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세 차례 화장실로 달려가고 있었다. 밤새 메스꺼움에 발만 비비적대다가, 기어코 밀려오는 토기를 참을 수 없던 것이다. 그날 새벽은 원인을 알 수 없는 구토를 여러 차례 하고, 결국 토를 받을 대야를 가져와 침대 아래에 두고서야 겨우 잠든 날이었다. 명상센터에서 장기 봉사를 하던 때다. 다음 날은 쫄쫄 굶고 나서도 메스꺼움이 가시지 않았다. 다음 날 새벽에도 두 차례 속을 게워 낸 이후, 결국 센터를 나와 병원으로 향할 참이었다.
난 서구 의학으로 치료하는 병원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꼬리는 심장이 아파서 심장 전문 병원에 갔는데, ‘이상 무’를 판정받았다. 도무지 이해가 안 가던 꼬리는 요즘 스트레스가 심했는데 그것 때문이냐고 물었더니, 의사는 자신은 심장만 알기 때문에 그건 정신과에 문의하라고 했다. 요즘 코피를 자꾸 쏟는데 그게 심장 통증과 연관이 있는 게 아닌지 물었더니, 다시 말하지만 자신은 심장만 다루므로 이비인후과에 가라고 했다. 이 사례 때문에 삐친 것은 아니고, 서구 의학은 인간을 물질로만 취급해서 믿음이 가지 않는다. 인간을 영성과 물질의 유기조합으로 보는 게 아니고, 부품으로 구성된 자동차 정도로 보는 듯하다. 나는 생물만큼은 1과 1을 더해서 2 이상이 된다고 여긴다.
일반 병원 대신으로 대체의학 마사지를 치료받았다. 온몸이 멍이 들도록 마사지를 했는데 몸은 호전되지 않았다. 결국 혼자 단식 치료를 하기로 했다. 속이 편안해질 때까지 계속 굶었다. 그러다 보식 양을 점차 늘려 가던 중 또다시 새벽에 구토가 시작됐다. 임시방편으로 동네 내과에 가서 양약을 타 먹었지만 효과가 없었다. 제대로 먹지 못한 지 한 달이 다 되어 갔다. 몸은 크게 지쳐 갔다.
집 근처에 용하다는 한의원에 찾아갔다. 한의원장은 무당처럼 사람을 꿰뚫듯이 보는 집요한 눈빛을 가진 사람이었다. 배를 이곳저곳 눌러 보고, 혓바닥을 들춰 보고, 최근 일정과 변화에 대해 캐묻더니 역시나 무당처럼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기병氣病이네. 명상을 적당히 해야지, 너무 했어.” 의사는 내 몸이 정상이라고 했다. 위장이 건강하다고 말이다. 다만 명상을 과하게 해서 기가 복부에서 막힌 것이라고 했다. 자기가 약을 줄 테니 먹으면 한 방에 나을 것이라고, 자기도 기병을 그렇게 치료했다고 말했다. 별로 믿음이 가는 인상은 아니었으나, 내 믿음과는 무관하게 나는 그 약으로 건강을 되찾았다.
원인을 알 수 없는 구토라고 했지만, 사실 짐작 가는 바는 있다. 구토를 시작한 그 날. 나는 명상센터의 정화조를 홀로 청소했던 것이다. 센터에서는 수행자들 밥을 차리고 설거지를 해 드린다. 장작불로 요리하거나 하수를 흘려보내지 않거나 세제를 쓰지 않는방식을 명상센터에서 실천하기란 불가능했다. 빠른 속도로 수많은 설거짓감을 해치워야 하니 말이다. 세제는 필수적으로 사용하라고 규정에도 있었다.
어느 날부터 설거지하는데 역겨운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알고 보니 설거지통 아래 정화조에 쌓인 음식물 찌꺼기가 썩어서 나는 냄새였다. 정화조라는 걸 태어나 처음 봤다. 뚜껑이 닫힌 채로도 무시무시한 냄새가 나는 그곳을 열어 보는 순간, 내가 받은 충격이란. 설거지한 물이 하수로 내려가기 전에 음식물을 거르는 곳인데, 수챗구멍도 통과할 정도로 아주 미세하게 분해된 음식물 가루들이 사막의 고운 모래처럼 정화조 아래에 가라앉아 있었다. 냄새는 그대로 기절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지독했다. 나는 숨을 참고 그곳을 청소했다. 잠시라도 숨을 들이켜면 정신이 아찔해 왔다. 정화조의 물을 다 퍼내고 가장 아래 있는 고운 음식물들을 다 긁어냈다.
그렇다. 다시 하라고 하면 다음 생에나 가능할 것이라고 하겠지만, 그때는 죄책감이 나를 움직였다. 명상센터에 있으면서 모른 척하고 흘려보낸 물 생각에 마음이 늘 무거웠기 때문이다. 난 이 정도 거리만도 견디기 힘든 악취인데, 이게 어느 물속 생물 집으로 흘러간다고 생각하니 도저히 못 본 척하기가 어려웠다. 이 물을 내가 마신다면, 이 물로 내가 샤워한다면, 이 물에서 잠을 잔다면……. 불쾌한 수준이 아니라 죽을 수도 있는 악취였으니. 얼굴도 모르는 그 물속 생물들이 뻐끔뻐끔 내게 말을 거는 것 같은 환청 이후엔, 손이 절로 움직였다. 수영 선수처럼 그토록 숨을 오래 참은 것도 처음이었다.
어느 모로 보아도 욕본 것은 맞지만, 그날 두 시간 남짓한 청소로 한 달을 몸져누운 것은 과하지 않나, 싶다. 나는 본래 육신이 건강한 편은 아니어도, 평생 그 지경으로 아파 본 적은 없었다. 심지어 이때 병은 단순한 위장 문제로 설명되지 않는 구석이 있었다. 마사지 치료도, 내과 양약도, 단식 치료도 효과가 없었고, ‘요상한’ 무당 한의사가 준 기병 치료제만 말을 들었으니까. 믿거나 말거나, 나는 그 고통이 물속 생물들이 내게 선물한 것이라고 여기게 되었다. 더 이상한 말로 표현해 보자면, 그 정화조에 깃든 물속 생물들의 한 같은 것이 내게 붙었다고도 느껴졌다. 무려 한 달간 금식으로 갚았어야 할 어떤 마음들이었다고.
기병을 앓은 이후 제 삼의 눈이라도 열린 것은 아니었으나, 세상을 적어도 눈으로만 봐서는 안된다는 사실이 분명해졌다. 느끼한 드라마 대사처럼 들릴지 모르겠지만, 눈에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게 더 중요하다는 말이다. 눈에 보이는 대로라면 우린 모두 독립된 개인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러하지 않은 것 같다. 나와 물속 생물은 몇 킬로나 떨어져 있었는데, 내 손을 움직여 정화조를 청소한 것은 그들이었으니. 눈을 감고 상상한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이 투명한 거미줄로 연결돼 있다고. 어느 것도 나와 무관한 것이 없고, 내가 아닌 것도 없다고.
그럼 남보다 돈을 많이 벌 필요도, 더 아름다운 외모를 가질 필요도, 더 안락한 집이나 맛있는 음식을 먹을 필요도 없다. 모두가 ‘나’이니 말이다. 우리 집 쓰레기를 남의 집 앞에 버릴 것도 없다. 모두가 ‘내 집’이니까. 내가 살면서 버린 과자 봉지들이 아직도 태평양에 떠다니고 있겠지만, 태평양도 결국 내 집이라는 걸 알아차린다면. 눈을 뜨면, 투명한 거미줄 같은 건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느낄 수 있다. 내 상상이 영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아영
영성가 에크하르트 톨레는 <삶으로 다시 떠오르기> 책에서 말한다. 인간이 꽃과 새를 보면서 유독 진한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은, 꽃과 새는 물질이 유약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식물에서 나왔지만, 그 식물보다 더 덧없고, 더 여리며, 더 섬세한 꽃은 물질적인 형상의 세계와 형상 없는 세계를 잇는 다리가 된다.” 물질성이 단단하고 강할수록 영적인 힘이 약해지고, 반면 곧 사라지는 것엔 영적인 힘이 부각된다는 것이다.
추리하건대, 어린이들이 그토록 맑은 영혼을 가진 것도, 육신이 병들고 늙을수록 지혜가 생기는 것도 같은 원리가 아닐까 싶다. 명상할 때 숨에 집중하는 것도 숨은 내 육신을 이루는 것 중 가장 희미한 물질이기 때문이다. 예수와 부처나 테레사 수녀가 어느 것도 소유하지 않고도 충만한 삶을 살다 간 까닭 역시 물질을 버릴수록 영적인 힘이 강해진다는 걸 알아서였을 테다. 나에게 역대급 고통을 가져다준 기병도, 육신을 약하게 해서 영적인 어떤 깨달음을 전달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마침내 난 삶과의 대화를 즐기게 되었다. 나를 이 지구에 초대한 ‘내 삶’에 대해서, 신이 있다면 삶이 바로 그것이라고 여기면서. 어떤 우연도 우연이 아니라고 믿게 되었고, 삶이 내게 보여 주는 어떤 만남과 사건이든 모든 것에 의미를 부여해 배움을 찾았다. 삶은 '내 삶'이기 때문에 언제나 내 편이었다. 때로 모질게 느껴지는 건, 내가 삶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을 뿐이었다. 온몸으로 겪어내고 시간이 흐르고 나면, 삶이 내게 보여주려 했던 배움은 반드시 찾아왔다. 뒤늦는 법은 있어도 오지 않는 법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