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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큥드라이브 Dec 13. 2023

<당신이 믿고 있는 건 무엇입니까?>

아뜰리에 에르메스<목요일엔 네 정결한 발을 사랑하리>


<목요일엔 네 정결한 발을 사랑하리>



-신체 부위가 이렇게 많은데 왜 하필 발을 사랑한단 거야, 왜 주말도 아니고 목요일이야, 발은 또 왜 정결하다는 거야? 라며 들어간 탁영준 작가의 국내 첫 개인전

전시회 전경(좌), 탐 wishful(2023)


-아틀리에 에르메스의 어두운 공간의 시작, 마치 성당에 들어서는 것처럼 입구에서 마주하는 <탐 Wishful>(2023)은 실제 이탈리아의 성구 제작소에서 수작업한 기물이다. 여기에는 성수가 아닌 작가의 젖꼭지를 실리콘으로 본뜬 조형물이 담겨있다.

-종교화에 사용되는 여성의 노출된 신체 즉, 가부장적 시선에서 벗어나지 못한 순교당한 성녀들의 가슴을 퀴어 신체로 대체한다.


-<성 아가타의 순교>

로마시대 시칠리아의 총독 퀸티아누스가 미모에 반해 청혼했으나, 독신 서원을 이유로 청혼을 거절했던 성녀 아가타. 앙심을 품은 퀸티아누스는 기독교 탄압에 편승해 아가타의 가슴을 도려내는 등 온갖 무자비한 고문을 가했다. (아가타에게 면류관을 씌우는 아기천사를 통해 이 그림이 종교화라는 것을 겨우 알 수 있다.) 시칠리아에서는 이를 기리기 위해 가슴 모양의 아가타 빵을 만들어 먹기도 한다.

https://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960873.html


-<내 커다란 기대 >(2022)는 독일 문화권에서 경제, 농업, 종교적 함의를 갖는 채소인 슈파겔(하얀 아스파라거스)를 1미터 높이의 목재 기둥 두 개로 재현한다.


-슈파겔은 4월 중순부터 6월 24일까지만 수확을 하는데, 이 날은 세례자 요한의 축일이기도 하여 요한의 두상을 새겨 놓았다. 그리고 어떤 지역에서는 이 채소의 독특한 생김새 때문에 남성 성기로 불리기도 하는데, 성자의 고통과 숭고의 순간이 채소가 가진 독특한 형태로 인해 세속적 욕망으로 변모되기도 한다.


-작가는 현재 베를린을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다. 독일로가기 전 2014년 신촌 퀴어축제에 참여했던 작가는, 보수단체가 인간사슬을 만들어 퍼레이드를 멈추려했던 장면을 보면서 인간 사슬이 마치 십자가의 예수처럼 느껴졌다고 한다. (모든 이를 포용하는 종교에서 성소수자들을 배척하는 것이 안타깝기도 하다.)

취향으로 인해 존재가 거부당하지 않았으면.

작가의 인스타그램 @youngjun.tak




-필름 작업 <목요일엔 네 정결한 발을 사랑하리>에서는 부활절 직전 세족 목요일에 십자가상을 운반하는 스페인 외인부대 군인들의 마초적 행진과 발레 퍼포먼스를 교차로 보여준다.


-퀴어 무용수들의 움직임은 ‘발레 마농’의 2막 1장 중, 여주인공 마농이 여러 남성 무용수의 손길에 떠맡겨 오래도록 공중을 유영하는 장면을 재해석한 부분이다. 마농 역할을 맡은 무용수의 발이 절대 땅에 닿지 않도록 들고, 업고, 떠받치는데 묘하게 교차로 보여지는 부활절 행진과 비슷하다.


-또 다른 필름 작업 <사랑스런 일요일 되길 바라> (2021)또한 ‘사랑’과 ‘일요일’이라는 접점을 가진 교회와 게이클럽의 대비되는 공간 속 신체의 움직임을 보여준다. 안식일인 일요일에는 정신적, 육체적 안녕을 위해 신자들은 교회에 가고, 교회에서 배제된 이들은 클럽에 모이곤 하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이 작품 진짜 맘에 들었다!)


-모든 공간에는 인간의 의식과 행동 양식을 지배하는 규범이 있기에 이들은 바흐의 피아노 곡에 맞춰 의뢰 받은 공간에 부합하는 안무를 일차적으로 구성한다. 하지만, 당일 작가의 의도된 지시 변경에 따라 안무가들은 서로 반대 공간에 엇갈려 배치되고, 안무를 새롭게 수정해야하는 처지에 놓인다.


-햇살 가득한 지상과 인공조명에 의존하는 어두운 지하를 각각 채우는 무용은 명료한 거리감과 오묘한 유사성을 가진다. 낯선 장소, 상반된 두 공간의 격차가 점차 좁혀지는데, 이들이 행하는 신체의 움직임이 결국 같은 형상처럼 보였다. 동전에 양면이 있지만, 양면 모두 동전의 형상인 것처럼.


-입구의 성수대와 왼편의 나무 조각상, 그리고 엄숙한 분위기가 마치 종교 공간에 온 것 같은 기분을 만들었다. 퀴어와 종교라니, 언뜻 기독교적 상징이 사용되어 종교와 연관된 것처럼 보이지만 인간의 믿음 체계와 관습에 대립하는 혼종성과 다양성을 포괄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아틀리에에르메스 #탁영준 #목요일엔 네 정결한 발을 사랑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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