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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효진 Jun 27. 2024

먼지의 생애.


 누군가 내게 물었다. 너의 삶에 만족하니? 나는 선뜻 대답할 수 없었다. 여태껏 자유로운 삶이라 자부하며 살아왔지만, 요즘은 그 자유로움이 정처 없이 떠돌고 있는 것뿐이라 느껴졌다. 내가 그리 생각하게 된 원인은 간단했다. 아무도 날 반겨주지 않았다. 아무도 날 사랑하지 않는다.


반기는 이가 없다는 것, 사랑해 주는 이가 없다는 건 세상에서 내가 필요한 존재인가를 생각하게 한다. 시작은 사소한 말 한마디였다.

 '먼지가 왜 이렇게 많아? 어휴..'

 ‘여기 먼지 좀 봐! 청소를 하는 거야, 마는 거야?’

 ‘먼지 때문에 목 아파 죽겠네.’

나를 부르는 말 뒤에는 항상 짜증 가득한 목소리가 섞여있었다.


한 번은 거실 소파 위에서 편히 쉬고 있자니, 인간이 삐죽빼죽 무시무시한 생명체를 들고 현관으로 들어왔다. 그 생명체가 나타남과 동시에 갓 생겨난 연약한 나의 친구들은 무자비하게 빨려 들어갔다. 그렇게 셀 수 없는 죽음을 맞이하고 며칠 뒤, 만족스러운듯한 웃음을 지으며 이야기하던 인간의 모습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오, 진짜 먼지가 없어졌어! 먼지 잡아먹는 식물이라더니.. 효과 좋은데?"

어질어질했다. 이제는 날 잡아먹겠다고 괴생명체까지 들이다니.. 대단한 정성이었다.


가장 충격적인 사건은 화장실에서 일어났다. 괴생명체를 피해 도톰한 타월에 앉아 쉬고 있을 때, 인간이 나와 같은 친구들을 온몸에 잔뜩 달고 인상을 찌푸리며 들어왔다. 그리고는 폭포수 같은 물로 처참히 죽여버렸다. 그는 개운하다는 표정으로 어찌나 해맑게 웃음 짓던지.. 나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미치광이 살인마 그 자체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던 존재는 인간이었다. 그들은 너무나 매혹적이다. 손에 슬며시 올라가 편히 쉬고 있을 때면 맛있는 음식이 가득 있는 곳으로 나를 데려다준다. 운이 좋다면 비행기를 타고 해외여행은 덤이다. 다만 그 특권을 누리기 위해서는 꼭꼭 숨어야 한다. 혹여나 발각되는 날엔 저 멀리 나가떨어짐은 물론이요, 경멸의 눈초리와 쓰디쓴 말까지 각오해야 한다.


 '좋아하던 존재는 있간이었다'라는 과거형을 사용한 것에는 슬픈 이유가 있다. 어느 날, 나로 인해 인간이 병에 들고 아파하며 죽어가는 걸 목격했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 테지. 인간은 너와 같은 친구들을 수도 없이 죽였어!!


분명 알지만, 나는 내 쾌락을 위해 인간을 아프게 하고 싶지 않았다. 내가 병들게 할 수도 있다는 걸 알고 나니 그들에게 다가가기가 무서웠다. 그리고 나도 인간 못지않게 나쁘고 더러운 존재라는 걸 모르진 않았다. 그 정도 객관화쯤은 이미 마친 상태였다.


이처럼 아무도 반겨주지 않고 사랑해주지 않는데 감히 존재라는 지칭을 할 수나 있을까? 나는 아무 가치도 없는, 그저 떠다니다 소멸 돼버리는 그 무엇도 아니지 않을까? 김춘수의 시 <꽃> 속, 유명한 구절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비록 내가 꽃과 같은 존재가 될 수는 없겠지만, 한 번쯤은.. 의미 있게 쓸모 있게 살아 볼 수 있지 않은가..

스스로를 먼저 아끼고 사랑해 줘야 한다는 인간들의 말은 어깨너머로 수도 없이 들었다. 닳고 닳은 내게는, 나를 사랑할 힘 따위 남아있지 않았다. 하찮고, 보잘것없다. 나는 소리 없이 사라질 때만 기다리며 인간을 피해 높다란 창문 틈에 숨고 또 숨었다.


 그때였다. 어디선가 나를 찾는 희미한 대화소리가 들려왔다.


 "저 머리 안 감고 왔는데 괜찮아요?"

 "괜찮아요! 염색하실 때는 오히려 노폐물이나 먼지들이 약으로부터 두피를 보호를 해주거든요!"

 "아~ 그럼 앞으로 염색할 땐 마음 편히 안 감고 와야겠네요! 하하하하-"

 

 '어.. 무슨 말이지..? 내가 보호해 줄 수 있다고..?'

저 인간들은 지금 날 필요로 하고 있다. 내 존재를 가치 있게 만들어주며 역정 없이 즐거워한다. 아아- 정말이지 황홀한 순간이었다.


 나는 기쁜 마음으로 천천히 천천히 인간의 두피에 올라앉아 쓰임을 기다렸다. 두렵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이제는 무엇이든 겸허히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다. 그리고 자신 있게 대답한다. 나를 필요로 하는 세상에 작은 쓰임이 되는 이 삶이, 나의 존재가 굉장히 만족스러웠다고.


 내 삶을 지켜본 당신은 어때요, 현재를 만족하시나요?



[생각이 흐르는 시간- 초 단편 ‘먼지의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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