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어원서 읽기에 대한 압박
중국어를 더 잘하고 싶어서 원서를 읽기 시작하는 학습자는 종종 ‘책 한 권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어야 한다’는 강박을 갖게 된다. 처음에는 불타는 열정으로 몇 페이지, 혹은 몇 장은 읽어나갈 수 있겠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목표 자체가 부담이 되어 책을 멀리하게 되기 쉽다.
사실 원서 한 권을 완독 하는 일은 번역가에게도 꽤 큰 에너지를 요하는 작업이다. 오랜 시간 텍스트와 씨름하며 의미를 되새기고 맥락을 파악하는 일은 결코 가볍지 않다. 그렇기에 우리는 원서를 완독해야 한다는 부담을 잠시 내려놓을 필요가 있다. 다 읽지 않아도 괜찮다.
유명 작가의 책이나 베스트셀러라고 해서 무작정 읽기 시작했는데, 막상 글의 분위기나 주제가 나와 맞지 않을 수도 있다. 표지나 제목이 마음에 들어 선택했지만, 예상보다 난도가 높아서 흥미를 붙이기 어려운 경우도 있다. 이럴 때는 “시작했으니 끝까지 읽어야지”라는 의무감보다는, ‘이 책은 나와 맞지 않네’ 하고 쿨하게 책장을 덮을 줄도 알아야 한다. 원서 독서는 의무가 아니라 선택이다. 우리에게 맞지 않는 책을 억지로 읽을 필요는 없다.
<고수의 독서법>의 저자 나카지마 아츠시는 “읽지 않은 책에 대한 죄책감을 내려놓자”라고 말한다. 영화평론가 이동진도 “완독에 대한 부담감을 버리지 않으면 책을 읽을 수가 없다”라고 단언한다. 나에게 맞는 책은 언제든 다시 나타날 수 있다.
“세상에는 살면서 반드시 읽어야 하는 책과 읽어봤자 시간 낭비인 책이 따로 있는 게 아닙니다. 그저 내가 읽었더니 좋았던 책이 있고, 내가 읽어보았지만 좋지 않았던 책이 있으며, 내가 아직 펼쳐 들지 않은 책이 있을 뿐입니다. 세상은 넓고, 내 손을 기다리는 좋은 책은 많습니다.”
중국어 원서 독서모임에서 《삼체》를 함께 읽은 적이 있다. 이 책은 분량이 상당하고, 외계 문명, 양자 물리학, 문화 대혁명, 시간의 뒤틀림 같은 복잡한 설정들이 겹쳐 있어 결코 쉬운 책이 아니었다.
그런 책을 한 달 안에 중국어로 처음부터 끝까지 완독 한다는 건 내 수준으로는, 그리고 내 생활 패턴이나 독서 경험으로는 가능하지 않다는 걸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그래서 아예 처음부터 ‘완독은 포기’하고 접근했다.
그 대신 내가 한국어로 읽었을 때 재미있었던 챕터 몇 개를 골라 읽었다. 초반 1~2 챕터는 등장인물과 배경을 파악하기 위해 다시 읽었고, 가장 흥미롭게 느꼈던 중간 부분의 2개 챕터를 골라 집중해서 보았다. 그때도 역시, 완독에 대한 부담 없이 읽으니 원서가 주는 재미에 더 집중할 수 있었고, 중요한 중국어 표현이나 독특한 문장 구조, 그리고 서사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었다. 어떤 장면에서는 번역서에서 ‘이 문장은 정말 강렬했지’ 하고 기억했던 부분을 원서에서 다시 찾아보기도 했다. 그렇게 되짚으며 읽는 과정에서 한두 문장을 필사하거나, 직접 번역해 보며 표현을 익혔다. 나에게 그 정도면 충분했다.
<책, 이게 뭐라고>의 저자 장강명은 이렇게 말한다. “책에서 원하는 부분만 찾아 읽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몇몇 대목만 훑은 책을 ‘읽었다’고 주장하면 그것은 자신을 향해서든 남을 향해서든 기만이다.” 물론 발췌독만으로 그 책을 완전히 읽었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우리의 목표가 ‘중국어 표현을 익히고 싶은 것’이라면, 꼭 완독 하지 않아도 얻을 수 있는 건 무궁무진하다.
우리가 드라마를 볼 때를 생각해보자. 어떤 드라마를 보기 시작했다고 해서 무조건 처음부터 끝까지 다 봐야 한다고 강요하는 사람은 없다. 몇 회를 보다 보니 나랑 결이 안 맞는다 싶으면 그냥 중간에 그만두기도 하고, 다른 드라마로 갈아타거나, 아예 예능이나 다큐 같은 전혀 다른 장르로 바꾸기도 한다. 그렇게 옮겨 다니면서도 누구 하나 그걸 문제 삼지 않는다. 하지만 책은 이상하리만치 ‘끝까지 읽어야 한다’는 압박감이 있다. 책을 한번 집었으면 완독해야지, 중간에 덮으면 실패한 것처럼 여겨지는 분위기 말이다.
나는 그건 잘못된 관점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중국어 실력 향상’을 목표로 한 원서 읽기에 있어서는 더더욱 그렇다. 원서는 학습 도구이기도 하다. 책 전체가 아닌, 그 안의 몇 문장, 몇 챕터만으로도 충분히 배울 수 있고, 언어적으로도 감정적으로도 연결되는 문장을 만나는 것이 더 중요할 수 있다. 재미가 없고 너무 어렵거나 나와 맞지 않는 책을 억지로 붙들고 있는 시간에, 다른 책에서 내가 원하는 표현을 한 줄이라도 건지는 것이 훨씬 생산적이다. 결국 우리가 원하는 것은 ‘읽었다’는 기록이 아니라, 읽고 ‘무언가를 얻었다’는 경험이기 때문이다.
내가 자주 읽던 책 중 하나는 《你生活的样子就是灵魂的样子》라는 에세이였다. 이 책은 챕터마다 독립적인 주제를 다루고 있어서, 처음부터 순서대로 읽지 않아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종종 아 책의 목차를 훑어보며 그날그날 마음이 끌리는 제목을 골라 한 챕터씩 읽어보았다. 그렇게 부담 없이 펼쳐든 한 편의 글에서, 가끔은 마음에 깊이 남는 문장 두세 개만 발견해도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예를 들어, 어떤 날은 내가 전혀 몰랐던 중국 음식을 소개받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糖水'라는 식문화를 알게 되기도 하고, ‘아, 광동 사람들은 이런 디저트에 이렇게 진심일 수 있구나’ 하고 그들의 정서와 생활을 조금씩 이해하게 되었다. 어떤 날은 단순히 음식 하나를 다루는 글에서 시작해, 그 음식에 얽힌 추억이나 가족에 대한 감정이 묻어나오는 작가의 이야기에 마음이 묘하게 울리기도 했다.
그렇게 한 챕터씩 골라 읽다 보니, 중국어 문장을 배우는 동시에 중국이라는 나라와 사람들에 대해 조금씩 가까워지는 기분이 들었다. 마치 중국 친구와 조용히 이야기를 나누는 것 같은 순간이었다. 모든 페이지를 읽지 않아도, 내가 발견한 몇 줄의 문장과 그 안에 담긴 감정과 문화가 책 한 권의 가치를 충분히 대신해주었다.
“一个人没有目标,即使变得更好,
也不知道朝什么方向努力,这才是最空虚和危险的时刻。”
《世界偷偷爱着你》
사람이 추구하는 목표 없이 그저 나아가기만 한다면,
아무리 실력이 향상되고 있어도 어디를 향해 나아가야 할지 몰라 막막해질 수 있다. 오히려 그런 시기가 가장 허무하고 위험한 순간이다
중국어 원서를 읽는 것도 마찬가지다. 명확한 목표 없이 무작정 읽기만 한다면, 나중에 돌아보았을 때 ‘열심히는 했는데 남은 게 없다’는 허무함에 빠질 수도 있다. 회화를 위한 표현 습득, 문장의 구조 이해, 어휘 확장, 문화적 배경 파악 등 원서를 통해 얻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자신만의 목표를 분명히 해두면, 책을 읽는 방식이 더욱 뚜렷해진다.
예컨대 회화를 잘하고 싶다면, 중국어 원서에서 찾은 일상에서 자주 쓸것 같은 재밌는 문장을 필사하거나 반복해서 소리 내어 읽는 것이 훨씬 실용적일 수 있다. 원서 전체를 읽느라 지쳐 포기하는 것보다, 필요한 부분만 읽고 반복해서 익히는 편이 오히려 실력 향상에 효과적이기도 하다.
다 읽지 않아도 괜찮다. 다만 ‘내가 이 책에서 무엇을 얻고 싶은가’라는 질문을 품고 있다면, 그 책은 분명 당신에게 무언가를 줄 것이다. 읽는 양보다 방향이 중요하고, 완독보다는 지속가능한 읽기가 더 중요하다. 책 한 권을 꿰뚫는 깊은 독서가 아니라, 내가 필요한 한두 문장에 오래 머무르는 독서가 중국어 실력을 더 단단하게 해 줄 수 있다.
그리고 그렇게 원서와의 관계를 조율해 가는 과정 속에서, 언젠가 자연스럽게 책 한 권을 다 읽어내는 날도 찾아올 것이다. 그때는 더 이상 그것이 ‘목표’라기보다, ‘과정’이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