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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꼬리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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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칩코 May 14. 2019

배방구

2019년 5월 6일 낮.


어릴 적, 아빠가 나를 단숨에 깨우던 방법이 있다. 아침에 눈을 못 뜨고 있노라면, 내 배에 입을 댄 뒤 풍선 불듯 푸흐흐- 하고 바람을 넣는다. 그럼 요란한 방귀소리가 나면서 배에 물폭탄을 맞은 듯 간지러워 몸서리치게 된다. 아빠의 수염이 닿아서 따가울 때도 많았다. 어쨌거나 효과는 제대로였다. 아빠가 배에 가까이만 와도 눈이 번쩍 떠졌다. 오늘은 본가가 비어 꼬리가 놀러왔다. 눈이 부신 날이다. 해를 받은 나뭇잎들이 바람에 흔들릴 때마다 거울처럼 반짝반짝 하는 날. 땅에도 나뭇잎들의 그물망 같은 그림자와 그물구멍 사이로 뚫고 떨어진 햇살이 바람에 따라 이리저리 흔들렸다. 꼬리는 걸을 때마다 바스락 소리가 나는 연하늘색 옷을 걸쳤다. 활짝 연 베란다 창으로 햇살이 방 안에 가득 찼다. 꼬리는 침대가 푹신하다고 몸을 콩콩 흔들었다. 이불이 보드랍다고 얼굴을 부비더니 잠깐 잠을 자기도 했다. 나는 꼬리에게 연하늘색 옷이 너무 잘 어울린다고 여러번 말하다 같이 잠이 들었다. 일어날 쯤엔 어느새 해가 살짝 기운 오후. 꼬리와 누운 침대에 파도처럼 선선한 바람이 밀려왔다. 꼬리의 팔다리는 꼭 고무인형 같다. 하얗고 말랑말랑한 가래떡 같은 기둥들. 자꾸 자꾸 만지고 핥고 싶은 부드러운 살결. 엎드린 꼬리 위에 포개 누워서 손에 꼭 맞는 꼬리 가슴을 만진다. 한쪽 볼은 꼬리의 등에 기댄다. 아, 너무 사랑스럽다! 꼬리의 허리에 푸흐흐-하고 바람을 넣는다. 우스꽝스러운 방귀소리가 나고 꼬리는 꺄악하고 웃었다. 꼬리는 느낌이 싫지 않다며 좋아했다. 나는 신이 나서 옆구리며 엉덩이며 이곳저곳에 해대었다. 이 사랑스러운 배에 입맞추면서 까르르 비명소리까지 덤이라니, 이렇게 재밌을 수가. 아빠한테는 아주 질색을 했었는데, 미안하게도 이제야 아빠 마음을 알 것 같았다. 그래도 수염은 깎고 하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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