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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효진 Jun 20. 2024

사랑하는 나의 엄마.

 

 그날은, 유난히도 따사로운 아침이었다. 공기 중 작은 먼지 사이사이 반짝여오는 빛이 한 줌에 잡힐 것 만 같았다. 나는 침대에 누워 창문 너머 스미는 햇살을 향해 손을 뻗었다.


 "선생님, 이거 봐요. 해님이 손에 닿을 거 같아요."


뭐가 그리 급한지, 이 좋은 햇살에 대답 한마디 없이 내 몸만 살피는 선생님이 미웠다. 나는 또 한 번 물었다. 우리 엄마는 언제 와요? 선생님은 그제야 내게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는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며 말했다.


 ".. 엄마요? 아... 김 간호사, 보호자는?"

 "아까 연락드렸어요!"

 "엄마.. 이제 곧.."


 드르륵-


선생님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한 여자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엄마였다. 가까이 다가온 엄마는 뛰어왔는지 이마에 송골송골 땀이 맺혀 있었다. 자세히 들여다본 두 눈엔 벌건 실핏줄도 가득했다.


 "엄마, 울었어?"

잠시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보던 엄마. 운 게 들킨 모양이다. 또다시 토끼눈이 되어서는 눈물을 뚝뚝 흘린다.


 "선생님이 새벽에 나 많이 아팠다고 말해줬구나? 이제 괜찮아. 하나도 안 아파."

왜인지 모르게 엄마는 하염없이 소리 내어 엉엉 울었다. 나는 괜스레 마음이 간질거려 눈물이 잦을 때를 기다렸다. 온몸이 눈물로 가득 차 있었는지, 힘이 쪽 빠진 얼굴이 되어버린 엄마는 짜게 젖은 손으로 내 손을 꼭 잡아주었다.


나는 기다렸다는 듯, 그간 엄마에게 하고 싶었던 말을 줄줄이 내뱉었다.

 

 "엄마, 보고 싶었어."  

 "..."

 "그리고 엄마, 나도 형들처럼 중학교 가고 싶어.."

형들은 다 갔던 중학교.. 집안이 어렵다는 이유로, 막내라는 이유로 나만 못 간 게 어찌나 억울하던지. 나는 누구보다 열심히 배울 자신이 있었다. 더욱 떳떳하고 멋진 삶을 살아가고 싶었다.


 ".. 그래 꼭 가자. 중학교도 고등학교도 대학교도 전부 가자."

 "나 진짜 학교 가서 계속 배울 수 있어? 약속해 줘."

왠지 모르게 힘이 쭉 빠져가는 손아귀에 힘을 바짝 주고, 새끼손가락을 펼쳐냈다. 엄마는 고개를 연신 끄덕이며, 손가락에 손을 걸고 엄지 도장까지 꾹꾹 찍어주었다.


 "너무 좋다.. 엄마, 나 이제 조금 졸려."

기쁨과 열정 넘치는 마음과 다르게 눈이 자꾸 감겼다. 엄마의 얼굴은 자꾸만 흐려지다 이내 사라졌다. 잊고 산 줄 알았지만, 한 순간도 잊은 적 없던 나의 엄마. 오랜만에 느껴 본 사랑하는 나의 엄마.


 더 이상 보이지 않는 암흑 속에서도 손에는 따뜻한 감촉이 느껴졌다. 나는 엄마 같았던, 엄마인 줄로만 알았던 그 따뜻한 손에게 말했다.


 “..사랑해요...사랑해요, 미안해.. 우리 딸.. 아빠가 많이 사랑한다..“


삐------------------------


귓가에 울리는 단조로운 기계 소리, 세상에서 가장 슬픈 음이 아닐까 싶다. 하루아침에 어린아이로 돌아가 차갑게 식어가던 아빠의 손과 몸.. 사람이 돌아갈 때가 되면 잠시 또렷해진다는 걸 어디서 들은 것 같은데.. 아빠는 또렷하게도 어머니가 그리웠던 걸까? 자글 하게 자리 잡힌 주름 사이로 평안하게 미소 지으며 떠난 모습은, 엄마라고 불린 나의 마음 어딘가에 작은 가시가 되었다. 그 가시는 시간이 흘러 햇살이 손등에 닿을 때마다 어김없이, 어디 있는지도 모른 채 나를 따끔따끔 찔러온다.


 오늘은 또 유달리 따사로운 햇살 탓에 고통이 짙어졌다. 내 아픔이, 내 마음이 이제는 멀어져 버린 아빠에게 반짝이며 닿기를..


 "평생 가정을 지키며 힘써온 당신이 원했던 건, 배움에 대한 열정이었군요. 생의 마지막 순간 그리워하던 어머니이자 내 할머니의 모습이 사실 나는 기억조차 나지 않아요. 그저 딸로서 인사드리고 싶었던 애석한 마음뿐입니다. 그래도 잠시 어린아이로 머물며, 원해온 걸 약속하던 당신의 모습이 여전히 눈에 선하게 남네요. 내게는 세상에서 가장 자랑스럽고 멋있는 나의 아빠, 나의 첫사랑. 다음 생에는 당신의 어머니로 태어나서 손가락 걸고 한 약속 꼭꼭 지켜드릴게요.“



[생각이 흐르는 시간- 초 단편 ‘사랑하는 나의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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