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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꼬리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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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칩코 May 23. 2019

그네

2019년 5월 22일 저녁.


그네를 탔다. 그넷줄을 꽉 쥐고 고개를 뒤로 홱 젖혔다. 하늘이 아래로, 세상이 거꾸로다. 아스팔트에 데롱 데롱 매달린 나무들을 한참 바라본다. 아무리 낯설게 보려 해도, 내 눈엔 거꾸로 된 '나무'일 뿐이다. 바다 같이 펼쳐진 하늘 위로 나뭇잎이 치맛자랏처럼 내려 있다. 절대 나무와 같은 형태가 아닌데도 내 머릴 지배하는 건 나무의 원래 모습이다. 코끼리가 아닌 것을 떠올릴 때, 꼬끼리만 머릿속에 가득 차버리는 것처럼. 우리는 같은 것을 다르게 바라보는 것을 어려워한다. 동물은 음식이 아니라 존재임을 말해주는 것, 지폐로 담배를 말아 피울 수도 있음을, 사랑스러운 동성 친구에게도 조심스럽게 입을 맞출 수 있음을 알려주는 것. 종아리를 힘차게 굴러서 더 높이 그네를 탄다. 앞으로 갔다가, 뒤로 갔다가, 배꼽에 힘이 들어간다. 바람이 이마 위로 부드럽게 갈라진다. 놀이기구를 탈 때처럼, 가랑이 사이가 간질간질한 느낌. 허벅지에 힘을 주면 간지러운 느낌이 더 강해진다. 어렸을 땐 몰랐는데, 이건 꼭 오르가슴 같네! 같은 것을 다르게 바라보는 것. 한창 신나게 그네를 타는데, 조그만 단발머리 애가 다가온다. “언니, 이제 저 좀 탈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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