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푸른 바다

by 윤슬

그 비 내리던 밤 이후, 우리의 시간은 마치 하나의 흐름으로 합쳐진 강물 같았다.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도 우리 사이를 잇는 보이지 않는 실은 팽팽하게 당겨져 있었고,

나는 자석에 이끌리듯 매일 밤 그의 공간으로 숨어들었다.


그곳은 세상이 내게 덧씌운 '장녀' 혹은 '이방인'이라는 딱지를 유일하게 떼어낼 수 있는 탈출구이자, 오직 한 남자에게 오롯이 사랑받는 여자로만 존재할 수 있는 성역이었다. 우리는 이제 말하지 않아도 서로의 호흡이 머무는 자리를 알았고, 시선이 마주치는 것만으로도 그 안에 담긴 짙은 갈증을 읽어냈다.


툭툭 던지는 일상의 대화들 사이사이로 짙은 침묵이 찾아올 때마다,

우리는 약속이라도 한 듯 서로의 살결 속으로 깊게 침잠했다.

그와 나누는 사랑은 매번 처음처럼 뜨거웠지만, 갈수록 그 깊이는 헤아릴 수 없이 깊어졌다.

내 몸의 곡선을 따라 소유하듯 옮겨가는 그의 손길은 거칠면서도 조심스러웠다.


그의 단단한 가슴에 내 몸을 밀착시키고 그의 불규칙한 박동을 온몸으로 느낄 때면,

지난 시간동안 나를 옥죄던 그 지독한 냉기가 비로소 완전히 증발하는 기분이었다.


서로의 숨결이 엉키고 땀방울이 섞여드는 그 농밀한 시간 속에서,

나는 그가 내는 모든 소리와 진동을 감각의 세포 하나하나에 새겼다.


그의 어깨를 꽉 움켜진 내 손가락 끝에는 그를 향한 절박함과 안도감이 동시에 실려 있었다.


그와의 사랑은 나를 치유하는 성스러운 의식이었다.


가족에게는 차마 말할 수 없는 비밀이 늘어갈수록 우리의 유대감은 더욱 견고해졌다.

나만의 가장 비밀스럽고 뜨거운 여름이 만개하고 있었다.


"내가 네 지도가 되어줄게. 네가 어디로 가든, 길을 잃지 않게."


그의 약속 아래 우리는 미래를 그렸다. 침실 창밖으로 쏟아지는 별빛 아래서, 우리는 더 이상 지나온 과거의 아픔을 이야기하지 않았다. 대신, 우리가 함께 걸어갈 미래의 풍경들을 조심스럽게 꺼내어 놓기 시작했다.


그는 여느 때처럼 내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가만히 빗어 내리며 나를 자기 품 안으로 더 깊숙이 끌어당겼다. 살결이 맞닿는 곳마다 전해지는 기분 좋은 온기, 그리고 규칙적으로 들려오는 그의 심장 박동 소리. 사랑을 나누고 난 뒤의 고요한 여운 속에서, 그는 내 손등에 아주 길고 부드럽게 입을 맞췄다. 그는 내가 가진 결핍을 자신의 여유로 채워주었고, 나는 그의 성숙한 사랑 안에서 비로소 투정 부릴 줄 아는 아이가 되었다가, 다시 그를 온전히 품어내는 여자가 되었다.


"내가 너를 얼마나 소중하게 생각하는지, 매일 알게 해 줄게."


우리는 그 찬란한 정점 위에서 서로의 영혼을 더 깊게 탐닉하며,

우리들만의 지도를 완성해 가고 있었다.


오랜 침묵 끝에 마주한 이 눈부신 여름은, 그렇게 우리 두 사람의 심장 소리로 가득 채워지고 있었다. 날씨가 어떻든, 누가 우리를 시샘하든 상관없었다.


그와 겹쳐진 숨결 속에 머무는 한,

나는 이 세상에서 가장 강력하고도 아름다운 존재였으니까.




모든 것이 처음이었고, 동시에 그것이 내 인생의 마지막 사랑일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시절이 있었다.

그와 나누었던 숨결, 빗소리에 잠긴 채 온기를 나누던 그의 방,

그리고

"지도가 되어주겠다"

던 그 성숙한 약속까지.


그 모든 것은 힘들고 시렸던 내 생활에 내린 축복이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그 찬란했던 사랑을 끝낸 것은 외부의 풍파가 아닌 내 안의 '갈증'이었다.

화, 목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