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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효진 Aug 31. 2024

워킹맘이 행복하려면 느슨한 관계를 꽉 잡아라

비로소 행복지도를 만드는 두 번째: 사회적 활동과 인간관계

지난해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 육아휴직으로 회사를 쉬게 되었다. 육아휴직이라는 말을 곱씹어 볼수록 많이 부담스럽다. 일을 쉬는 이유가 나에게 비롯된 일이 아닌 데다 쉰다는 말 자체도 왠지 내가 나아가지 못하고 정체되어 있다는 의미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오히려 육아휴직을 하는 처음 몇 달간은 아이 초등학교 입학으로 우울하거나 좀이 쑤시거나 할 틈이 없었다. 아이 통학을 함께하고 방과 후 수업 같은 행정적으로 챙겨야 하는 것들이 많아서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했다. 또 회사에서는 업무 관련 인수인계한 내용에 대해 확인 연락이 잦았다.


학기 초가 지나고 하루 일정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자 몸이 바쁜 것에 비해 내 시간이 아깝게 흘러가는 것 같았다. 회사 다닐 때는 멀리 통근하느라 소홀히 하던 집안일을 챙겨보기도 하고 남편과 아이와의 친밀한 시간을 보내고자 하였다. 하지 않던 일을 하려니 잘 하는 것인지 의문스럽기도 하고 조금은 무력감을 느꼈던 것 같다. 언제나 변화에는 부침이 따르기 마련이다. 그것이 내가 원하던 방향이 아니었다면 더욱 그렇다.  


다행히 아이가 학교에 적응하고 나역시 나와 가정의 일상을 조금은 더 잘 돌보게 되었다. 육아휴직으로 집에 있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나만의 시간이라고 공인된 시간을 만들었다. 그 시간만큼은 책을 읽고 운동을 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그 시간이 지나고 나면 나는 더 가정에 헌신할 수 있고 가족을 더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의 준비가 되었다. 이런 시간은 다른 시간들도 값지게 보낼 수 있게 신경쓰게 되었다. 가사 루틴이 자리를 잡았고 가족과의 시간도 여러 가지 룰을 만들어 가며 예전보다 단란한 시간이 늘었다. 좀 더 활기찬 일상이 찾아온 듯했다.


앞에서 먼저 이야기한 행복지도의 첫 번째 요소로 언급했던 '건강과 자기 관리'를 통해 자존감을 키우고 나의 가치를 찾아보는 시간을 가지게 된 것이다. 비록 육아휴직 시작은 아이를 위한 수동적인 시작이었으나 아이를 돌보며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함께 가졌다는 면에서 나에게도 의미 있는 시간으로 변화하였다.



비로소 행복지도를 만드는 두 번째 요소는 사회활동과 인간관계다.



시간이 지나면서 다시금 가정 바깥의 사회적 활동에 대한 욕구가 찾아왔다. 휴직기간은 일시적이고 한정적이므로 어렵게 찾은 평화로운 일상을 임시로만 흘려보내는 것이 아까웠다. 게다가 아이의 학교 생활에도 좀 더 관심을 가지고 시간을 낼 수 있다면 그렇게 해보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워킹맘에게 사회활동과 인간관계는 또 다른 가능성을 열게 만드는 비밀 열쇠 같은 것이다. 가족과의 관계처럼 애정 혹은 애증으로 연결된 끈끈한 관계보다는 다소 느슨하고, 세상 딱딱한 계약 관계로 모인 회사 동료들과의 관계보다는 좀 더 인간적인 관계라고 할 수 있다. 느슨한 관계에 있는 사람들과는 적당히 말랑하고 적당한 거리를 가지고 있다. 가족만큼의 관심이나 기대가 없기 때문에 오히려 편안한 관계다. 가족보다는 느슨한 관계에서 내 속에 가진 이야기나 꿈에 대해 이야기하기가 훨씬 쉽다고 한다. 생각하지 못했던 지혜를 얻기도 하고 위로를 받거나 내 안의 개구쟁이를 만나게도 한다. 다만 이것은 나의 시간을 풍족하게 해 준다는 점에서 일상을 배제한 일탈과는 다른 것이다.


느슨한 관계처럼 새로운 관계들 속에 나를 던져주고 나면, 주변을 탐색하고 사람들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것에서 새삼 새로움을 느끼게 된다. 이런 감각을 통해 경험하는 시간은 내가 가진 생각이나 가치관이 어떤 것인지를 되돌아볼 수 있게 한다. 이 시간이야말로 객관적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내가 어떻게 비칠 것인지에 대해 다시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다. 그래서 사뭇 조금은 긴장하게 되고 자세를 고쳐 잡고 옷매무새를 단정히 하고 말투나 어휘에도 조금 더 신경을 쓰게 된다. 어쩌면 내가 그 관계 속에서 가지는 페르소나를 연기하는 중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던 참에 아이 학교 알람 어플에 '책 읽어주는 엄마' 봉사자 지원 공고가 올라왔다. '책읽맘'은 학교도서관에서 매주 아이들에게 그림책을 읽어주는 역할을 하는 엄마 선생님이다.


'책 읽어주는 엄마' 활동에 모인 엄마들은 1, 2학년 재학생을 둔 엄마들이었다. 같은 학교에 다니고 있지만 아이들의 학년, 성별, 엄마들의 나이나 직업도 다양했다. 이미 작년부터 활동하고 있는 선배 엄마들도 있었고 나처럼 처음 들어온 엄마들도 있었다.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는 매주 화요일 점심시간에는 아이들과 책을 읽고 아이들이 안전하고 질서 있게 참여할 수 있도록 안내해 주고 간단한 이벤트를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2학년 엄마들은 1학년 엄마들에게 학년이나 학교에 대한 정보를 주기도 하고 육아나 방과 후 활동에 대한 경험을 나누기도 하였다.


'책읽맘'들 속에서 나는 선배 엄마들의 말을 듣는 후배로, 다른 엄마들의 경험을 듣는 청취자로 귀를 열고 입은 닫아두었다. 엄마로서의 가치관, 아이를 대하는 태도, 교육방식과 여가활도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 속에서 나는 리더도 아니고 어떤 목표를 가진 일을 하는 것이 아니었기에 마음이 자유롭고 여유로웠다. 그렇지만 진지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각자 엄마 선생님으로서 그림책에 대한 열정이 자라나고 그림책을 읽어주는 시간의 약간의 아이들의 눈길을 사로잡는 기술을 연마하게 되었다. 그림책에 담긴 이야기와 그림을 더 잘 전달하고 싶어지고 아이들의 반응을 보면서 다음을 더 잘해야겠다는 열의도 생겼다. 아이는 엄마가 책을 읽는 날에는 맨 앞자리에 앉아서 '우리 엄마다'라는 걸 은연중 드러내고 있는 모습도 동기부여가 되었다.


역량강화를 위해 학교에서는 그림책 읽기 4주 특강을 마련해주기도 하였다. 엄마들이 책 읽는 날 2시간 먼저 와서 수업을 들었는데 글 없는 그림책, 책 고르는 법, 발성과 캐릭터 이해 등에 관한 체계적으로 구성된 수업을 통해 전문적인 아동도서 책 읽기 지식을 얻을 수 있었다. 선생님의 열정과 그것에 집중하는 엄마들과의 교감하는 경험이 새롭게 다가왔다. 이런 탐색의 시간을 겪게 되면서 나는 이 경험을 어쩌면 내 미래의 일에 깊이있게 활용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또 다른 느슨한 관계에 대한 경험도 있다. 한 번은 출강하는 학교에서 교강사를 대상으로 한 교수법 특강 신청 안내 메일이 왔었다. 준비된 특강은 발성과 말 잘하는 법에 관한 주제였다. 학생들을 대상으로 강의하는 교강사들에게는 전달력, 소통, 호응을 이끌어 내고 수업에 집중하도록 하는 비언어적인 제스처 등에 관한 고민이 있었다. 이런 고민을 해소해 줄 만한 수업이라 생각이 들어서 특강에 신청하게 되었다. 수업에는 연배가 있으신 교수님부터 학습센터 연구원 선생님까지 다양한 전공의 선생님들이 모였다. 같은 학교에서 강의하는 일을 하는 분들이지만 서로 잘 알지 못하는 사이가 많았다. 그럼에도 선생님들의 교양 있는 태도, 수업에 임하는 진지함, 질문을 하는 열정을 서로 주시하고 있었다.


이 특강은 2주간 진행되었는데 나는 2번의 특강을 모두 참여하였다. 일부러 앞자리에 앉았고 발성이나 개인별 돌아가며 짧은 원고를 읽는 시간도 최선을 다했다. 두번째 날에는 첫번째 날 보다 열정적으로 참여한 한 선생님의 유머러스한 이야기에 좀 더 편안한 마음으로 웃을 수 있었고 다른 선생님의 질문에는 공감하며 그 선생님의 실습을 좀 더 응원하며 바라보게 되었다. 이날 강사님은 나에게 전 주보다 좋아졌다고 칭찬을 해주었다. 한 주간 수업 내용을 되뇌며 나름 연습을 한 효과를 본 셈이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만약 작년의 나였다면 이런 특강에 참여하겠다고 신청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나는 전임교수가 아니기에 이런 특강에 참여하는 것에 다소 의기소침하기도 하였을 것이다. 그런데 나 스스로의 가치를 찾아보다 보니 다른 누군가의 생각을 신경쓰는 것을 그만두게 되었다. 나를 더 잘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싶었다. 그런 욕망이 만들어지고 나니 낯선 사람들과 함께 무언가를 해보려는 시도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졌다. 특강은 주기적으로 같은 인원이 하는 것은 아니지만 같은 학교에 소속된 서로 다른 전공의 교강사가 하나의 수업을 들어보고 그 속에서 각자의 활용에 대한 질문과 대답이 오가는 것을 보는 것으로 작은 공감대를 느꼈다.



문화기획 행사를 운영했던 경험을 돌이켜보면, 이런 느슨한 관계가 가지는 낯섦과 긴장이 나의 내면을 다시 보게 하는 힘을 기르는 것이 틀림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내가 비로소라는 문화기획 회사를 운영하며 작은 워크숍을 운영한 일이 여러 차례 있었다. 내가 직접 호스트가 되기도 하고 다른 호스트, 강사의 워크숍을 운영하기도 하였다. 그때 모인 사람들의 모습이 정말 다양했다. 회사원, 학생, 예술가, 백수, 주부, 은퇴자 등 각자의 목적과 사연이 있는 사람들이 캘리그래피를 그리고 책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원석 주얼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이도 사는 곳도 배경도 다른 이들이 하나의 주제로 모여 몇 시간이고 주기적으로 어울리는데 그때마다 분위기는 참으로 화기애애했다. 그전에는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이 이렇게 모일 수 있게 만든 힘은 무엇이었을까?


여러 주제의 워크숍과 토크쇼, 전시 등에서 만나는 다양한 사람들에게는 에너지가 느껴졌다.



새로운 공간에 새로운 목적을 가지고 누군가와 시간을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은 일상에 자극이 되면서 나에게도 긍정적인 영향을 주게 된다. 자기 내면을 들여다보는 것만큼이나 바깥에서 자신의 모습을 그려내는 활동도 필요한 것이다.


워킹맘은 가정에서 다양한 선택과 실천을 주도적으로 해야 하는 위치라서 스트레스가 많을 때가 있다. 회사에서도 업무적으로 받는 다양한 스트레스 외에도 사람 간의 관계에 따른 피로가 있을 수 있다. 느슨한 관계 속에서는 누가 대신해주지 않는다는 불안이나 책임은 다소 내려놓을 수 있다. 다른 사람들의 생각과 시각을 읽는데 초점을 맞출 수 있어서 오히려 위안이 된다. 꼭 무언가 생산적인 것을 해야만 하는 것도 아니고, 나의 모습 그대로를 드러낼 수 있는 새로운 공간과 적당히 물러나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새로운 에너지를 얻게 되는 셈이다.


나만의 시간을 가지고 그 속에서 진지하게 자아에 대해 생각해보았다면, 좀 더 바깥에서 나와 다른 사람들의 시각을 읽고 공감하는 시간을 가지면 좋겠다. 그 시간을 통해 다시 나를 돌아볼 수 있고 내가 가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나의 장점을 더 잘 키워낼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를 알게 될 것이다. 





<일하지 않는 시간의 힘>이라는 책을 쓴 마릴린 폴은 일하지 않는 시간을 설계하라고 이야기한다.  일하지 않는 시간은 다음과 같이 6단계로 만들 수 있다.  


1. 충족되지 않은 욕구를 살핀다.

2. 지지대를 만든다.

3. 내면의 힘을 기른다.

4. 아이디어를 낸다.

5. 실험한다.

6. 습관으로 만든다.


이 중에서 2번째 '지지대를 만든다'부분이 바로 느슨한 관계를 만드는 사회적 활동과 관계있다.  느슨한 관계는 나의 자존감을 채우고 나를 들여다보기 위한 시간이다. 일을 하는 시간이 아니므로 일하지 않는 시간의 힘을 기르는 것이기도 하다. 그런 관계는 막연하게 집이나 회사만 아니면 되는 것이 아니다. 나에게 부족하다고 생각되는 지점을 고민하고 그것을 채울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그래야 그것을 통해 새로움을 발견하고 에너지를 비축할 수 있으며 창조적 발산이 가능한 저장고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지지대는 어떤 유형들이 있을까. 마릴린에 따르면 조언, 협력, 위로, 기념, 응원, 도전, 고무등에 관한 지지를 떠올릴 수 있다. 나에게 조언과 협력, 위로나 기념, 응원, 도전과 고무 등을 줄 수 있는 관계를 찾는 것이다. 오프라인도 좋고 온라인의 커뮤니티도 좋다. 게다가 이런 지지대는 익숙하지 않은 새로운 곳이 좋다. 남양주에 살던 서른 살 직장인은 굳이 신촌까지 와서 캘리그래피 수업을 했었다. 수원에 사는 작가님은 혜화동 갤러리 카페에서 수공예 작품을 전시하였다. 그 지역의 장소성이 가진 아우라를 경험하고 사람들과의 관계를 만드는 시간 자체를 충분히 느낄 수 있다면 그것이 나를 위한 진짜 휴식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나는 매주 화요일 11시 45분부터 1시까지 책 읽어주는 엄마 봉사활동을 한다. 온라인이나 오프라인의 유익한 강좌나 모임이 있다면 한 달에 한두 번은 참석하려고 한다. 주당 평균 4시간-5시간 정도 할애하는 셈이다. 이렇게 주기적으로 혹은 간헐적으로나마 나의 일상 범위를 벗어난 곳에서 낯선 이들 사이에서 개인으로서 나를 한번 던져 보는 것이 꽤나 기분전환이 된다. 느슨한 관계 속에서 마치 사용하지 않는 근육을 쓴 것 처럼 기분좋은 피로감이 좋다. 마침내 일상으로 되돌아왔을 때 이런 느슨한 관계를 통해 지지받는 시간이 얼마나 든든한 시간이었는지를 꼭 경험해 보길 바란다.


워킹맘들 피곤하겠지만 느슨한 관계를 한번 꽉 잡아보길 바란다.



-계속-



비로소가 기획한 느슨한 관계를 만드는 문화 이벤트는 아래 글에서 자세히 알아볼 수 있다.

https://www.biroso.kr/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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