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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리지언니 Oct 19. 2021

책방 주인도 디지털 치매를 앓나요?

책방을 차리고 싶었던 시절의 나의 속내는요. 회사 생활로 지쳐 있었고 그래서 그냥 나만의 숨을 곳이 필요했다고 느낀 것 같아요. 그리고 인생 해법이 담긴 책을 천천히 기억하면서 읽고 싶었어요.




유퀴즈에 나온 최인아 대표님 방송을 보면서 기획회사의 임원으로 퇴직하시고 책방을 내신 것이 참 멋지다는 생각을 해봐요. 구독하는 미디어 플랫폼에 독립 책방 인터뷰가 자주 눈에 는 요즘. 몇 년 동안 남몰래 생각하고 상상하며 즐거워한 일을 실제로 이루고 사는 분들이 늘 부러워요. 그리고 그분들은 이상하게 모두 침착하시고 여유롭고 지혜롭게 이야기하시는 것 같아요. 심지어 글에서도요.


 

그 마음을 단박에 한 문장으로 써 내려간 뜨끔한 글귀. 출처: 서울의 3년 이하의 서점들



책방 주인의 안목에 따라 책을 선별하는 작은 서점! 이 업역을 떠날 수 없으니 나도 건축 도시 전문서적으로 나만의 소우주를 만들어 보면 어떨까 하고 생각해요. 건축 언저리 관한 지적 생산물로써의 책을 모두 모아서 세상에 알리고 그러다 보면 지금은 흐릿하지만 또 다른 새로운 가치를 만들겠구나 하면서요. 사실 처음부터 저런 생각을 한 것은 아니에요. 친한 친구들은 알고 있어요. 굳이 월급을 털어서 본캐를 위로하는 부캐를 만들어 볼까 하는 얕은 수작이란 것을요. 나만의 성찰과 공상을 위한 공간으로 책방을...... 굳이...... 만드냐 면서요. 나만의 작업과 지적 활동을 사람들에게 알리면서 책도 판다는 생각은 참 좋지만 사실 얼마나 책이 팔릴지는 모르는 일이 잖아요. 지금도 집과 회사 근처에 비어 있는 1층 가게들을 둘러보며 마음속의 책방 입점 지수를 매겨보곤 해요. 임대료와  손익 계산을 생각하자마자 시장경제의 현실적인 벽에서 금방 무너지는데도 말이죠.




그럼 그냥 메타버스에서 책방을 낼까요?



아니요! 내가 사는 곳이나 일하는 곳에서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 안에 책방을 내고 싶어요. 사는 곳은 이사 가면 그만이고 회사는 퇴직하면 그만 일 수 있기 때문에 절대적인 동네를 정할 수는 없겠지만 내 생활의 일부분이었던 곳이면 좋겠어요. 책방은 우리의 일상에서 마음은 뜨거워지고 몸은 조용히 가라앉는 비밀스러운 곳이라지만 나의 일상의 공간의 범주안에 넣는다고 해서 신비감이 사라지지 않을 것이란 걸 믿기 때문이에요. 여하튼 동네책방에서 책을 더듬고 만지고 탐욕스럽게 훑어보는 손님에서 더 편안하고 안락하게 탕진잼을 유발하는 주인장으로 살고 싶어요. 나의 일상 속에서요.....





 대리만족 니은 서점


일 년 전 지금은 영업을 마치고 폐업한 불광문고에서 옆동네 니은 서점 이야기가 담긴 책을 봤어요. 한참 서점을 내고 싶단 열망에 사로 잡혔을 때여서 그런지 자리에서 훌훌 읽고 바로 니은 서점을 찾아갔어요. 이미 다 읽은 책을 샀지요. 니은 서점은 책방 주인이 된 사회학자가 적어 내려간 책방 운영기?라고도 할 수 있어요. 읽을 때마다 책방 주인의 꿈을 잠시 내려놓고 동네 서점 살리기에 대한 사명감으로 책을 덮게 되더라고요. 책방 주인이자 북 텐더인 노명우 교수님은 니은 서점을 열면서 정작 대학에 다니는 동안은 쉽게 겪을 수 없지만, 뒤늦게 사회생활을 하면서 찾아오는 사회학에 대한 깨달음의 순간을 마음에 품고 대학과 사회를 잇는 서점을 만드셨다고 해요. 자주 가지는 못하지만 건축 도시학과 사회학의 접점을 찾아보려 크게 눈을 뜨고 책을 고르는 서점이에요. 갈 때마다 교수님을 만나면 어쩌나 설레었는데 교수님을 뵌 적은 없어요. 아마 주말에 가서 그런 것 같아요. 인스타에서 한 번 빵권데이 피드를 본 적이 있었는데 진짜 책이 한 권도 안 팔리는 날들이 있더라고요. 꿈과 현실의 온도 차이를 다정함을 잃지 않고 이야기하시는 것이 보는 이를 더 짠하게 만들어요. 여러 가지 현실적인 이유로 당분간은 동네 서점을 돌아보며 지지하고 응원하며 살기로 했어요. 내가 좋아하는 책을 누군가에게 거저 소개하는 사람으로 작가에게도 도움이 되고 그리고 같은 인생의 고민을 가진 친구들과 나누는 사람으로요.


니은 서점에 가면 실제 책에 포스트잇을 붙이고 밑줄을 쳐 놓은 책이 있어요.  책상 위에 놓여 있는 책처럼요. 니은 서점 책에 나온 내용처럼 책에 밑줄도 치고 메모도 하는 과정을 거치면 구매한 책은 나만의 책이 된다고 해요. 내가 소유한 그 책은 대량 생산된 상품이 아니라 나만의 기록과 지적 활동을 담은 물건으로 변하는 것이라고요. 북카드 형식으로 간략하게 책의 내용과 소감을 적어둔 서점은 많지만, 반품이 불가능하게 밑줄을 쳐서 손이 탄 책은 보기 힘들 잖아요. 책은 누군가의 기억이 담긴 매체이고, 독서는 누군가의 기억을 해독하는 과정이라죠. 그 해독 과정을 기억할 수 있는 보조 장치 역할로 여백을 이용해서 무엇인가를 적어 보고 밑줄도 쳐보고 하면서 고민하는 흔적! 그 작업이 고스란히 여백의 메모로 남은 나만의 책! 니은 서점에는 책이 많지 않지만 손이 탄 책이 더 많아지면 좋겠어요. 단어와 문장을 기억하고 전체 줄거리에서 길을 헤매지 않게 요약을 하고 표식을 하면서 차분한 마음을 갖는 것! 책을 읽고 그 책의 내용을 기억하는 스마트폰에 잠식당하기 전의 순수한 뇌로 돌아가고 싶어요!


이제와 생각해보면 책방 주인에 꽂혔던 때는 디지털 치매와 집중력 저하로 힘들던 시절이었어요. 다시 나만의 공간에서 천천히 책 읽기를 시작하고 책방 주인의 꿈은 잠시 미뤄 둬야 할 것 같아요.

 



이 글을 쓰면서 읽었던 책 목록

노명우, <이러다 잘될지도 몰라, 니은 서점>, 클 | 2020.

브로드컬리 편집부, <서울의 3년 이하의 서점들 : 책 팔아서 먹고살 수 있느냐고 묻는다면>, 브로드컬리 |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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