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로 나의 삶의 가치를 발견하는 시간 3
신촌에서 문화공간을 운영한 적이 있다. 호기롭게 시작한 사업이지만 그 때는 어디 물어볼 만한 곳도 없고 신경써야 할 것들이 그렇게나 많은 지 몰랐다. 서른 조금 넘어서 적은 나이도 아니지만 철없는 나이인 것도 사실이다. 하고 싶은 것을 하려면 현실과 자영업이라는 어려움을 어떻게 극복하는 지를 먼저 알았어야 했다.
강산이 바뀌고 나서야 그 시절의 도전이 얼마나 무모했나 싶다. 지금이라면 조금 더 신중하고 더 준비를 해서 더 잘 할 수도 있을 것 같고, 오히려 시작조차 못할 것도 같다. 어쨌거나 그 공간에 머물면서 다양한 시도를 하기도 하였다. 멋지고 좋은 사람들도 많이 만났고 좋은 추억도 만들었다. 그 공간에 머물면서 기본적으로 카페로 운영하였고 워크샵이나 전시나 북토크나 팬모임 같은 모임을 운영하였다. 이러한 모임을 하려는 단체에 대관을 하기도 하였다. 그당시는 에어비앤비나 공간 대여같은 사업이 시작되는 시기라서 신촌역 5번 출구 근처라는 위치 덕택으로 심심치않게 문의가 들어왔었다.
그런 모임 중 하나가 바로 책나눔모임이었다. 아는 지인에게서 이 모임을 이어 받아 운영하게 되었는데 그 모임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지나고 보니 더 절실하게 느껴진다. 그 당시 매달 정기적으로 책모임을 하였는데 규칙은 각자 나의 책장에 책들 중 다른 사람에게 나누고 싶은 책을 가지고 오는 것이었다. 이 모임이 재미있는 것이 모이는 사람들의 책장 큐레이션이 어떤 지에 따라 또 그 때의 선택이 어떤 책들이었는가에 따라 모아놓은 책들의 구성이 전혀 달라진다는 것이었다.
어떤 날은 소설이나 시집, 여행기와 에세이같은 책들로 감성을 흔드는 이야기가 주로 채워진 반면, 또 어떤 날은 자기계발서나 상식을 대중적으로 풀어낸 실용서가 다양하게 등장하기도 하였다. 또 어떤 날은 고양이를 키우는 집사, 도시 농사, 비건에 대한 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였다.
모임비는 찻 값 정도로 하고 각자 가지고 온 책을 테이블 가운데에 모아 놓은 다음 돌아가면서 책에 대한 내용이나 이 책에 담긴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였다. 책의 물성에 따라 또 책을 소개하는 사람에 따라 책이 원래 의도한 목적이나 저자의 특성 혹은 출판사의 성격 등과 다른 변수로 매력도가 달리 느껴졌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자기가 가져온 책 외에 다른 책들 중 하나를 골라서 가지고 갈 수 있었다. 가끔은 그 책이 다음 모임에 다시 나오기도 하고 어떤 날은 동시에 두 사람이 그 책을 원하기도 하였다. 또 어떤 책은 아무에게도 관심을 끌지 못해 공간에 남겨지기도 했다. 책을 추천하는 사람도 자기 손 때 묻은 책이 좋은 사람에게 가서 또 다른 의미를 전하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보내게 된다.
이 모임이 좋았던 것은 우연하게 나와 전혀 인연이 없을 것만 같은 책을 만나게 된다는 것이었따. 누구나 자기 취향대로 자기가 고르는 책을 읽다보면 독서에도 편식이 생길 수가 있다. 전공이나 취업에 도움이 되는 실용서만 읽거나 누군가 걸어간 길을 통해 성공 가능성을 점쳐 보려는 자기계발서 위주로 보거나 장르 소설 위주로 책을 보거나 하는 식 말이다. 그런데 이 모임을 통해 우연히 들고 나온 다양한 장르의 책들 속에 무언가 나의 호기심을 끌어내는 책이 생긴다면 얼마나 신선하고 재미있는 일인가.
책이라는 것은 만들어지기까지 작가 이외에도 여러 사람들에 의해 많은 시간과 노력, 비용이 들어간다. 그러므로 그 책은 조금 더 정성을 들여 다듬고 그 하나로 완결성을 끌어 올릴 수 있도록 애쓰게 된다. 트렌드나 유행을 좇기에는 한 발 느린 미디어지만 반대로 더 검증을 거친 콘텐츠라고 볼 수 있다.
그런 정제되고 정리된 하나의 완결된 글을 만나보는 경험은 휘발되고 흘러가는 식의 콘텐츠에 비해 좀 더 대하는 방식도 거룩할지 모른다. 그것이 좀 유난하더라도 그 자체를 즐기는 것이 우리에게는 필요하다.
나는 이 모임을 통해 생전 읽지 않던 소설을 데려오기도 하고, 모임에 참여한 누군가가 직접 만든 책을 감사히 만나기도 하였으며, 만약 내가 책을 쓴다면 이런 주제, 이런 구성이 좋겠다고 감탄하며 읽었던 책들도 있다. 물론 몇 장 읽지도 못하고 책장에 들어간 책들도 있다.
책을 만나는 방법은 다양하다. 그리고 책이라는 올드미디어는 뉴미디어로 전자책 등 다양한 형태로 바뀌기도 하였다. 그러므로 아마도 책을 읽는다는 행위 자체도 다양해질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종이책의 종말을 예견했던 많은 이들이 무색하게 아직도 종이책은 남아있는만큼 물성으로 우리에게 다양한 감각을 전해주는 책의 촉감을 기억하기 위해 무던히 책을 읽는 것이 좋겠다.
그 사이 나는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 기르고 있다. 새로운 일을 벌이고 또 수습하며 일과 가정 그리고 나의 정체성을 보살피고자 노력하며 살아왔다. 이렇게 만난 책들을 다이어리에 메모하고 블로그에 정리하면서 쌓아 온 것들은 나중에 다시 꺼내보며 새로운 생각을 구성하는데 좋은 자양분이 되었다.
멀지 않은 시기에 다시 책나눔 모임을 다시금 꺼내보고 싶다. 그 때에는 내가 좀 더 꺼내 놓을 책이 다양하고 흥미로울 수 있게 좋은 책들을 비축해 놓을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비로소 소장 장효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