장미꽃이 더 소중하다고 말한다. 그것은 자신이 물을 주고 유리 덮개도 씌워주며 바람을 막아주고 벌레도 잡아주며 자신의 시간과 정성을 온전히 그 꽃을 위해 쏟았기 때문임을 깨닫게 된다. 어린 왕자는 장미꽃이 있는 자신의 작은 별로 돌아간다.
어린 왕자와 장미꽃의 관계, 동화 속 이야기만이 아니라 우리의 사는 이야기이다. 사람과의 관계, 특히 이성 간의 관계에서 흔히 보는 모습이다. 동성과는 달리 이성 간에는 상대의 속마음을 알기 참 어렵다. 사랑을 속삭이는 사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자신의 내심을 감출 수도 있고, 일부러 강한 척 혹은 약한 척 할 수도 있다. 때로는 이해 안 되는 이유로 상대를 힘들게 할 수도 있고, 자신의 희망 사항을 슬쩍 얼버무리고선 마음을 몰라준다고 서운해할 수도 있다. 자신의 속뜻과는 정반대의 말이 나올 수도 있고, 말과는 달리 행동으로 자신의 진심을 보여 줄 수도 있다. 투정을 부리는 것이 어리광인지 진짜 짜증 난 것인지 알 수가 없는 일이 참 많다. 어린 왕자가 사는 별의 장미꽃처럼 말이다.
사람이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아주 특별한 인연임이 틀림없다. 대중가요 가사에도 있듯이 ‘바닷가 모래알처럼 수많은 사람 중에 만난 그 사람’이다. 확률로 보더라도 로또복권에 버금가는 그를 어찌 귀하게 대하지 않을 수 있으랴.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 말이 있다. 불교에서는 ‘타생지연(他生之緣)’이라고 한다. 다른 생(전생이나 후생)의 인연이란 뜻으로 낯모르는 사람끼리 길에서 소매를 스치는 사소한 일이라도 모두가 전생의 깊은 인연에 의한 것이라는 말이다. 그러므로 어떤 계기로 만남이 시작되었건 간에 귀한 인연인 만큼 그 인연을 소중하게 생각하라는 가르침이다.
요즘은 인스턴트에 페스트푸드 시대다. 모든 것이 급하고 빨리 진행된다.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쉽게 삐치고 쉽게 헤어지며 또 쉽게 다른 이를 만난다. 참을성이 없는 것인지 이성에 대한 자신감이 있기 때문인지 모르겠다. 이 세상에 자신과 꼭 같은 마음을 가진 이는 아무도 없다. 사랑이란 서로 다른 개체가 만나 조금씩 양보하며 함께 자신들의 세계를 가꾸어 가는 것이다. 만남의 시작 때는 호감을 얻기 위해 상대를 위하다가 만남의 시간이 조금만 길어지면 이기적으로 변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데이트 폭력도 그중의 하나다. 물론 나름대로 주장할 이유는 있겠지만 그래도 그것은 이기적인 사랑임이 틀림없다. 만남에서 제일 소중한 것은 상대에 대한 배려다.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는 것, 역지사지(易地思之)가 곧 배려다. 사랑은 정원의 식물과 같다. 물을 주고 기다리며 정성을 들여 가꾸어야 한다. 그러면 상대도 언젠가는 사랑을 주게 된다. 장미꽃이 어린 왕자를 사랑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어린 왕자의 따스하고 정성스러운 손길이 있었기 때문이다.
어수선한 가운데 새해를 맞았다. 소중한 만남을 잘 가꾸어 따뜻한 겨울, 복된 한 해가 되길 기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