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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칩코 Oct 08. 2022

마음도 제로웨이스트

<길을 잃으면 질경이를 따라가>




요가 할 때, 죽어도 안 되던 동작이 어느 순간 된다. 분명 어제까진 아등바등 버텼던 동작인데 오늘은 가볍게 된다. 팔굽혀펴기 20개를 바들거리며 겨우 하다가 30개를 거뜬히 해내는 날이 불쑥 찾아온다. 그럴 때 희열이란! 꼭 쇼생크를 탈출한 기분이다. 몸이 자유로워졌달까. 내 몸을 내 마음대로 움직이는 것. '자유'가 내 마음대로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상태라면.


마음도 몸과 똑같다. 마음이 내 마음대로 되지 않곤 한다. 그럴 때 아등바등 계속 마음을 바꾸려고 하면 결국 되는 순간이 있다. 예컨대 난 식도염에 걸렸을 때 과자를 즐겨 먹었다. 과자를 먹고 싶은 마음이 올라올 때마다, 냅다 나흘쯤을 꾹 참고 나면 그 마음은 확실히 힘이 약해진다. 나중엔 과자 생각이 전혀 안 나기에 이른다. 글쓰기도 일주일에 두 편씩 쓰기로 스스로 약속했다. 어떤 주는 너무 바빠서 그냥 넘어가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럴 때 '에잇 쓰자!'하고 마음을 먹으면 글이 또 써진다. 나중엔 점차 쓰기 싫은 마음을 이기는 마음이 점점 힘이 세지는 걸 느낀다.


내가 명상을 시작한 건 마음이 자유로워지고 싶어서였다. 내 마음이 부디 내 마음대로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자꾸 과거의 불쾌한 기억이 떠오르고, 미래의 불안한 걱정에 압도되고, 눈앞의 사람이 꼴 보기 싫고, 사랑하는 사람이 떠날까 봐 조바심 내고. 날뛰는 내 감정을 다루는 실력이 생기길 바랐다. 누군가를 미워하는 마음이 자랐을 때, 그걸 가만히 들여다보면서 스스로 정화할 힘이 있다면. 누군가를 미워하는 건 에너지를 많이 소모한다. 미움받는 것보다 미워하는 게 더 어려운 일이다. ‘난 이 사람을 싫어하고 싶지 않아. 이 사람과 있을 때 내 마음이 편안했으면 좋겠어’라고 다짐하면 내 마음이 정말로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다.


명상은 내게 ‘내 마음을 내 마음대로 움직이는' 연습 시간이다. 매일 새벽 4시에 글쓰기 명상과 요가를 하고 나면 6시에 해가 떠오른다. 이후 아침 먹을 불을 피우며 하루를 시작한다. 저녁 8시면 좌선 명상과 내일의 일정을 계획하고 9시에 잠든다. 일주일에 한 번은 동네 친구와 함께 108배 절 명상을 한다. 매일 명상하는 루틴을 만드는 건 쉽지 않았다.


‘매일 명상하겠다는 자신과의 약속을 지킬 거야!’ 하는 다짐의 깃발을, 마음이란 산꼭대기에 단단하게 꽂아두어야 한다. 깃대가 단단하지 않으면 어느 날은 ‘제발 오늘만은 하고 싶지 않아! 어제 일정이 많아서 피곤이 가시지 않았는걸?’하는 강풍에 날아가 버린다. 매일 명상하면서 그 깃대 옆에 작은 돌멩이를 세운다고 상상한다. 나중에 돌멩이가 모여서 담벼락이 되면 아무리 강한 태풍이 와도 깃발은 부러지지 않는다. 매일 명상하는 습관은 하루하루가 쌓일수록 단단해진다.


처음엔 한 이주 내내 약속을 지키다가 또 해이해지고, 다시 또 한 달을 꾸준히 하다가 또 느슨해지기를 반복했다. 그 기간은 점차 길어져서 50일쯤은 거뜬히 하다가 나태한 마음이 올라오고, 나중엔 70일을 다시 버티고… 이런 식이었다. 그렇게 일 년을 보내고 나니 이제 매일 아침과 저녁 명상이 내 삶의 기본값이 되었다는 느낌이 온다.


그래서 ‘내 마음이 얼마나 자유로워졌느냐’를 말하라면… 어디 뛰쳐나가서 전단이라도 돌리며 전도하고 싶다. 효과가 있을 수밖에 없다. 누군가 윗몸 일으키기를 일 년간 매일 한 시간씩 했다고 해보자. 당연히 복근이 생길 수밖에 없다. 몸을 단련하듯이 마음도 매일 단련하면 근육이 생길 수밖에.


좌선할 때는 앉아서 내 호흡을 바라본다. 비단 ‘아 오늘은 명상하기 싫다’는 마음과만 싸우는 게 아니다. 이 마음을 이기고 다리를 틀고 앉으면 온갖 잡념이 올라온다. ‘오늘 그 사람이 나한테 모욕을 줬어!’부터 ‘그때 왜 아무 말도 못 했을까. 창피하다’를 지나 ‘칭찬받아서 오늘 기분이 참 우쭐했지’까지, 오만가지 마음이 다양한 구름 모양으로 지나간다. 흘러가는 구름을 그냥 지켜봐야 하는데 어떨 때는 막 쫓아가기도 한다. 나중엔 벌떡 일어나서 친구에게 전화해 오늘 사이코패스를 만났다며 뒷담화하고 말아야 속이 시원하다.


그러나 구름은 반드시 흘러간다. 하늘에 딱 멈춰있는 구름은 결코 없다. 잡념이 떠올랐을 때 그냥 알아채고 가만히 흘러가게 놔두면 된다. 그럼 나중에 진짜 사이코패스를 만났을 때 ‘저런 사람 딱 질색이야.’ 하면서 혐오하는 마음이 올라오다가도 ‘아 이런 마음이 있네. 저번에 아무 반응도 하지 않고 마저 명상했었지. 이번에도 그냥 지나가게 둬야겠다’ 하면 그 마음은 힘을 잃는다.


이때 부정적인 마음이 자꾸 올라온다고 억지로 밀어내면 안 된다. '난 왜 이런 걸 못 참을까?' 하면서 나를 탓하면 결국 좋지 않다. '이 생각이 자꾸 떠나질 않네. 마음이 많이 힘들었나 보다. 내 마음은 이걸 힘들어하는군. 그렇지만 다 지나가는 일이야!' 하면서 거리를 두고 관찰하면 된다. 사랑하는 사람이 내게 고민 상담을 요청해왔다고 생각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달래주는 것이다. 내가 애인보다 더 평정을 잃고 길길이 날뛰면 결코 좋은 상담사 노릇을 할 수 없지 않나.


내가 지독한 '빵순이'라고 이미 고백한 바 있다. 지금 10주째 내가 빵을 입에도 대지 않고 있다면 믿으시겠는가! 나도 내 인생에 이런 날이 올 줄은 몰랐다. 빵 모양 구름이 떠오르면 난 맡겨두기라도 한 사람처럼 당장에 쫓아가 빵을 입에 넣고야 말던 사람이다. ‘빵 모양 구름이 또 떴군. 반응하지 않겠어. 언제 또 떠오르나 보자’하고 지켜보면 점점 횟수가 줄다가 나중엔 빵이 눈앞에 있어도 침을 흘리지 않을 수 있다.


아침 글쓰기 명상 때는 감사한 일을 쓴다. 오늘 만났던 존경할만한 존재를 적고, 오늘 내게 주어진 소중한 기회, 어제 있었던 근사한 일, 오늘 스스로 하고 싶은 다짐의 말을 적는다. 내가 생각해낸 리스트는 아니고 책에서 읽은 내용을 내게 맞도록 바꾼 것이다. 또 내가 원하는 하루를 최대한 구체적으로 상상해서 글을 써본다. 이건 여러 책에서 추천해준 시각화 명상의 일종인데, 효과가 정말 좋다.


난 새벽 4시에 일어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런데 도무지 내가 새벽 4시에 일어나는 걸 내가 상상해내지 못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난 자연식물식만 하는 사람이 되고 싶은데, 내가 빵 없는 삶을 감히 상상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 분명 자연식물식 좋긴 한데, 그와 비슷한 크기로 '빵 먹는 삶 너무 행복해'하는 마음이 '떡'하니 자리하고 비켜줄 생각이 없었다. 처음엔 잘 안되어도 일단 막연하게 상상했다. 빵이 눈앞에 있을 때 시큰둥하게 "난 빵을 안 좋아해서... 내 입에 너무 달아"하고 입에도 안 대는 내 모습! 쿨하긴 한데 잘 그려지지 않았다. 이걸 매일 상상하려 애쓰다 보니 실제 현실에서 내가 그렇게 말을 하게 되었다. 상상으로 연습을 많이 해둬서 실전 때 가능해진 게 아닐까 싶다.


현관에 붙인 부적


마음 수련은 쉽지 않아서 난 부적의 도움을 받았다. 절이나 명상센터에 가면 복도마다 좋은 글귀가 있다. 마음을 지금, 이 순간으로 데려오도록 도와주는 글귀들이다. 집안 곳곳에 내가 좋아하는 북아메리카 원주민의 말씀들을 쪽지에 적어두었다. 예를 들면 난 아침 4시에 눈을 뜨자마자 다시 졸리지 않기 위해 찬물로 세수한다. 세면대 앞에 '태양과 함께 눈을 뜨고 태양과 함께 잠들라'는 인디언의 말씀을 적어둔다. 전엔 내가 식량 창고에 '내가 가진 것이 아무것도 남지 않을 때까지 나누라'는 말씀을 적었다는 말도 했었다. 현관문 앞에는 '아침에 일어나면 만물에 용서를 구하라. 밖에 나가 내 발로 풀줄기 하나를 부러뜨리기 전에'라는 문구가 있다. 이런 문구는 내게 부적과도 같다. 내 마음이 게을러질 때 부적들의 힘을 빌린다.


마음 이야기를 왜 하느냐면... 난 마음 수련이야말로 생태적인 삶의 정수라고 생각한다. 마음은 너무 복잡하다! 반면 생태적인 삶은 단순 소박하다. 욕심을 덜어내고, 불편한 감각들을 환영해야 가능하다. 명상은 마음에 쌓인 먼지를 다 털어내고 매일 즐겁게 해내는 마음 청소다. '제로 웨이스트'의 일종이랄까. 아직은 마음에 청소할 것들이 데굴데굴 굴러다니지만, 마침내 모든 쓰레기가 사라지면 어떨까. 내 마음의 모든 쇼생크에서 벗어나, 내 온 마음이 내가 원하는 대로 된다면. 그런 걸 '해탈'이라고 부르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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