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로 나의 삶의 가치를 발견하는 시간 2
유난히 추웠던 지난 겨울, 방학을 맞아 아이와 매주 국립중앙박물관에 갔다. 우리 선사-역사 시대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게 해주고 싶은 욕심 때문이었다.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한 견학데이트는 점점 기왕 마음 먹고 찾아보는 김에 하나라도 더 보여주고싶은 마음이 들었다. 이렇게 찾은 박물관은 실감 미디어를 활용해 지금의 생생한 모습으로 우리의 문화를 새롭게 만나게도 하였다. 그래서 그동안 익숙했던 유물들조차 새롭게 보였다. 중고등학교 한국사 시간을 떠올리며 아이에게 아는 껏 친절하게 설명해보기도 하고 급기야 국립중앙박물관 워크북도 사다 함께 읽어보는 노력도 마다하지 않았다.
이번 겨울은 꽤 추웠다. 꽁꽁 싸매고 지하철을 타고 왕복 한두시간을 걸려 외출하는 것이 번거롭고 힘들기도 했다. 그러다 펄펄 내리는 함박눈을 박물관 마당으로 난 통창을 통해 바라보게 되었다. 아직도 그 광경이 눈에 선하다. 수백년 전 유물이 정성스레 전시된 공간을 고요하게 감싸안으며 포근하고 따뜻한 느낌마저 들었다. 과연 아이에게도 그 시간의 나처럼 평화롭고 신선하면서 새로운 감각을 느꼈을까.
국립중앙박물관을 찾았던 몇 주 동안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2층의 <사유의 방> 전시였다. 아마 첫날 첫번째 찾은 전시관이었을 것이다. 무작정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아이와 올라가서 우연히 찾아들어간 공간이었다. 그것은 아이보다 엄마인 나에게 많은 것을 남겨주었다. 널찍한 공간 안쪽에 두 점의 반가사유상이 은은한 조명 아래 알듯말듯한 미소를 지으며 앉아있었다.
삼국시대 만들어진 것이라 하는 반가사유상은 인간의 생로병사를 고뇌하며 깊은 생각에 잠긴 모습에 영감을 받아 만들어진 것이라 한다. 반가사유상은 반가좌한 불상이 오른손을 뺨에 기댄 형태를 하고 있다. 사유는 고도의 정신활동이 필요하다. 현상을 주관을 가지고 관찰하고 이해하고 그것을 통해 판단하고 나아가 문제해결 방법을 찾아내는 과정을 일컫는다.
문득 이 사유의 방에서 이들 조각상을 마주하고 보니 도파민의 시대에 사유라고 하는 인간의 고유 능력을 발휘할 기회가 얼마나 있는가를 돌아보게 되었다. 사유는 의식 수준이 활발한 수준에서 이루어진다. 핸드폰 속의 2배속되고 현란하게 편집된 영상을 따라가느라 생각이 정지된 상태를 벗어나 내 스스로 주변을 경험하고 그것을 통해 판단하고 행동하는 과정을 잊고 있는 것은 아닐까.
사유의 개념과 비교할 수 있는 것으로 의식의 수준에 따라 명상과 멍때리기를 생각해볼 수 있다. 명상과 멍때리기 둘 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상태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오히려 정 반대의 개념이다. 먼저 명상은 사유보다 높은 의식 수준이 필요로 한다. 명상은 잡념을 의식적으로 배제하고 사유를 통해 얻은 개념들 중 명확한 목적으로 집중할 수 있도록 하는 고도의 의식상태인 것이다.
반면 멍한 상태도 있다. 일명 멍때리기 대회가 있을 만큼 사람들은 뇌에 너무 많은 정보를 쑤셔 넣는 위험상태에 처해진다. 멍때리는 것 즉, 무의식적 사고흐름 혹은 의식의 부유상태는 보이는 것들에는 우리가 공들여 관찰하고 개념을 얻어내야 하는 사고의 틀을 들이밀지 않는다. 그냥 눈과 귀를 열어두고 흘려 보고 흘려 듯고 생각을 흘려보내면서 의식을 쉬는 시간을 갖는 것이다. 의식할 수 없을만큼 벅찬 상태가 아니라 도약하기 위한 준비상태, 일상에서 잠시 멀리 떨어져 3자의 관점에서 나를 돌아보는 시간이다.
이처럼 일상 속 사유는 멍때리기-사유-명상이라는 관계를 통해 비로소 빛을 발한다. 나의 주변의 것들을 생생하게 감각하고 그것을 통해 세계르 인식하고 스스로 판단하고 가치를 찾는 과정을 경험하는 것은 중요하다. 나를 이해할 수 있고,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돈독하게 만들 수 있다. 명상은 그 과정에서 얻은 부정적인 것들과 불필요한 것들을 비워낼 수 있는 몰입과 집중의 시간을 만들어준다. 그리고 멍때리기는 사유와 명상을 통해 올려놓은 긴장상태를 이완시키고 새로운 일상을 준비할 수 있게 준비시켜준다. 비움과 채움 그리고 명료한 가치를 찾아내는 과정으로 우리 일상을 의미 있게 한다.
엄마의 시간은 언제나 의식의 수준을 극한으로 끌어올려야 하는 시간이라 생각했다. 아이가 다치지는 않을지 살피고 아이에게 새로운 경험을 만들어 주기 위한 다양한 의식의 끈이 촘촘히 하루를 엮었다. 당연히 계속해서 의식을 긴장상태에 두면 지칠 수밖에 없다. 아이의 작은 실수에도 화를 내거나 나의 욕심을 아이에게 투영해서 무리하게 체험을 하도록 한다든지의 부작용이 생기기도 했다.
우리는 사유를 멈추지 않아야 한다. 그 사유를 통해 얻은 것들을 스스로 정제하고 다듬는 명상을 시도해보는 것도 필요하다. 가끔은 애써서 박물관을 찾아가는 수고로움만큼이나 창밖 바람소리, 로봇청소기 돌아다니는 소리를 배경으로 아이와 살 맞대고 아이와 함께 슬라임 덩어리를 기계적으로 조물락 거리는 시간도 필요한 것이다.
이런 일상의 시간을 생각하고 집중하고 걸러가며 아이 엄마로서 또 하나의 나로서 자존감을 찾고 또 행복감을 느낄 수 있기를 바란다.
비로소 소장 장효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