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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큥드라이브 Dec 30. 2023

<올해 놓치고 싶지 않은 순간은?>

회화의 기원, 코린트 아가씨의 전설

-올해 꽉 잡고 싶은 순간들을 회고해 봤다. '소중하다면 바로바로 떠올라야 하는 거 아냐?' 싶으면서도 너무 많은 일을 하는 바람에 한참 지나서 떠오르는 순간들이 있다. 물론 내 모든 순간이 켜켜이 쌓여 지금의 나를 만들었기에 감사하지만, 그중에도 평생 잊지 않고 싶은 날이 있다. 2023년은 그 어느 때 보다도 많은 것 같다.


-문득, 기술이 발전한 시대에 태어나서 좋다! 고 생각할 때가 있다. 그중 하나는 속절없이 흘러가는 시간과, 소중한 순간을 간직하기 위해 아주 쉽게 카메라를 들 수 있다는 것이다. 아쉬운 건, 얼려놓은 시간들은 들여다볼 새도 없는데, 해가 거듭할수록 저장공간이 부족한 것. 아이클라우드 용량이 꽉 찼다는 메일이 올 때마다 가끔 사진을 지운다. 소중한 기억에도 나름의 순서가 있다.


-그래서 작가들이 놓치고 싶지 않은 기억이나 내용들을 자기만의 작품으로 만들어내는 게 아닐까 싶다. 그냥 저장하는 건 의미가 없으니까, 거기에 새로운 재료와 기법을 가미해서 유일무이한 형태로 만들어내는 것이다.


-대 플리니우스는 고대의 지식을 총망라하는 <박물지>에서 고대 그리스 코린트섬의 이야기를 통해 그림의 기원을 이야기한다. 목동 청년과 사랑하는 사이였던 디부타데스는, 청년이 전쟁터로 떠나기 전날 밤 벽에 비친 연인의 그림자를 따라 그린다.

Joseph Wright, The Corinthian Maid, 1782-1784
조제프 브누아 쉬베, <The invention of the Art of Drawing>,1791

-눈을 맞추고, 이야기를 나누고, 껴안고 있기도 바쁠 시간에 호흡을 멈추고 윤곽선에 집중하는 모습이 화면에 가득하다. 사랑하는 이와 이별하기 전 날, 그림자를 벽에 아로새기며 들었을 감정은 얼마나 애달플지.


미술은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의 역할을 대신합니다. 인간은 자신이 사랑하고, 곧 잃어버릴 것 같은 것을 꼭 잡기 위해 이미지를 만듭니다.
<예술가의 뒷모습 중>


-요 몇 주간(물론 크리스마스 모임을 했지만) 모임을 할 일이 없다 보니 입이 근질근질하다. 만일 사람들과 만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면, 올해 내가 박제하고 싶은 순간은 언제인지 묻고 싶다. 사진도 곁들이면서! 그리고 만일 이 순간을 하나의 작품으로 남긴다면 어떻게 표현하고 싶은지도.


-시간이 가는 게 아쉬워서 가지 말라고 붙잡고 싶지만, 그럴수록 다가오는 시간을 행복하게 맞지 못하기 때문에. 새 해에는 또 기쁜 마음을 그득 안고 즐거운 순간들로 채워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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