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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효진 Jun 18. 2020

다섯살 아이 재우기

매일 도닦는 엄마아빠

엄마한테 신경질부리고 문이나 쾅 닫을 줄 알았지 내가 아이 재우는 걸로 이렇게 골치아플 줄 누가 알았을까. 사실 우리엄마는 나한테 한 적 없는 말이지만 '너도 니 자식 낳아서 키워봐라'라는 말 뼈저리게 실감하는 어제였다. 말썽도 총량 법칙이 있는 것인지, 우리딸은 신생아때에는 잘먹고 잘싸고 통잠자고 병치레 한번 없던 아이였다. 그런데 요즘은 '알았어.'하고 딴 짓하며 복장 터뜨리는 취미가 붙었다. 자리에 눕히고 책을 읽어주는 것부터 해서 장장 한시간이 넘어서 잠이 들었다. 그것도 아빠가 더 꼬물꼬물 거리면 혼내줄거라는 불호령이 떨어지니 자는 척 하다가 스르르 잠든 것이라 그 전까지의 내 노력과는 별개의 결과였다.


사실 아이를 재우는 것은 체력보다는 집중력의 문제고 어쩌면 심리전이라고 할 수 있다. 아이에게 잘 수밖에 없는 환경을 만들어 놓고 필요한 것이 모두 충족이 되어 더이상 재미있는 무언가를 할 기회가 없다는 것을 납득시키는 일련의 과정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늘 이 과정에서 마찰이 빚어지는 것은 '아이를 재우고 무언가를 하겠다'는 조바심이 문제였다.


마치 엄마와 잠안들기 게임을 벌이기라도 하듯 아이는 이야기책에 등장하는 동물의 행동과 울음소리를 흉내내기도 하고 맥락없이 돌아오려면 한참이나 남은 크리스마스 선물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갑자기 물리지도 않은 모기자국을 찾기도 하고 그런데 엄마는 잘건데 왜 안경을 벗지 않느냐고 묻기도 한다. 읽어주기로 한 이야기책을 다 읽어주면 마치 방금 생각 났다는 듯이 불현듯 화장실에 가야하고 물을 한컵 마셔야 겠다고 이불을 박찬다. 이 때 중요한 것은 조용하고 침착하고 다정한 엄마가 되어야 한다. 조금이라도 발끈하는 날에는 아이는 다시 각성상태가 되어 이 모든 과정을 다시 반복해야 한다. 반대로 집중적을 발휘해서 아이와 함께하면 결국 새근새근 잠이 든다. 우리는 아이는 잠이 들때는 조금 뒤척이다가 오른쪽으로 몸을 돌려서 눕는데, 그 조그마한 어깨를 보는 것이 세상에서 가장 예쁘고 사랑스럽다.


그런데 이렇게 집중력을 발휘하는 것이 정말이지 너무 힘이 든다. 그래서 승률은 비참한 수준이다. 어제처럼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어떻게 해도 잠들지 않는 아이에게 결국 윽박지르기 한판, 에이 모르겠다 졸리면 자겠지 놔둬버리기 한판 으로 넉다운이 될 때가 많다. 별 중요한 것도 아닌데 뭔가 핸드폰을 켜야 할 것 같고 뭐 보고 싶은 것도 없는데 괜히 늦은시간 텔레비전을 봐야할 것 같은데 아이를 재우느라 꼼짝 못하는 이 상황이 늘 불편하고 시간이 아깝다고 생각했다.


어제도 그 난리통에 아이를 재우고 하도 열불이 나서 속으로 씩씩거리다가 정말 쓸데 없이 핸드폰만 보다가 평소보다 늦게 잠이 들었다. 당연히 아침에 일어나는데 마음이 좋지 않았다. 아이는 아직 세상 예쁜 천사같은 얼굴로 잠들어 있는데, 어제밤에는 그렇게 혼을 냈으니. 무슨 큰 죄를 지은것도 아닌데 그렇게 화를 냈으니 참 못난 엄마였구나 싶었다. 아이를 재우고 한 일이 겨우 불꺼진 방에서 별 쓸데 없는 핸드폰 기사를 본 것이 전부이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이는 잠이 들기 전 그날 하루 자라야 할 할당량을 엄마 아빠에게 확인하는 중요한 타이밍을 맞는 것은 아닐까. 가장 조용한 시간에 엄마 아빠와 눈을 맞추고 세상에서 단둘만 아는 이야기를 하며 내일은 얼마나 재미있는 일이 일어날 지를 기대하는 그 시간이 영영 계속 되는 것은 아닐텐데. 오로지 아이와 눈을 맞추고 설령 했던 이야기를 반복하게 되는 상황일지라도 성심성의껏 이야기를 나누게 되면 세상 어디에도 없는 귀중한 것이 얼마나 아름답게 성장하고 있음을 그날 그날 생생하게 확인하게 될텐데.


아이를 대충 얼른 재우고 해야 할만큼 중요한 일이 얼마나 많을까를 생각한다. 아이와 했던 이야기를 기억하려고 애쓰고 아침에 어린이집에 가면서 보았던 것들에 대해 묻기도 하고 친구들의 이름을 불러주고 엄마가 좋아하는 것과 아빠와 하고 싶은 것들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데 고작 한시간을 쓰는 것이 얼마나 힘든 거라고 그렇게 씩씩거렸나 싶다.


나이 마흔이 넘어 다섯살짜리 하나 재우면서 참 많은 생각을 한다싶다. 그래도 오늘만큼은 어린이집 다녀오면 저녁에는 맛있는 것도 좀 해주고 놀이터에서 원없이 달리고 신나게 놀아주고 와야 할 것 같다. 또 저녁이 되어 한바탕 거사를 치르겠지만 어제보다는 좀 여유있고 좋은 엄마가 되어주리라 다짐해본다.



비로소 소장 장효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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