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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큥드라이브 Nov 29. 2023

<불안을 없애기 위해 강박적인 행동을 하고 있나요?>

-나에게는 피부를 뜯는 버릇이 있다. 내 기억으론 유치원 시절부터 이미 오른쪽 새끼손가락 마디에 굳은살이 박혀 있었다. 그 전부터 뜯었나 보다. 이것도 나름의 루틴이 있는데, 굳은 살을 계속 뜯어서 거스러미를 만들고 그 거스러미를 뜯어내며 만들어진 거칠거칠한 질감을 한껏 만끽한 후  맨들맨들하게 만드는 과정을 연속하는 것이다. 집중하거나 책을 읽거나, 초조하거나, 이렇게 타자를 칠 때 등등 깨어 있는 많은 시간 동안 이런 행동을 반복한다.


-창피하게도 서른 살이 넘은 지금까지 가지고 있는 버릇이다. 피부를 뜯지 않기 위해 여러 가지 방법을 사용해 보았다. 다양한 종류의 밴드를 사보기도 했고, 향기 나는 핸드크림을 바르기도 했으며, 바셀린을 듬뿍 발라보기도 했으나 그 어떤 방법도 행동을 멈추게 하지 못했다.


-대학교에 입학하고 본격적으로 연애를 시작할 때부터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가뜩이나 굵고 길게 뻗은 손가락 위에 얹어져 있는 거북이 등딱지 같은 굳은살은, 못생긴 손을 더 못생겨 보이게 만들었다. 게다가 무의식적으로 손을 뜯는 행동이 미관뿐 아니라 위생상 썩 좋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저러나 이 아이는 즐거울 때나 기쁠 때나 슬플 때나 나와 함께 했다.


-작년엔 큰맘 먹고 피부과에 가서 상담을 받아 보았다. 수술이 불가능 하다는 의사 선생님 말씀을 듣고는 이렇게 된 거 그냥 안고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건 피부과를 찾아갈 것이 아니고, 상담을 받아야 하는 문제일 수도 있다고 인지하게 되었다. 어제 미술 심리상담 수업에서 배운 부분 중, 정서 및 기분 장애에 대한 설명을 보면 다음과 같다.


-정서 및 기분장애는 크게 1. 불안장애와 2. 강박 관련 장애, 3. 기분장애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그중에서도 피부 뜯기 장애는 강박과 관련되어 있다. 강박장애는 강박사고와 강박행동이 같이 있거나 혹은 둘 중 하나의 증상을 갖는 것이 특징이다. 강박사고란 어떤 생각이나 장면 혹은 충동이 원하지 않아도 반복적으로 떠올라 불안을 느끼는 것이고, 강박행동이란 그 불안을 없애기 위해 일정한 행위를 하는 경우를 말한다. 가장 흔한 강박행동은 지나치게 손을 씻거나, 깨끗이 하거나, 피부가 닳도록 하는 목욕, 옷 갈아입기, 청소하기, 점검하기, 숫자세기, 반복하기, 만지기, 정돈하기 등이 있다.


-다행히도 남편은 내 못생긴 손까지 예뻐라 해주는데, 오늘 내가 하는 말을 듣고 나의 불안이 어디에서부터 왔는지 같이 귀 기울여 주기 시작했다. 과연 나는 이 강박적인 행동을 없애고 싶다는 강한 의지가 있는 걸까 생각해보면 그건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여태 이상한 습관이 있다고 생각하며 살아왔지만, 책의 내용에서 나의 행동을 글자로 맞닥뜨리고 나니 복잡해졌다. 나는 지금 하고 싶은 일을 하며 행복하게 살고 있는데, 왜 나를 괴롭히고 있는 건지. 오늘부터 내 불안의 이유를 곰곰이 들여다 봐야겠다.


-나의 무의식을 들여다보는 건 꽤 오랜 시간이 걸릴 거란 생각이 든다. 여러 겹의 방어를 입고 민낯을 드러내지 않으려 꼭꼭 숨어있을 수도 있다. 금세 찾을 수 있을 거라 기대하지 않지만, 이 과정으로 나를 더 사랑하고 잘 알아갈 수 있는 날들이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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