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파리지언니 Sep 15. 2019

암스테르담 디자인 DNA & 암스테르담 SCHOOL

여섯째 날

암스테르담이 가지고 있는
DNA이자 세 가지 핵심가치는
Creativity, Innovation, Sense of Commercial입니다.


건축 또한 디자인의 한 분야로 암스테르담의 디자인 DNA와 결이 같습니다. 언제 지어졌는지 어떤 용도인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암스테르담 학파의 역사적인 건축도 상업적 배경을 가진 최전방의 건축도 Creativity, Innovation, Sense of Commercial 세 단어로 공통분모를 찾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섯째 날은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갔다가 다시 뭍으로 와서 국제 업무 단지를 들르고 인공섬 주거단지를 다녀오는 등 시대와 용도를 불문한 여러 건축물을 보았습니다.



Adam tower (Claus en Kaan Architecten, 2014 리노베이션)


암스테르담 역 뒤편으로 걸어가면 구도심과 북부지역을 연결해주는 연중무휴 무료 페리 정류장이 있습니다. 구글 맵을 봐도 암스테르담은 다리가 없고 바다 아래 터널만 두 군데로 나타납니다. 로테르담은 다리가 개이고 터널이 하나로 보입니다. 두 도시만 봐도 다리가 거의 없는 것이 의아했는데, 그 이유는 바다가 물류의 동선이자 중요한 교통 루트로 굳이 배가 다니는 것에 방해가 되는 다리를 만들기보다는 수상교통수단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날 아침에 멀지 않은 거리였지만 잠깐이나마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면서 느낀 바다 내음과 울렁거림이 기억납니다.


Eye film Museum & Adam tower  ⓒ CHI


1966년 네덜란드 건축가 Arthur Staal에 의해 설계된 건축물로 "쉘 타워 (Shell Tower)"로 불리며 쓰이다가 2014년에 Claus en Kaan Architecten에 의해 사무실, 엔터테인먼트 관련 시설, 회전 레스토랑, 전망대 등으로 리노베이션 하였고, 2016년에 타워는 2년 동안의 개축 공사를 거쳐 A'DAM Toren으로 이름을 바꾸어 변신하게  되었습니다. 외관은 1960년대에 지어졌다고 하면 고개를 끄떡거릴 만 하지만 내부의 콘텐츠 구성은  때론 잔망스럽기 까지 했으며, 특히 Heavenly elevator는 100미터를 22초의 스펙터클한 조명과 음악으로 연출하며 관람객을 로비에서 전망대로 이동하는 예상치 못한 경험을 선사해 줍니다.



전망대 놀이기구 ⓒ JIN
창 문 밖으로 저 멀리 작게  보이는 NDSM-werf & IJ-Hallen ⓒ CHI



빛과 공간 움직임의 환영이라는 영화 콘셉트를 기반으로 건축한 이 건물은 인간의 동작을 통해 공간이 변화하는 체험을 선사합니다.



Eye film Museum (Delugan Meissl Associated Architects 2012)


빈을 거점으로 활동하는 델뤼한 메이슬 합동 건축사무소는 영화가 빛과 공간, 움직임 사이의 상호작용을 담아내듯 관찰하는 장소와 시간에 따라 시각적으로 변하는 동적 구조물로 아이 박물관을 구상했다고 합니다. 구도심의 역사지구와 극명하게 대비를 이루는 낯선 조형언어로 디자인된 이 곳은 다양한 영화가 상영되고 연 4회 전시회가 열리는 입니다. 로비에서 느낀 공간감만큼이나  기념품 판매점 굿즈들이 좋아서 한참을 머무르며 다들 쇼핑에 바빴던 곳입니다.


 ⓒ CHI
내부의 대공간은 건축가의 의도처럼 움직일 때마다 변화하는 다양한 공간을 볼 수 있다. ⓒ CHI


전 세계적으로 조선산업이 쇠퇴하면서  한국 또한 폐조선소 재생사업이 이슈입니다. 통영 폐조선소 재생 현상설계에 참여할 뻔했는데, 그때 유사 개발 사례로 NDSM-werf에 대해 리서치를 하면서 이 곳에 안 가 본 것을 크게 후회했습니다. 결국 한국의 통영 폐조선소는 리스타트 플랫폼으로 지역 청년과 조선소 실직자들을 위한 창업·취업교육, 지역 주민과 관광객을 위한 문화 예술 관련 프로그램 등을 운영할 수 있는 창업지원센터 및 다목적 공유 공간으로 개발된다고 합니다.


멀리서 바라본  NDSM-werf & IJ-Hallen


NDSM-werf


이 곳은 버려진 조선소에 예술가들이 모여들면서 예술, 공연, 축제가 열리는 곳으로 호텔과 카페 실내 스케이트장까지 들어서 있는 그야말로 예술가들의 창의적 놀이터입니다. NDSM-werf에 창고를 개조한 에이 할런은 암스테르담에서 가장 규모가 큰 벼룩시장이 열리는 곳으로 한 달에 한 번 열립니다.


에이 할런 내부


도시의 유휴공간은 작업공간이 필요하지만 주머니가 가벼운 예술가들이 가장 먼저 그 가치를 알아보고 점유하는 경우가 흔합니다. 이 곳뿐만 아니라 De Ceuvel 같이 암스테르담에는 예술가들이 점령하여 만들어낸 자유로운 분위기의 어슬렁 거리기 좋은 힙한 공간이 꽤 많아 보입니다. 사실 이것이 도심재생의 한 모습입니다. 정부는 창의적인 예술가 집단에게 도시의 유휴 공간을 선사하고, 그들은 이 곳을 완벽하지는 않지만 자유롭게 주도적으로 점유하면서 결국 시민들도 오고 싶문화 예술의 메카로 탈바꿈시킵니다. 이런 현상은 정부가 일방적으로 콘텐츠를 제공하고 공적자금을 쏟아붓는 재생 방식이 성공하기 어려운 이유를 보여줍니다.

다음에 암스테르담에 갈 일이 생기면 무료 페리를 타고  NDSM 베르프와 날짜를 맞추어 에이 할런 벼룩시장에 꼭 방문해 봐야겠습니다.



다시 암스테르담 구도심으로



Beurs van Berlage (베를라헤 증권 거래소, 1898~1903)


ⓒ JIN


베를라헤 증권 거래소는 현상설계로 당선되었습니다. 당선 후 최종안에서 베를라헤는 적게나마 로마네스크 양식을 연상시키는 형태를 사용하였습니다. 그는 주의 깊게 중세 건물을 연구해 왔기 때문에 비례 법칙을 재해석한 로마네스크에 대한 베를라헤의 접근 방식은 역사적 형상의 일시적 모방과는 다르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19세기 네덜란드 회화와 건축은 상당히 절제된 모습을 보여주었는데 암스테르담 증권거래소는 이런 시대에 네덜란드에 새로운 활력을 불러일으킨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 JIN


Architectura & Natura




다시 뭍으로 돌아온 우리는 담광장 근처 레스토랑에서 점심을 먹고 커피를 마신 뒤 베를라헤 증권 거래소를 보고 잠깐의 자유시간을 갖기로 했습니다. 길게 줄이 늘어선 안네의 집 보는 것을 포기하고 그 근처에 건축 전문 서점에 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75년 넘은 건축, 조경 전문 서적 판매점으로 아담하고 안락해 보이는 서점이지만, 훌륭하고 격조 높은 고전 수집품, 자체 출판물, 유럽과 일본의 독립출판사와 세계적인 출판사에서 출판한 다양한 잡지와 책을 볼 수 있는 곳으로 유명합니다. 자유시간이라고 했는데 책을 좋아하는 몇몇은 이 곳에서 우연히 다시 모이게 되었습니다.



Magna Plaza


혼자 운하를 거닐며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다가 백화점에 들렀습니다. 도시를 대표하는 상업시설도 꼭 들러봐야 할 중요한 도시 공공공간이기 때문입니다. 이 곳은 건축가 Cornelis Hendrik Peters에 의해 1899년에 런던의 의회 건물로 대표되는 고딕 양식과 낭만적인 요소가 혼합된 신고딕 스타일로 건축한 Magna Plaza입니다. 1987년에 스웨덴 부동산 회사에 팔렸지만, 건축적인 주요 요소들은 보존되었습니다. 그 후 도시 중심부에 있는 최초의 실내 쇼핑 및 라이프 스타일 센터로 변신하게 되었으며, 1992년에 아름다운 건물로 암스테르담시에서 가장 가치 있는 10개의 기념물 목록에 추가되었습니다. 19세기 공간에서 21세기 상품을 파는 셈인데 에스컬레이터 등 수직 동선도 크게 불편하지 않았고, 엠디도 트렌디하게 잘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 CHI
ⓒ CHI



더다헤라트 단지는 암스테르담 스타일 건축의 정점이죠.
더다헤라트를 거닐면 항상 이곳에 깃든 창작에 대한 열망을 느낄 수 있어요



De Dageraad


유럽 도시사를 기술한 책을 보면 1830년과 1850년 사이는 런던을 중심으로, 1850년과 1870년 사이는 파리를 중심으로, 그리고 1900년대와 1930년대 사이 암스테르담을 보여주며  도시계획 상황을 살펴봅니다.  흥미로운 점은 어떤 계급을 위해 건축과 도시가 만들어졌을까 하는 인데요. 런던의 초기 광장과 크레센트는 가장 부유한 중상류층 계급과 신사 계급을 위해서, 파리 오스만 대로 건축의 주요 대상은 중류층을 위해서, 암스테르담 건축은 중하류층과 노동자 계급에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 만들어졌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 JIN
ⓒ JIN

손세관 교수님께서 쓰신 '집의 시대 시대를 빛낸 집합주택'의 내용을 빌리자면, 더클레르트를 중심으로 결성된 암스테르담 학파는 이 시대의 집합주택을 사회적 예술, 노동자를 위한 미학이라고 생각했으며 당시 네덜란드 건축계의 대부였던 베를라헤와도 생각을 달리했다고 합니다. 도시 전체의 조화로운 아름다움을 강조한 베를라헤는 도시의 한 주거지가 특별한 모습으로 튀는 것을 경계했고 재료, 구조, 기능의 합리성을 강조하며 미학적 객관성을 존중했습니다. 반면 암스테르담 학파 건축가들은 '합리성'이란 개념 자체를 받아들이지 않고 톡톡 튀는 재료의 사용 등 독자적인 미학을 추구했다고 합니다. 표현주의 건축의 상징으로 조각 같은 외관, 무늬를 넣은 미장 벽돌로 건축가가 고안한 벽돌, 연철 장식을 사용하면서 말이죠.


ⓒ JIN

왕성한 활동을 하던 중에 더클레르크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암스테르담 학파의 쇠퇴에 크게 작용했습니다. 1930년을 기점으로 학파는 활동을 접었는데 결정적인 원인은 '기능주의'라는 생산, 기능, 순수 미학을 추구한 사조로 암스테르담 학파가 추구한 표현적 성향과 정면으로 배치되었기 때문입니다.


그 이후 암스테르담 학파는 오랜 기간 역사의 본류로부터 밀려나 있다가 1970년대 이후 근대건축의 산물이 비판의 대상이 되면서 50년에 가까운 소외의 침묵을 깨고 새롭게 평가되고 있습니다. 그들이 추구한 표현주의는 매우 독창적이었을 뿐만 아니라 모든 계층이 어우러지는 사회주의적 유토피아의 열망을 담고 있다는 평가를 받게 됩니다. 현재 노동자 계급이 살던 표현주의 주택은 부분적으로 용도가 변경되어, 현재는 박물관 헷스힙Het Schip의 방문객 센터로 사용되고 있지만, 주택을 통해 사회민주주의의 가치를 구현하고자 한 더다헤라트의 열망은 암스테르담 학파 이후 수준 높은 공공주택을 짓는 전통으로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기행의 목적은 혁신적인 도시 건축과 콘텐츠를 보고 느끼고 기록하는 것입니다. 혁신적이라는 것이 꼭 최신이어야 하고 최전방에서 앞서가야는 건축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저 또한 크게 변화하는 시대에는 과거를 모르는 사람이 유리하다는 것에 어느 정도 동의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건축물이든 어떤 현상이든 맥락적인 인과 관계가 배제된 최종의 트렌드만을 잘 파도 뭔가 새롭고 혁신적인 디자인을 끌어낼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생각이 바뀌면서 당장 실질적인 디자인에 도움이 되지 않겠지만, 보는 눈과 생각하는 힘을 기르기 위해 묵혀 두었던 인문 기행과 건축사 책을 다시 읽기 시작했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