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생계형 개발자 Aug 25. 2019

익숙해짐으로써 이해되는 것들

머리로도 이해 안 되고 마음으로도 받아들이지 못하겠고

어떤 일을 하기에 앞서 일을 이해하는 사전 과정이 필요하다. 여기서 이해한다는 것은 일을 수행하는 방법을 아는 것뿐만 아니라 이 일을 왜 해야 하는지 그리고 어떤 의미가 있을지까지 인지하는 것을 의미한다. 일의 방법을 아는 일은 교육과 훈련이 필요하고 일의 목적과 의미를 깨닫는 것은 머리와 마음이 필요하다. 머리는 이성의 영역이고 마음은 감정의 영역인데 긴 설명보다는 '머리로는 이해하겠는데 마음으로는 이해하지 못하겠다'라는 문장을 생각해보면 대략 무슨 느낌인지 알 것이다. 논리적으로는 이해가 되지만 감정적으로는 내키지가 않을 때 우리는 주로 이런 말을 쓴다.

장현수 중징계를 머리로는 이해하나 마음으로는 받아들이기 힘들어하는 벤투 감독

머리로도 이해되고 마음으로도 이해가 되는 일은 최상의 상황이다. 일의 목적을 정확히 이해하고 충분한 동기를 갖고 있는 상태이며 어떤 일을 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를 때가 주로 이런 경우다. 머리는 이해가 되나 마음으로 받아 들 일 수 없는 경우는 일의 목적은 이해하지만 심적으로 별로 끌리지 않는 경우다. 앞서 언급한 상황보다는 이상적이지 않지만 그래도 수행 과정에서 지속적으로 일의 의미를 찾으려고 하며 얻는 성과에 따라 마음으로도 받아들이게 된다. 머리로도 이해가 안 되고 마음으로도 이해가 안 되는 경우는 최악의 상황이다. 일을 왜 해야 하는지 이해되지 않고 감정적으로는 거부감이 충만한 상황이다. 두둑한 경제적 보상 같은 요인 책이 없다면 이 일을 하려고 하지 않는다.


안타깝게도 내가 있던 곳의 일들은 머리로도 이해가 안 되고 마음으로도 받아들일 수 없는 것들이 많았다. 난 아직도 이해를 못하겠다. 부팅시간을 150ms 줄인 것이 왜 그렇게 거창한 업적으로 평가돼야 하는지를. 스토리지 Read 성능이 87%에서 90%로 올려야 하는 게 왜 한해 목표가 되는 지를. 상황에 따라서 벤치마크 결과는 오락가락해 정확히 측정도 불가하거니와 밀리세컨드 단위는 이미 인간이 인지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난 일인 것 같은데 그것이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이것이 소프트웨어 매출과 어떤 연관이 있을까? 차라리 다른 일에 시간을 쏟는 것이 좋지 않을까? 이렇게 일을 하는 과정에서 내내 머릿속에 물음표가 늘어만 갔다. 그렇다고 내 생각이 무조건 옳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어쩌면 공정한 평가를 위해 필요한 정량적인 수치일 수도 있고 제품 홍보에 필요한 벤치마크 결과 일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적어도 나는 그 일에 어떤 의미를 찾을 수가 없었다. 내겐 그저 돈 받았으니까 어쩔 수 없이 하는 일이었을 뿐이다.

이해가 안 되더라도 일단 하세요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이해가 되지 않던 것들이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밀리세컨드 단위의 의미 없는 부팅시간을 단축하는 일도, 인간이 인지하기 힘든 정도의 성능 달성을 거창한 실적으로 포장해서 올리는 것도 거부감이 없어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아무리 곱씹어봐도 논리적으로도, 마음으로도 받아들여지진 않았다. 난 아직 일에서 의미를 찾지 못했나 보다. 그런데도 이해가 되는 이유는 익숙함 때문이었던 것 같다. 새로운 프로젝트를 할 때마다 과거 프로젝트에서 세운 목표들을 기계적으로 답습했다. 그저 '당연히 예전에 그랬으니까 지금도 그러해야 하지 않을까'라고만 생각했을 뿐 또 다른 이유를 찾기는 힘들었다. 새로운 것을 찾고 싶지 않고 현재 순간을 모면하고 싶은 마음에 문제의식이 사라져 버린 걸까. 사건의 표본 개수가 증가할수록 예전의 내 모습을 무의식적으로 받아들이게 됐다.


그렇다고 항상 얌전히 받아들이고 있지는 않았다. 의미를 찾지 못하는 일들에 대해서 주변 사람들에게 불평을 하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일의 의미를 설명받기보단 타협안을 받았다. "원래 일은 다 그런 거예요, 복잡하게 머리 쓰지 말고 그냥 시킨 대로 해요. 누가 하고 싶은 일만 하면서 살겠어요?" 지당하신 말씀이다. 바빠 죽겠는데 매번 일의 의미를 운운하는 나는 팀 분위기를 해치는 고집불통의 개발자일지도 모르겠다. 그냥 시킨 대로 하면서 살아가는 게 내 정신 건강과 팀워크에 이로울지도. 그런데 오 년, 십 년 후에 내가 팀의 리더가 돼서 동료들에게 이런 목표를 제시해야 할 것을 상상하니 엄두가 안 난다. 나 자신도 설득하지 못했는데 남을 이해시킬 수 있을까? 아.. 나는 절대 그렇지 못할 것 같다. 삼 년이 지났는데도 내 머리와 마음은 변화의 조짐이 보이지 않는데 오 년이 지났다고 바뀔 것 같지 않고 또 그렇다고 남에게 이 일을 맡길 자신은 없다.


그리고 이렇게 일의 의미를 찾지 못한 채로 회사 생활을 하는 내가 정말 잘 살고 있는 것인지 의문이 생겼다. 하루 종일 의미 없어 보이는 수치를 높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나 자신이 어느 순간 갑자기 노예가 된 것 같은 기분이 종종 들었고 이 날은 스트레스를 잔뜩 받은 상태로 녹초가 되어 집에 왔다. 이렇게 매일 억지로 살고 있는 것이 과연 맞는 걸까. 내가 갖고 있을지도 모르는(?) 잠재력을 다른 일에 쏟으면 더 행복하고 더 좋은 개발자로 성장해서 살 수 있지 않을까. 소프트웨어 개발자는 항상 사람이 부족하다는데 당장 연봉 삭감을 감수하더라도 다른 회사에서 내가 의미를 찾을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내 인생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퇴사를 결심하기 전까지 내 하루는 거의 매일 같이 물음표가 담긴 문장들로 채워져 있었다.

중동 40억을 거절하고 분데스리가 프라이부르크를 선택한 권창훈. 돈보단 더 높은 수준의 축구를 경험하는 것에서 의미를 찾지 않았을까.

긴긴 물음표와 고민 끝에 나는 머리로도 이해되고 마음으로도 받아들일 수 있는 일을 해보기로 결심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난 내 생각이 옳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모든 작업들을 수치화하는 회사의 정책과 나는 태생적으로(?) 맞지 않는 것 같다. 회사가 틀렸다고 말할 수도 없고 내가 옳다고도 말할 수 없다. 단 이곳에선 아무리 힘을 써봐도 일의 의미를 찾을 수 없었고 하루하루를 고통 속에서 지내고 있다는 것은 확실했다. 고작 이런 이유로 회사를 그만두는 것은 누군가에겐 어쩌면 치기 어린 선택일지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아직까진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회사에서도 의미를 갖고 일하고 싶다. 돈 때문에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의미를 찾은 상태에서 충분한 동기를 갖고 일하고 싶다. 다른 사람들의 말처럼 보기 좋게 실패할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한 번쯤은 도전해봐도 괜찮지 않을까. 40억 원도 포기한 사람이 있는데.


출처

벤투 감독님 기사: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201811051504337105

권창훈 선수 기사: http://www.spotvnews.co.kr/?mod=news&act=articleView&idxno=299285


매거진의 이전글 사랑했던 첫 직장을 떠나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