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장애를 가능성으로 바꾼 이대희 박사를 만나다!

by 최연신


인터뷰―만나고 싶었습니다.


장애를 가능성으로 바꾼 이대희 박사를 만나다!


기획 및 취재 최연신(하상매거진 인터뷰어)



인공지능(AI) 분야는 빠르게 발전하며 우리 삶의 많은 부분을 혁신하고 있다. AI 기술자들은 복잡한 알고리즘과 머신러닝 모델을 다루며, 인간의 삶을 개선하는 혁신적인 솔루션을 만들어내고 있다. 특히 미국의 AI 기술자들은 세계적으로 높은 위상을 가지고 있으며, 기술적 전문성, 연구 능력, 그리고 혁신적인 성과로 널리 인정받고 있다. 그런 미국 AI 연구의 최전선에서 의미 있는 성과를 이뤄낸 한국인이 있다. 바로 이대희(64세) 박사가 그 주인공이다. 그는 시각장애를 극복하고 미국에서 소프트웨어 개발자로 성공한 인물이다. AI 기술이 우리의 일상에 깊숙이 스며들면서 그의 통찰력은 단순히 기술적 지식을 넘어, 미래 사회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고 있다. 이달에는 이대희 박사와의 전화 통화를 통해 빠르게 변화하는 AI 업계에서 그가 걸어온 여정, 현재의 연구와 기술적 도전 과제, 그리고 AI가 앞으로 우리 사회와 시각장애인의 삶에 미칠 영향에 대해 들어보았다.


하상 :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먼저 간단하게 자기소개 해주세요.


박사 : 1960년생으로, 서울맹학교 14기로 졸업한 뒤 숭실대학교 인문계열을 차석으로 입학했고 영어영문학과를 수석으로 졸업했습니다. 1987년에 미국 미시간 주립대학교로 유학을 떠나 언어학 석사 과정을 밟았고, 2년 후에 다시 컴퓨터 석사, 그리고 언어학 박사 과정을 이수하여 1997년에 졸업했어요. 학업과 함께 92년부터 97년까지 풀타임으로 일을 시작해 학위와 경력을 동시에 쌓았죠. 특히 시각장애인을 위한 점자와 음성을 결합한 최초의 보조기기, ‘브레일 라이트’ 개발에 참여했습니다.


하상 : 시각장애 원인과 현재 시력은 어느 정도인지 여쭤봐도 될까요?


박사 : 고등학교 2학년 말에 녹내장으로 인해 시력을 완전히 잃었습니다. 중학교 입학을 앞두고 안경을 맞추러 병원에 갔다가 녹내장 진단을 받았는데, 의사는 앞으로 시력을 잃을 가능성이 높다고 가족에게 설명했어요. 당시 점자를 몰랐던 저는 의사 선생님과 누님의 설득으로 중학교 대신 맹학교 6학년에 편입하게 됐던 거죠.


하상: 서울맹학교 입학 전까지는 일반 학교를 다니신 거네요.


박사: 그렇습니다. 경주에서 5학년 2학기까지 다닌 후, 서울 홍제동에 있는 인왕국민학교로 전학하여 졸업했습니다. 이후 서울맹학교에 6학년으로 편입해 14기로 졸업했고요.


하상 : 미국은 언제, 어떤 계기로 가게 되셨나요?


박사 : 1987년에 유학을 위해 미국으로 떠났습니다. 한국에서 대학을 마치고, 미국 유학으로 언어학 석사 후 컴퓨터 석사와 언어학 박사 과정을 함께 진행했습니다. 인공지능, 특히 언어 처리를 다루는 AI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유학 당시 결혼한 상태로, 아내와 자녀와 함께 미국에 정착하게 됐습니다.


하상 : 처음 미국생활을 시작할 때 어려운 점은 없었나요?


박사 : 유학 초기 미국 생활에서 가장 어려웠던 점이라면 경제적인 문제죠. 한 학기 등록금과 두 달 생활비만 가지고 시작했거든요. 본가는 부유했지만, 장애가 있다고 가족한테 의지하기 싫었어요. 결혼도 했으니, 독립적으로 생활하고자 했습니다. 다행히 학업 성적이 좋아 학교와 시각장애인 단체에서 장학금을 받았고, 아내도 파트타임으로 일하며 생활을 도왔습니다. 약 2년간의 고생 끝에 저도 시간제로 일을 시작할 수 있었고, 1991년 겨울에는 풀타임 일자리를 얻어 이후 안정적인 생활이 가능해졌습니다.


하상 : 현재 Sense Talent Labs(센스 탤런트 랩스)에서 근무하고 계시죠? 어떤 회사인지, 그곳에서 박사님은 어떤 일을 하시는지 설명 부탁드립니다.


박사 : 저는 현재 Sense Talent Labs에서 수석 머신러닝 엔지니어로 활동하고 있으며, 주로 기술적 방향을 설정하고 인공지능 관련 팀을 멘토링하는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회사의 기술 전략을 이끌며 인공지능(AI) 모델링 작업을 직접 담당하기도 합니다.


Sense Talent Labs는 채용 관련 업무를 지원하는 AI 솔루션을 제공하는 회사로, AI를 통해 채용 프로세스를 효율화합니다. 회사는 채용 공고에 맞는 후보자를 선별하고, AI가 자동으로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평가한 후 적합한 후보자들을 추천합니다. 이후 AI는 지원자와 직접 연락을 취해 관심을 확인하고 인터뷰를 진행합니다. 인터뷰 후에는 점수를 매겨 인사 담당자에게 보고합니다. 이를 통해 채용 절차를 간소화하고 지원자의 평가 결과를 체계적으로 제공하는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하상: 알겠습니다. 그럼, 박사님은 회사에서 인공지능 개발자로도 일하고 계신 건가요?


박사: 네. 현재 머신 러닝 엔지니어입니다. 미국에서는 승진 트랙이 매니지먼트 트랙과 엔지니어링 트랙으로 나뉘어 있어 특정 시점에 자신의 진로 방향을 결정해야 합니다. 저는 기술적 전문성을 살리는 엔지니어링 트랙을 선택한 거죠. 매니지먼트 트랙과 연봉 차이는 크지 않습니다. 매니지먼트 트랙은 주로 프로젝트 관리에 초점을 맞추지만, 저는 기술 측면에서 팀을 이끌고 필요한 인력과 개발 방향을 제시하는 일을 맡고 있습니다. 물론 중요한 기술 개발은 직접 담당하기도 합니다.


하상 : 그밖에 Google, 한인 벤처업체 ‘비컴닷컴’, 뉘앙스(Nuance)와 같은 다양한 회사에서 일하셨다고 들었습니다.


박사 : 네. 뉘앙스는 이후 마이크로소프트에 팔렸죠. 뉘앙스는 음성 인식으로 유명한 회사입니다. 이곳에서 개발한 기술이 여러 유명 기업에 사용되었습니다. 비밀 유지로 인해 구체적인 기업명을 언급할 수는 없지만, 한국과 미국의 다양한 유명 회사들이 그의 기술을 사용했습니다. 제가 맡은 모든 역할은 AI 관련 분야에서 이뤄졌고요.


하상 : 박사님께서는 컴퓨터 공학과 언어학을 전공하신 것으로 압니다. 컴퓨터 공학과 언어학은 선택하게 된 계기와 동기는 무엇이었나요?


박사 : 숭실대학교에서 언어학을 전공하며 언어학이 단순한 인문학이 아닌 인지과학의 분석적 접근을 포함한 학문이라는 점에 흥미를 느꼈습니다. 이 과정에서 학문적 호기심이 생겨 더 깊이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그 결과 유학을 결심하게 됐습니다. 이후 컴퓨터를 접하면서 언어를 이해하는 인공지능 분야에 큰 관심을 가지게 된 거죠. 미국에서 언어학과 컴퓨터 과학을 결합하는 과정을 알게 됐고, 연구하는 길을 선택했습니다. 작년에 한국에 4개월 정도 머물면서 강연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저는 한국에서 시각장애인들이 공학이나 과학 분야에 접근할 기회가 제한되어 있는 현실에 대해 아쉬움을 컸습니다. 저도 컴퓨터를 한국에서 접하지 못했다면 지금과 같이 인공지능 연구를 할 수 없었을지도 모르고요. 그 때문에 강연 때면 시각장애인들에게 과학기술 분야의 진입 기회를 넓히는 일의 중요성을 이야기하기도 했습니다.


하상 : 시각장애인으로서의 경험이 연구 주제 선택과 활동에 어떤 영향을 미쳤나요?


박사 : 없습니다. 시각장애인으로서의 경험이 연구 주제 선택이나 활동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았어요. 저는 대학 입학 당시부터 시각장애로 인해 많은 차별을 겪었습니다. 입학 원서를 받아주는 대학이 몇 개 안 됐죠. 그렇게 선택에 제한이 있었고 원하는 학문을 공부하기 어려운 상황을 경험했습니다. 주변에서는 신학, 사회사업, 특수교육과 같은 학과를 권했지만, 저는 일부러 영어 영문학을 전공하며 교직 과정을 이수했습니다. 그러나 시각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일반 교사 자격증을 받는 데 난관이 있었고요. 숭실대학교 경제학과를 다니던 후배가 있었는데 출근길에 지하철에서 떨어져서 사망을 한 일이 있었습니다. 지하철이 생기고 처음 일어난 사고죠. 그때도 주위에 출근하려고 많은 사람이 있었는데 그 가운데로 후배가 떨어진 거죠. 이로 인해 한국 사회에 대해 부정적인 감정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물론 공부를 하기 위한 것도 있지만 이러한 경험이 더해 유학을 결심했습니다. 또한, 저는 개신교 신앙을 가진 크리스천으로, 어려운 상황에서도 하나님이 저를 도와주셨다고 믿고 있으며, 장로로서 신앙 생활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하상: 혹시 아직도 한국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계신가요?


박사 : 지금은 한국도 많이 발전했죠. 하지만 여전히 직업 다양성 측면에서 제한적인 환경이라고 생각합니다. 미국에서는 인종, 문화, 언어 등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일할 때 창의성과 유연성이 더 높아진다는 연구 결과에 따라, 많은 회사들이 직원 구성에서 다양성을 높이려 노력합니다. 반면, 한국은 직업과 기회 측면에서 특정 방향으로 치우치는 경향이 있어요. 이는 시각장애인을 포함해 다양한 사람들에게 기회가 제한될 수 있는 부분이라고 느꼈습니다.


미국에는 공짜라는 게 별로 없습니다. 대신에 직업에 있어서는 다양한 기회를 제공하죠.


저는 한국에서 점자 번역기와 초기 소프트웨어 개발, 윈도우 스크린 리더 개발에 참여하며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기술을 발전시키는 데 힘을 보탰습니다. 현재는 인공지능(AI)을 활용한 스크린 리더 개발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기존의 스크린 리더는 외워야 할 키가 많고, 작동이 불안정한 경우가 많아 사용에 어려움이 있죠. 따라서 저는 AI 기반 스크린 리더를 통해 이러한 문제를 개선하여 더 직관적이고 편리하게 만들려는 목표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는 비단 저 자신뿐 아니라 많은 시각장애인에게 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하상 : 시각장애인이 인공지능 및 컴퓨터 과학 분야에서 겪는 가장 큰 어려움은 무엇이고, 앞으로 시각장애인을 위한 기술 개발의 방향성은 어떻게 설정해야 한다고 보시나요?


박사 : 저는 시각장애인을 위한 기술이 비장애인에게도 유용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시각장애인들이 사용하는 프로그램과 기술들이 실제로 다른 분야에서 반자동화 솔루션으로 활용되고 있죠. 이 기술이 리모트 기술 지원에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예를 들어, 삼성 컴퓨터의 문제가 생겼을 때 기술자가 방문하지 않고 인터넷을 통해 원격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과 비슷한 방식입니다. 스크린 리더 기술도 이와 유사한 원리로 발전할 수 있으며, 앞으로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인공지능 기술의 활용 범위가 더욱 넓어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상 : 미국 생활 중 겪은 에피소드가 있다면 들려주세요. 또는 박사님이 이루신 성취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을 말씀해주셔도 좋습니다.


박사 : 특별한 에피소드는 없지만, 회사에서 승진하고 월급 올라가는 게 제일 좋죠. 미국 생활에서의 성취 중 하나로 2014년에 우수 졸업생으로 선정되어 학교에서 상을 받은 일이 기억에 남습니다. 컴퓨터 사이언스와 언어학을 동시에 공부하며 어려움을 겪었지만, 당시 저를 지도했던 교수님들이 모두 참석해 함께 축하해 주셨고, 그들과 식사를 함께하며 감사한 마음을 나눌 수 있었습니다. 저는 그분들을 잊지 못합니다. 너무 고마우신 분들이에요.


특히, 논리학 강의를 맡았던 언어학 교수님을 잊지 못합니다. 여교수님이었는데 3시간짜리 강의를 진행하면서 수학 기호와 논리적 표현을 칠판에 쓰면서 판서를 보지 못하는 저를 위해 일일이 설명해 주셨습니다. 저는 그때 학교의 교수님들이 단순히 가르치는 분이 아니라 인생의 멘토라는 것을 깊이 느꼈고, 그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품게 되었습니다. 주위에 좋은 사람들을 많이 붙여주시는 하나님께 항상 감사하고 있습니다.


하상 : 앞으로의 계획이나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씀 들려주시면서 인터뷰 마치겠습니다.


박사 : 앞으로 90세, 아니 95세까지도 일할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웃음). 일을 하지 않으면 무료할 것 같아요. 일을 하다가 하나님이 부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저는 현재 덴버에 거주하며, 재택근무를 통해 캘리포니아에 위치한 회사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코로나 기간 동안 원격 근무 체제로 전환되었고, 이후에도 회사에 출근하지 않기로 하면서, 아내와 함께 여행을 자주 다니고 있습니다. 그리고 커뮤니티에서 고등학생들에게 인공지능 코딩을 가르치는 봉사활동을 하고 있고요. 마지막으로 인공지능이 시각장애인들에게도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자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습니다.


�출처: 시각장애인을 위한 월간문화교양지 하상매거진 2024년 12월호(통권 제157호)




keyword
이전 09화외국인들에게 우리말을 가르치는 박은희 선생님을 만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