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김은 시
하이힐로 담근 도시
김은
유독 귓바퀴에서 윙윙 대는 날파리 소리
살구색 페인트 복도에 조그만 굽소리가 울려퍼지자
하이힐의 늙은 가죽이 툭 툭 벌어져 눈을 섬벅거린다
폼이 없는 외투 때문에 신경질 난 만원짜리 입술이
30년 된 아파트 계단을 돌아오르면
오르면 오를수록 따라오는 노을의 극심한 근성이
계단에 묻은 뾰족한 굽을 서로 잡아채려고 아우성이다
모서리 푹 닳은 빨간 외투에서 풍기는 싸구려 향수
앞으로 몇 년은 더 오를 계단이 벌써 조금씩 부서진다
살구색 고무장갑을 대충 끼고서 아무리 봐도
내 몸 같아 망설이던 나는
대강 건성으로 익은 배추를 삐죽거린다
시들고 벌어져 가슴이 마른 잎사귀 사이로
굵은 소금을 더 한 움큼 잡아서 치고
머리채를 들어올려 브랜드 고춧가루를 석 석 뿌린다
아직도 벌겋게 벗어누운 배추가 부끄러워
쉽게 양념에도 손대지 못한다 그저
조그만 침대 위에서 잔뜩 구겨지고 웅크린 잠에 빠진다
내 가슴에 지어진 장독 돌을 곪고 부러진 손가락으로
하나 둘 돌아가며 슬슬 눌러놓는 사이
꾸역꾸역 흘러나온 빨간 눈물이 자꾸
침대커버에 맛없는 김칫물처럼 번진다.
문예지 [문학공간] 2007
chinaun@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