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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리지언니 Sep 14. 2019

암스테르담의 바다와 건축

다섯째 날


암스테르담은 1900년대 이후 파괴되지 않은 상태로 도시계획의 전통을 보여주고 있는 몇 안 되는 유럽의 도시들 중의 하나입니다. 중단되지 않은 건축활동이 일어난 곳이라 오랜 기간의 발전 과정을 관찰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이 시대에 적용되고 있는 주요 사조를 연구하는데 가장 적합한 도시라고 하는데요, 실제로 암스테르담의 도시계획은 어떠한 변덕스러운 개발도 없었고, 유토피아적인 계획도 없었으며, 오직 꾸준한 진보만이 있었다는 역사적인 평가를 받기도 합니다. 다섯 째날 오후에는 부두가로 이동하여 바다와 어우러지는 1900년대 건물과 현대 건축을 보았습니다.



부두를 따라 걸으며 암스테르담이
어떻게 항만 지구에서
건축가들이 사랑하는 천국으로
탈바꿈했는지 살펴보세요!




The whale (Cie, 2000)


멀리서 보면 살짝 고래를 닮은 듯 ⓒ CHI


암스테르담 중정형 주택은 기후 특성에 순응하는 형태로, 특히 해안가 근처 집합주거에서 보이는 특성 중에 하나가 아닐까 싶습니다. 고래라고 이름을 붙인 집을 만든 건축회사 Cie는 주변 바다에서 영감을 받아 블록과 열린 공간의 변화에 따른 리듬을 감안한 저층 건물의 바다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사선으로 만든 스카이 라인으로 변화를 주고 저층부를 시각적으로 볼 수 있는 구조로 만들었다는 뜻 같습니다. 그날 하필 중정으로 들어가는 문이 잠겨서 못 들어가 보았지만, 비바람이 몰아치던 날이라 바다 바람으로부터 확실히 보호되고 위요되는 그들만의 중정은 조용한 다른 세상을 보여주기에 충분해 보였습니다.


 저층부 ⓒ CHI
잠겨서 못 들어가 본 중정 ⓒ JIN


박인석 교수님께서 쓰신 아파트 한국사회라는 책에는 기후에 순응하는 일자형 배치와 중정형 배치에 대하여 설명이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왜 매일 성냥갑처럼 획일적인 남향 배치로 유럽처럼 중정형 주택을 만들지 못할까하는 질문에 대한 논리적인 답변입니다.

한국의 도시는 연중 월평균 일조 시간이 150~240시간 범위 내에서 고르게 분포하지만, 유럽의 도시는 겨울에는 50시간 이하 여름에는 200시간 이상으로 변화의 폭이 큽니다. 특히 겨울에는 일조 시간이 현저히 줄며 햇볕의 양적 부족으로 질을 따지기보다는 오전에는 동쪽 햇볕을 오후에는 서쪽 햇볕을 받을 수 있는 북북서 남남동 향이 유리하다고 합니다.

상대적으로 사시사철 햇볕이 충분한 한국에서는 햇볕의 질을 따지는데 깊숙한 햇볕은 피하고 낮 시간 동안 적당한 깊이로 드는 남향을 태생적으로 선호할 수밖에 없으며, 남향집은 햇볕이 잘 든다라는 말은 햇볕이 많이 든다는 것이 아니라 좋은 햇볕이 적당하게 든다라는 뜻으로 봐야 합니다. 중정형 주거의 태생적 이유는 일조량이 적은 유럽의 도시에 속하며 바람이 많이 부는 암스테르담 해안가의 집합주거를 보면 절로 이해가 됩니다.



Piraeus  (Hans Kolhoff, 1989-1994)


맞은편에서 바라본 ⓒ CHI


벽돌은 네덜란드 건축의 전통적인 재료입니다. 석재, 목재를 쉽게 얻을 수 없었던 자연환경에도 기인하지만, 네덜란드가 라인강을 비롯한 여러 강들의 하구에 위치하고 있어서 벽돌을 구울 수 있는 진흙을 가장 손쉽게 얻을 수 있는 환경적인 이유이기도 합니다. 1990년대 중반부터는 경제적인 이유로 짙은 색의 벽돌이 다시 사용되면서 90년대 후반의 흐름인 '신전통주의'(neotraditionalisme)와 연관을 맺게 되는데, 암스테르담에 이를 잘 표현한 건축가 중 한 사람이 독일 건축가 한스 콜호프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가 설계한 덴하그 법원 고층 건물 외장에 벽돌을 현대적으로 사용한 것에 깊은 인상을 받았고,  다시 KNSM eiland에 있는 중정형 주택에서도 네덜란드 벽돌의 맛?을 잘 표현했다고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학생 때부터 궁금했던 중정의 계단과 중간에 알 박혀 있는 듯한 건물 ⓒ JIN
학생 때부터 궁금했던 열주들. 구조체로 쓰일 수는 있겠지만.. 너트를 끼운 듯한 저 형상은 무엇일까? ⓒ CHI


중정의 외부 계단과 필로티 밑의 너트를 끼운 듯한 열주는 저의식 표현으로는 쿨한 오브제입니다. 작가가 의도하는 바가 있겠으나, 우리는 잘 읽을 수 없는 쿨한 공간들. (사실 많이 찾아보지 않아 제가 의도를 모를 수도 있습니다.)


ⓒ CHI


지어진 지 20년이 훨씬 넘었는데도 유지관리 상태가 좋아서 백화현상도 없었고 벽돌면의 하자도 크게 보이지 않았습니다. 주거만 있는 것이 아니라 1층에는 샵과 아뜰리에가 있고, 그 사이에 집으로 들어가는 나무로 만든 현관문이 벽돌과 잘 어울렸습니다. 실제로 사는 사람의 거주 평가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30살을 달려가는 이 집은 낡았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고 격과 기품이 있어 보였습니다.




다양한 건축가와 아티스트의
설치미술, 퍼포먼스를 통하여
100년 동안의 업사이클 디자인을 완성한 호텔



Lloyd hotel & Cultural Embassy (MVRDV, 2004)


ⓒ CHI


1920년대에 지어진 로이드 호텔은 지어질 무렵에는 호화로운 이민자 호텔로, 종전 후에는 교도소로 사용되다가 1989년에 이르러서야 작업 공간이 필요했던 유고슬라비아 출신의 가난한 예술가들이 작업실로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 1996년이 돼서야 암스테르담 시는 로이드 호텔을 주목했다고 합니다.

긴 역사를 가진 건축물을 최선의 목적으로 활용하기 위한 방안을 공모했고, 암스테르담 시의 문화대사로 활용하자는 의견을 수용해 디자인 호텔로 탈바꿈하기 시작했습니다. 네덜란드를 대표하는 건축 스튜디오 MVRDV가 리모델링을 맡았으며 완공 83년 만인 2004년에 이르러서야 마침내 호텔 본연의 모습을 되찾고 문화 대사관과 1성부터 5성까지 다양한 룸으로 구성된 1백16개의 객실을 보유하고 있는 호텔로 운영되기 시작합니다.



내부를 리모델링하며 만든 VOID와 MASS
 매스 사이 VOID가 만드는 호텔 안 비일상적 공간  ⓒ CHI


1900년 풍의 외관과는 대조적으로 내부는 다이내믹한 공간을 품고 있습니다. MVRDV와 디자이너 예술가들이 협업해 완성한 현재의 인테리어는 현대적인 열린 공간으로 재탄생되었습니다. 실제로 매스 사이에 걸쳐져 있는 빈 공간의 계단을 오르다 보면 다리가 후들거리는 아찔함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가이드 투어(1시간 14.5유로)가 있다고 하니 미리 예약하고 설명을 들어도 좋을 것 같습니다.



ⓒ CHI
ⓒ JIN


이 곳에는 문화 대사관답게 포스트 패닉이라는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로 구성된 네덜란드 영화 제작 스튜디오가 있고, 광고와 장편영화 분야에서 유명하다고 합니다.1층 로비와 카페 뿐만 아니라 중앙의 빈 공간으로 연결되는 계단을 따라 올라가며 이어지는 호텔 편의시설이자 문화시설로 쓰이는 공간을 볼 수 있고, 객실 복도까지도 들어 가 볼 수도 있습니다. 이후에 방문한 암래드 호텔도 그렇고 외부인에게 관대한 호텔입니다. 로이드 호텔 카페에서 파는  진저에일이 참 맛있었습니다. 카페만 들러보기에도 좋은 호텔입니다.



ⓒ JIN

Hospitality. 본질을 놓고 봤을 때 호텔과 병원 심지어 교도소는 근본이 같다고 볼 수도 있기 때문에 이 곳은 예전의 교도소의 분위기를 살린 방도 있다고 합니다. 성급만큼이나 가격대도 다양하니 암스테르담에 머무를 일이 있다면 꼭 머물러 보고 싶은 호텔입니다.




걷다 보니 큰 지붕 아래 공연장



Muziekgebouw aan 't IJ (3xn, 2005)


"Music Building on the IJ" ⓒ JIN


로이드 호텔을 나와서 걸어간 곳은 트램과 자동차 도로 항만지구가 혼재된 복잡한 풍경이었습니다. 휴먼스케일을 벗어난 인프라 속에 들어온 느낌이었고, 눈에 보인다고 걷다가 자칫 길을 잘 못 들면 뱅 돌아서 가야는 불편한 곳이었습니다. 이런 곳에 문화시설이 모여 있다는 것은 가야 할 이유가 있어야 하는 곳일것 같은데, 뮤직 헤바우는 큰 지붕 아래 모여 있는 공연장으로 사람이 스미는 디자인을 잘 보여줍니다.


큰 지붕 아래 공연장 개념을 잘 보여주는 ⓒ 3xn
ⓒ JIN
ⓒ JIN
ⓒ CHI


큰 지붕 아래는 공연장과 암스테르담 시내를 향해 돌출되어 박혀 있는 매스가 유리로 감싸져 있으며, 그 사이사이로 비워져 있는 공간은 물이 낮은 곳으로 고이듯이 사람들이 스미기 좋은 구조를 만들고 있습니다. 자연스럽게 보행교에서 걸어 들어와서 내려가다 보면 암스테르담의 바다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공연장 로비를 만나게 되니까요. 결과적으로 비워진 커다란 매스 사이 공간들이 휴먼스케일의 이동통로와 휴식공간으로 잘 계획된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멋진 테라스가 딸린 레스토랑이 두 군데 있는 공공도서관



Public library of amsterdam Jo Coenen & Co Architekten, 2007)



 

ⓒ CHI


암스테르담 공공도서관은 정부의 지원을 받고 있는 사설 도서관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도서관뿐만 아니라 지역사회와 관련된 활동, 모임, 공부 장소, 라디오 방송 스튜디오, 소규모 강당, 어린이 도서관 등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는 시설로 지역민을 초대하고 있습니다. 도서관이 공공도서관의 이름을 갖지만 민간기업이 운영하다 보니 다른 파트너 업체들과의 협업으로 벌어들이는 임대 수익 또한 도서관 운영에 있어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합니다. 특히 지속적인 운영을 위한 수익을 위해 맨 꼭대기 층에는 바다를 바라보는 풍경이 압도적인 멋진 테라스가 딸린 레스토랑 두 군데를 유치하고 있습니다. 이 도서관은 일반시민이 카페를 왔다가 도서관을 이용할 수 있고, 책을 보다가 카페에 가서 커피와 식사를 즐길 수도 있는 도서관 사례로 유명합니다. 이 도서관을 보면 앞으로의 도서관은 일반시민의 생활기반시설과 결합되어 더 편하게 지식을 접할 수 있는 곳으로 변화하면서, 운영적 측면으로는 수익시설과 결합하여 지속 가능한 수익을 창출하는 곳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 JIN


건축가의 독특한 조형언어를 보여주는 딱딱해 보이는 외관과는 다르게 내부는 도서관 기능을 말랑말랑하게 담고 있었습니다. 건축가 요코 넨은 로테르담에 있는 건축가협회 건물을 디자인한 건축가로, 암스테르담 공공 도서관을 설계하면서 도서관의 기능과 융통성 있는 내부 디자인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도서관에서 바라본 NEMO Science museum ⓒ JIN


암스테르담 중앙역 근처는 20여 년 전만 하더라도 운하만 흐르던 개발 예정지였다고 합니다. 현재는 도서관뿐만 아니라 그 옆에 콘서바토리(음악대학)와 고급 호텔 등이 어우러진 비즈니스 타운이 되었고 NEMO과학박물관으로 연결되며 크게 문화 블록을 만들고 있습니다.



Amrath hotel

ⓒ JIN


공공도서관 맞은편에 물 위에 떠 있는 듯한 호텔이 보입니다. 1916년 문을 연 이 호텔은 쉽바타우스(Scheepvaarthuis·Shipping House라는 의미)라고 불리며,  암스테르담 학파의 1세대 건축물로 급진적인 표현주의 양식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 JIN
ⓒ JIN
ⓒ JIN


네덜란드 100대 유산에 선정될 정도로 문화·역사적으로 가치 높은 건축으로 오후 5시가 넘어 무척 지치고 힘든 때에 갔지만 내부의 클래식하고 독특한 아름다움에 눈이 희번덕 뜨였던 기억이 납니다.


오후에 돌아본 암스테르담!

바다가 보이는 로이드, 암래스 호텔 등 1900년대 양식의 역사적인 호텔부터 뮤직 헤바우, 공공도서관 등 현재의 문화시설과 주거, 상업시설들이 조화롭게 배치되어 활기가 넘치는 작은 워터프론트 도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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