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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태화 Jun 01. 2021

커피와 사랑은...

사랑학 개론

세계인의 음료인 커피를 국제커피협회(ICO)에서는 생산지와 품종에 따라 아라비카(Arabica)와 로부스타(Robusta)로, 아라비카는 다시 마일드(Mild)와 브라질(Brazilian)로 나눈다. 이들은 종류에 따라 고유의 맛을 가지고 있는데, 커피 애호가는 품종뿐만 아니라 산지를 굉장히 중요시한다. 같은 품종이라도 산지에 따라 특유의 맛을 가지고 있기 때문인데 신맛, 쓴맛, 단맛 등의 맛은 물론이고 맛의 여운과 깊이 등의 감각에도 미묘한 차이가 있다 하니 파고들수록 오묘한 것이 커피인 듯하다.

사랑은 플라톤이 에로스, 필리아, 스트르게, 아가페로 정의했으며 육체적인 사랑, 도덕적인 사랑, 정신적인 사랑을 거쳐 무조건적인 사랑으로 서서히 발전해 간다고 했다. 사랑은 그 종류에 따라 가진 의미와 차원이 전혀 다르며, 누가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감정의 이입 여부는 물론 크기와 깊이가 달라지는, 인공지능도 슈퍼컴퓨터도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오직 사람만이 가지며 느낄 수 있는 오묘함이 있다.

커피와 사랑은 유사한 점이 참 많다. 커피와 사랑을 통해 서로 느끼고 나누며 쉼을 얻는다는 점이 그렇고, 커피나 사랑의 대상에 대한 선택의 이유를 명확히 설명하기 어렵다는 점도 그렇고, 달고 쓴 맛을 느낄 때도 있지만 참 맛을 천천히 알아간다는 점도 그렇다. 그런데 이런 유사함을 넘어 커피와 사랑은 뜨거워야 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아이스커피도 원두 가루에 뜨거운 물을 사용해서 뽑은 원액에 얼음을 넣은 것일 뿐, 근원은 역시 뜨거움이다.

요즘에는 겨울에도 아이스커피를 마신다. 물론 여름에도 뜨거운 커피를 마신다. 사람들은 취향에 따라 뜨겁거나 혹은 찬 것 중 하나를 선택한다. 미지근하게 된 커피를 사람들은 ‘맛이 없다’라고 한다. 커피의 향이나 내용물은 전혀 변함이 없는데도 말이다. 차거나 뜨거운 것이 '맛'은 분명 아니지만 맛으로 표현할 만큼 큰 비중을 차지한다. 뜨거울 때를 사랑이라 하지 미지근한 상태는 사랑이라 하지 않는다. 에로스 사랑일수록 더 그렇다. 사랑할 때는 하루에도 몇 번씩 SNS로 대화를 해야 하고, 일과가 끝나면 만나야 한다. 시간이 여의치 않으면 조퇴를 불사하는 돈키호테 기질이 나와야 한다. 장거리 연애에서는 이별이 못내 아쉬워 서로가 있는 곳까지 배웅할 정도가 되어야 한다.

사랑은 미쳐야 하고 그것은 뜨거움에서 나온다. 뜨거운 사랑은 내면에서 에너지가 솟아 나온다. 상대를 눈이 아닌 마음으로 보기에 멀리 있어도 지금 무얼 하는지 알 수 있는 천리안이 생긴다. 사랑을 하면 상대에게 먼저 가까이 다가가게 된다. 상대가 원하는 것을 말하기 전에 채워주고 싶어지고, 도움을 청하면 감사한 마음과 함께 모든 것에 우선하여 '제일 먼저'가 된다. 상대를 위해서는 내 것을 포기한다. 자신의 욕심을 채우는 것이 에로스 사랑의 본질이긴 하지만 그 사랑에도 희생이 수반되어야 열매를 맺는다. 사랑은 노력과 희생의 결과물이다.

커피 한 잔을 마시기까지, 커피나무 재배로부터 바리스타에 이르는 수많은 손길을 거친다. 좋은 열매를 위해 커피나무 관리는 물론이고 열매 수확 후에는 과육 제거와 세척, 건조를 거쳐야 하며 크기와 밀도, 함수율, 색깔 관리 등 생두가 출하되기까지 수많은 공정이 필요하다. 로스팅도 9단계의 각기 다른 맛을 내기 위해 불의 온도와 볶는 시간을 달리해야 하고 원두에 따라 적정한 보관과 그라인딩은 물론, 고유의 맛을 내기 위한 커피 추출에도 온 정성을 다해야 한다. 수많은 사람의 노력과 희생의 결정체가 커피 한잔이다.

테이블 위의 커피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잔이 비게 되고 불타는 사랑도 언젠가는 꺼지게 된다. 때가 되면 커피는 은은한 향의 찌꺼기를 남기고, 사랑은 아름다운 추억을 남긴다. 커피의 향기 속엔 그리움을 남기고 사랑의 따스함 속엔 그리운 이의 체취를 남긴다. 길가의 낙엽이 찬바람에 뒹구는 늦가을이다. 이제 곧 겨울이 온다. 뜨거운 커피와 따뜻한 사랑이 그리운 계절이다. 사랑하는 이와 한 잔의 커피를 나누고 싶다. 커피와 사랑은 뜨거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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