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어원서 읽기가 힘들다면 모국어책부터

급할수록 돌아가기

by 윤셰프







원서가 어려운 진짜 이유, '문해력의 부재'


출처ㅣ 픽사베이



중국어 원서를 읽다 보면 이해가 되지 않고, 흥미가 떨어지는 순간을 자주 마주하게 된다. 그럴 때 우리는 종종 '내 중국어 실력이 부족해서 그런가 보다'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원서가 어렵게 느껴지는 진짜 이유는 단순히 어휘나 문법의 문제가 아니라, 바로 ‘문해력’의 부족 때문일 수 있다.



문해력이란 글에 담긴 정보를 읽고, 해석하고, 비판적으로 이해하는 능력이다. 원서 독해는 외국어 실력 위에 문해력이 더해져야 가능한 작업이다. 문해력이 약하면, 아무리 단어를 많이 알아도 글의 구조와 맥락, 숨겨진 의미를 파악하기 어려워진다. 그 결과, 원서를 읽어도 재미도, 몰입도도 떨어지게 되는 것이다.


이럴 때는 중국어 원서를 억지로 붙잡고 있기보다는, 한국어로 된 책을 먼저 많이 읽으며 문해력을 키우는 것이 더 현명한 전략이 될 수 있다. 스티븐 크라센의 『크라센의 읽기 혁명』에서는 모국어의 읽기 능력과 쓰기 능력이 외국어 실력을 끌어올리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고 강조한다.



『언어발달의 수수께끼』에서도 “외국어 번역 능력은 풍부한 모국어 어휘력과 문화적 소양에서 비롯된다”라고 설명하며, 국내 최고 외화 번역가인 이미도의 사례를 들고 있다. 이미도 번역가는 영어를 전공한 적도, 유학 경험도 없지만 오랜 시간 쌓아온 '모국어 다독 습관' 덕분에 국내 최고의 번역가가 될 수 있었다. 그는 우리말 실력이 바탕이 되지 않으면 영어를 이해하는 능력도, 표현하는 능력도 뒤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원서 독서를 위한 가장 탄탄한 준비는, '모국어 독서'




나 역시 처음에는 단어만 열심히 찾아가며 원서를 읽었지만, 내용의 흐름이나 인물의 감정선을 놓치기 일쑤였고, 책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모호하게 남았었다. 그러던 중 우연히 들은 한국 문학 강의를 계기로 깊이있는 모국어 독서를 시작하게 되었다. 학창 시절에는 그저 시험을 위해 외웠던 작품들이, 성인이 되어 접하니 너무도 흥미롭게 다가왔다.



<토지>, <데미안>,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와 같은 작품을 읽으며 인물의 직업, 사건의 배경, 상징과 어휘 표현까지 분석하며 책을 깊이 있게 읽는 훈련을 하게 되었다. 특히, 내가 참여하고 있는 '국내도서' 독서모임은 문해력을 더욱 공고히 해주는 중요한 실천의 장이 되었다. 혼자서 책을 읽을 때는 놓치기 쉬운 표현이나 주제도, 함께 읽고 토론하는 과정을 거치며 더 깊이 있는 독해가 가능해졌다.



이러한 경험은 자연스럽게 중국문학 독서에도 적용되었다. 모국어 독서를 통해 키운 문해력이 중국 원서를 읽을 때에도 문장의 깊이와 서사를 파악하는 데 큰 힘이 되어 주었다. 원서를 읽으면서도 인물 분석, 문장 해석, 주제 파악, 문화적 맥락 등을 정리하고 나누는 방식으로 책을 읽다 보니,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책의 구조를 파악하고, 작가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유추하는 능력이 길러졌다. 문장이 아무리 낯설고 단어가 어렵더라도 큰 맥락 속에서 의미를 찾는 힘, 바로 그 힘이 모국어책 독서를 통해 길러졌다. 결과적으로, 모국어책 읽기는 원서 독해력의 탄탄한 기반이 되었다.




분석하며 읽기의 힘, '몰입'



원작에 대한 제대로 된 이해 없이 좋은 번역은 불가능하다. 『번역가 되는 법』에서 출판번역가 김택규는 중국의 대표 번역가 푸레이(傅雷)의 말을 인용한다.


“번역가는 원작을 깊이 이해하고, 체험하고, 느끼지 못하면 결코 독자가 이해하고, 체험하고, 느끼게 할 수 없다.”


좋아하는 작품을 진정으로 번역하기 위해서는 최소 네댓 번은 읽어야 하고, 인물들이 머릿속에 생생하게 그려질 만큼 철저히 분석해야 한다는 말이다. 번역가로서의 기본 자질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푸레이의 이 말은 번역가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원서를 읽는 일반 독자에게도 적용된다.



원작을 진심으로 이해하지 못하면, 그 이야기가 전하고자 하는 감정과 메시지도 제대로 느낄 수 없다. 단어 하나하나를 해석하며 읽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야기 전체의 구조를 파악하고 인물의 심리를 따라가는 분석적 독서는, 책에 훨씬 더 깊이 몰입할 수 있게 만들어준다. 이 몰입이야말로 ‘외국어 원서 읽기’가 주는 큰 즐거움 중 하나이다.



처음에는 어렵고 낯설기만 했던 문장이, 몇 번을 곱씹으며 읽고 다시 보면 어느 순간 그 장면의 정서가 또렷하게 떠오르고, 문장 사이에 숨겨진 의미가 보이기 시작한다. 그 순간 책을 읽는 재미가 배가되고, 읽기를 지속하게 되는 힘이 생긴다. 결국 번역가처럼 ‘분석하며 읽는 습관’은 원서를 더 잘 이해하고 오래 기억하게 만들 뿐만 아니라, 독서 자체의 만족감도 훨씬 깊고 풍부하게 만들어줄 수 있다.







원서를 제대로 읽는다는 것은 단순히 어휘를 많이 알고, 문장을 빠르게 해석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작가가 펼쳐 놓은 이야기 안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가, 인물의 감정과 풍경을 함께 느끼고 생각해 보는 일이다. 그런 독서는 언어 실력을 넘어서 삶의 감각을 길러주는 읽기다. 단어와 문법은 잊어버려도, 그 장면에서 느꼈던 감정은 오래도록 마음에 남는다.



이해가 어려운 문장이나, 지루하게 느껴지는 과한 묘사를 만나면 우리는 흔히 그냥 넘겨버린다. 하지만 그런 문장을 다시 돌아가 읽고, 앞뒤 맥락 속에서 천천히 파헤쳐 보면, 처음에는 놓쳤던 작가의 의도가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한다. 그 과정 속에서 우리는 단순히 ‘읽는 힘’뿐만 아니라, 문장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느끼는 힘’을 기르게 된다. 그리고 그 힘이 쌓일수록, 낯설게만 느껴졌던 중국어 원서도 점점 더 친숙하게 다가온다.



글자만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문장 안에 스며들며 읽다 보면, 작가의 의도와 메시지가 더 또렷하게 다가오고, 그 순간부터 원서 읽기는 훨씬 더 재미있어질 수 있다. 그러니 중국어 원서를 읽을 때 어려움을 느낀다면, 무작정 원서만 고집하지 말고, 모국어 독서를 통해 '제대로 읽는 힘'을 키워보자. 원서를 읽는 즐거움도, 이해도 훨씬 깊어질 것이다. 모국어 책 한 권이, 중국어 원서 읽기의 문을 열어주는 열쇠가 되어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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