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파리지언니 Dec 08. 2020

너의 집

김남조



너의 집을 지어주마

사랑하는 사람아

은밀하여 누구도 못 찾을 곳에

이승의 쉼집을 마련해주마

동서남북 문을 내고

문들 사철 열어두는 집



살다가 살다가

세상이 손을 놓아

너 혼자인 날엔

문설주에 손자국 없이

와 있곤 하겠느냐

한밤의 목마름과

못 고칠 미운 짓거리까지도

아아 너의 모든 것

예 와서 담겨주겠느냐



아무도 안 산다 싶은 곳에

바람은 능히 살고

아무도 안 온다 여길 때에

그리움 물밀 듯이

너의 집에 너 머물면

내 하늘 절로 달밤이리



너의 집을 지어주마

사랑하는 사람아

옷고름을 풀 듯이

세상살이 골병들을 풀어 버리고

엊그제 몸살도 지워 버리고

쉬어라 쉬어라

설핏이 보기만도

눈물 나는 나는

넉넉한 두 팔 되어

그 울타리 둘려주마.









20대에는 이 시를 참 좋아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넉넉한 집을 지어 주겠다는 내용이라면서요. 동서남북 문을 내고 사철 열어두지만 은밀하여 아무도 못 찾는 집이라니 이런 집을 입체적으로 공간화하는 것은 참 어렵겠다는 생각을 했죠.


게다가 이승의 쉼집이기도 하지만 세상이 손을 놓아 너 혼자인 날엔 문설주에 손자국 없이도 와 있을 수 있는 곳이라니! 한 사람이 생을 마치고 무덤에 들어갈 때 이승에서 생을 마치는 쉼의 집이라니! 그러니 그 자기 집을 지어놓고 생을 마감할 때 찾아와 달라는 이야기라니!


이런 시해석을 읽을 때는 머리카락이 쭈뼛 서는 느낌을 받습니다. 죽어서도 잊지 못할 사랑하는 사람를 위해 문설주가 없는 그래서 다른 사람이 왕래가 없는 쓸쓸할 그 무덤에 와 주겠냐고 묻는 그 대목은 눈물겹지만 섬뜩한 것은 사실이니까요. 한밤 사랑의 목마름과 그리움에 그 앞에 가서 서글피 우는 것은 무덤 주인이 보면  고칠 미운 짓거리지만 그렇더라도 예 와서 담겨주겠느냐고 묻는 마음이라니......그 동안 알지 못했던 두 번 째 연의 사연.


너의 집은?

퇴근길 감상문

작가의 이전글 글축가라고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