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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상갑 May 05. 2019

[서평] 어느 날, 변두리 마을에 도착했습니다

글. 김효경 / 남해의봄날

표지, 다 읽고나니 마을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새 책을 만나면. 겉 표지 안쪽을 열어서 작가의 프로필을 본다.

어떤 일을 하던 사람인지, 이 책이 몇 번째 책인지..

인문학을 전공하지도 않았고 본래 책을 쓰던 사람이 아니었지만, 글쓰기를 좋아해 어느덧 낸 첫번째 책이거나 세번째 미만의 책들이 풋풋하니 더 재밌다는 생각이 요즘 많이 든다.


김효경님도 그 테두리 들어가는 작가님이다.

이과를 선택하였으나 사회학과에서 공부하였고, IT회사에 발을 들여놓았지만 죽기 전에 해보고 싶은 것은

역시 '책쓰기' 였다. 이 책은 ('여행자의 철학법'에 이은) 두번 째 출간이다. 그러나 두번 째 책이라는 것이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빼곡한 문장과 위트로 가득하다.


시작은 우울하다.

눈이 내리면 아이는 유치원에 갈 수 없었고 나는 심리치료사 강의에 빠져야 했다. 남편은 출근을 할 수 없었으므로 눈 예뵤가 있는 날에는 성실한 제설차가 순회가는 신도시의 시댁에서 자고 회사로 출근했다. 나는 난로에 장작을 가득 채우고 하염없이 뜨개질을 했다.


변두리마을의 현실. 낭만을 쫓아 간 것은 아니었다.

어찌보면 '현실도피'. 그러나 거기에도 피할 수 없는 현실은 또 있었다.


우울도 잠시.

작가의 맛깔나는 문장력에 빵빵 터지기 시작한다.

그 이사 온 이후로 도통 운동을 하지 않아 다리가 지느러미가 될 지경이었다.
불행히도 우리집은 롯데 응원석의 두산 팬처럼 엉거주춤한, 어쩔 수 없이 사랑받지 못한 기색이 역력한 조립식 주택이었다.
펭귄과 순록이 노닐어도 이상할 것 같지 않던 마당에 날마나 이름 모를 싹이 돋았다
퇴비 한 바가지를 흙과 뒤적여 바득판만큼 땅을 고르고 미술붓 꽁댕이로 구멍을 뚫어 열무씨 50개를 심는 수 밖에 없다.
찬밥과 열무 이파리 몇 장과 멸치적 한 숟가락이면 위장이 기분 좋게 충만해진다
이사 온 이후로 도통 운동을 하지 않아 다리가 지느러미가 될 지경이었다


그림 한점 없는 글씨가 빼곡한 책에서, 조용히 겨드랑이를 간지럽하는 듯한 표현을 발견할 때면 마치 명랑 만화책을 보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도시의 편리함을 버리고 찾아간 변두리 마을에서 무엇을 얻었길래 이렇게 책까지 내서 알리게 되었을까?

시골 아줌마들의 현실성 없는 수다들만 가득한게 아닐까 하는 의심도 있었지만.

읽다보면, '정말?' '요즘 젊은 사람들이 그렇게 배려하고 이해할 수 있다고?' '에이~ 설마...'


진지해지고, 깊숙히 빠져들어가게 된다.

에라 모르겠다. 없으면 받고 있으면 주는 거지 뭐

이상하리 만큼, 니꺼 내꺼 따지지 않고 내어주고 받을 생각을 하지 않던 마을 사람들에게

도시의 방식대로 받았으면 주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던 작가는 당연히 부담을 느끼고 그 한계에 다다라서는 결국 이렇게 포기하고 마음을 연다. 비로소 이때, 작가도 진심으로 이 마을에 마음을 열었다 생각한다.


난방비를 감당 못해 연탄보일러를 놓고 장마엔 다리가 물에 잠겨 아이들이 학교에 못 가는 곳에서 이들이 어찌 이리 대책 없이 낙천적인지 의아할 수도 있다. 그 비결은 불편을 상쇄하는 것들을 사람 안에서 발견하기 때문이다. 이 말은 자신의 쓰임을 발견 당하며 산다는 뜻이기도 하며, 마을 안에서의 관계가 사람들의 자존감고 정체성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추측케 하는 것이기도 하다.

하루의 일상 중에 학교와 학원을 가지 않으면 큰일나는 줄 알고 사는 엄마와 아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러나 이 마을은 그렇지 않았다. 난방비를 감당 못할 정도로 추웠고, 장마엔 다리가 물에 잠겨도 그들은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경제적으로 풍요롭지 않아서가 아니라 타인보다 풍요롭지 않아서이며 그로 인해 존중받고 인정받지 못할까 봐 두려운 것이다.문제는 돈이 아니라 관계에 있다. 관계의 불안을 피하기 위해서 악어가죽가방과 핸드메이드 무브먼트의 손목시계와 레이저 시술이 필요하다.

이 마을에서 살다보니, 작가도 서서히 깨닫게 된다. 내가 절대적으로 빈곤해서가 아니라 비교되어 지는 남보다 풍요롭지 않음으로 인해 인격적 존중을 못받을 까봐 두려웠던 것임을. 그걸 해소하기 위해 명품 핸드백과 레이져시술이 우리에겐 필요했음을.


감동에 울컥,

얼마 전 엄마가 사 보냈다는 화려한 옷과 신발을 보여 주면서 그녀는 부모에게 따뜻하게 안겨 본 기억이 없다고 말했다. ... 스스로가 좋은 부모를 겪어 보지 못했기 때문에 아이를 잘 키울 수 없을 것만 같아서 였다. 그녀가 아는 건 자기 부모의 방법이 틀렸다는 것 뿐이었다. 그녀의 엄마와는 달리 딸이 싫어하는 일을 강요하지 않았고 빠르면 서너 살부터 셈이나 글씨를 배운 다른 아이들에 비해 조금 느려도 그러려니 했다. ... "왜 아이를 그렇게 키워. 99퍼센트가 맞다고 하면 1퍼센트인 네가 틀린거야" ..  딸에게서 어릴 적 내 모습을 보는 게 너무 싫었어요. .. "그런데 그 1퍼센트가 다 이 마을에 모여 있는거야 ! "

이 대목에서 나는 '울컥'하고 말았다. 나도 부모로서는 처음 사는 인생이기에 아이들에게 어떻게 해주는 것이 잘 하는 것인지 잘 모른다.  단지 '우리 부모님들처럼은 하고 싶지 않을 뿐이다'. 내 기준으로 좋다고 생각하는 것을 강요하지 않고, 아이들 입장과 그녀들의 시선에서 이해하고 바라볼 수 있도록 마음을 열어놓고 기다려 주고자 한다. 내 주위의 다른 부모들 99퍼센트가 가는 길이라도 내 아이에게 맞지 않는다면 자신있게 1퍼센트의 길을 아이와 같이 걸으려 한다. 화려한 옷와 신발보다 따뜻한 손을 잡으로 같이 인생을 걸어 주는 것이 자식에게 필요한 부모의 존재의 이유가 아닐까 한다.


도서관 키드들은 육아 스트레스에 지친 엄마와 단 둘이 아닌 이웃의 여러 어른들에게 둘러싸여 자랐고 어른들과도 금세 친구가 됐다. ... 도서관에서 아이를 키워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 것은 단지 아이를 봐줄 손이 많아 몸이 편할 것 같아서만 아니었다. 이런 곳에서라면 어떤 아이라도 사랑과 배려를 몸으로 익히며 자라 다른 이에게도 베풀 줄 아는, 그래서 세상에 도움이 되는 사람으로 자랄 것임이 확실했기 때문이었다. 이곳의 아이는 경쟁보다는 주고받으며 사는 법을 먼저 배울 것이다. 그렇게 자란 아이는 쉽게 상처받지 않고 상황에 휘둘리지 않는, 강하고 낙천적인 어른이 될 것임에도 의문의 여지가 없었다. 나는 우리나라의 출산 정책을 만드는 이들에게 도서관의 아이들들으 소개하고 싶은 충둥을 느끼기까지 했다.

아무리 좋은 공간이 있다고 해도, 그 공간을 구성하는 구성원들의 마음이 같지 않다면 부작용은 발생하게 된다. 그래서 '항상 사람이 제일 어렵다' 라는 말도 있지 않나. 공동체안에서 살아가는 법을 배우고 익히며 상대방을 이겨야 살아남는 다는 세상이 아니라 배려하고 사랑하고 주고받으며 같이 노력하면 더 좋은 세상을 살 수 있다는 것을 알아간다면 아이들에게 얼마나 좋을까?


책속의 마을을 찾아가보다

책 후반부에 넘어가다 보면, "도대체 이런 마을이 어딨는거야?" 라는 생각이 든다.

글을 마무리하는 지금까지도 자루마을의 행정명을 밝힐지는 고민했다. 독자들은 글에 드러난 실마리만으로도 자루마을의 위치를 쉽게 유추할 수 있겠지만, 기꺼이 모른 척해 주리라 믿으며 책에서는 그 이름을 덮어 두기로 했다.

독자들이 궁금해 할꺼라는 것을 작가님도 예상했나보다. 책을 읽다보면, 이 지역을 유추할 수 있는 힌트들이 있다. 작가님이 '기꺼이 모른 척해 주리라..' 하셨기에, 그 지명은 나도 덮어주지만.

너무 궁금하여 직접 다녀왔다.

주말에 여러 번 가본 곳이었음에도 이 마을을 들어가 보지는 못 했었다.

'그냥가게'는 이제는 없어졌단다. 그 사연은 작가님께 페이스북으로 여쭤봐야 겠다.

교회에서 예배드리는 마을 주민들의 모습에서 '천국'을 보고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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