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글 역시 익숙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억지로 쥐어짜낸 적도 있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부터 달라졌다. 어떤 장소에서 뭔가 번뜩 떠오르기도 하고, 길가다 술 취한 사람의 비틀거리는 모습을 보고 많은 생각이 들 때가 있었으며, TV에서 어떤 가난한 나라에 사는 한 불쌍한 여자의 사연을 보고 마음이 움직일 때가 있었다. 그러다 보니 이것 역시 습관이 됐다.
누군가에게는 글을 쓰는 이유가 상처받은 영혼을 치유하기 위해서일 수도 있다.
난 원래 글을 쓰기 위해 메모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 편이었다. 일단 펜을 쥐고 글을 쓴다는 게 너무 귀찮았고, 또 모름지기 작가라면 책상 앞에 앉아있을 때 떠오르는 걸 써야한다는 게 나의 한심한 신념 같은 것이었다.
그러던 내가 핸드폰 메모장에 간단하게라도 메모를 하기 시작했다. 시간이 되면 그 간단한 메모를 보고 기억을 떠올려 한 문장씩 써내려갔다. 어떨 때는 아예 핸드폰 메모장에 꽤 길게 써버릴 때도 있었다. 예전에는 아이폰 메모장에 소설을 두 장 정도 적어놨다가 집에 와서 고스란히 옮겨 적는 게 퇴근 후의 할 일중 하나이기도 했다.
내 두 번째 책인 에세이집 ‘나의 서른여덟’에 실린 글들 중 절반 정도는 이렇게 써서 블로그에 올려놨다가 책에 실은 것들이다. 새벽에 아르바이트가 끝나면 심야영업을 하는 커피숍에 가서 두, 세 시간 정도 글을 쓰다 들어가고는 했다.
<난 나쁜 공기에 오염이 잘 된다>
내가 한때 가장 듣기 싫어하는 말이 하나있었다. 그건 바로 착하다, 라는 말이었다.
처음엔 좋았지만, 왠지 그게 무능함을 상징하는 말처럼 느껴져서 싫어졌다. 착하다, 라는 말 외에 다른 말도 가끔 들으면 참 좋을 텐데.. 다른 말은 별로 들어본 적이 없다. 그래서 나에게 착하다, 라는 말은 딱히 다른 매력이나 장점은 찾아보기 힘들다는 말처럼 들린다.
그래서 싫다.
그러나 이제는 그러려니 하고 산다. 내 천성이 어디 가는 건 아니니까. 바꿀 수 있는 건 더더욱 아니다.
하지만 못 견디겠는 건 어쩔 수 없는 거다. 착한 사람들은 오염이 쉽게 된다. 하얀색에 검은색이 물드는 게 순식간이듯이.
무례한 말과 행동에 한순간에 기분이 나빠지고,
건들건들 껄렁거림이 몸에 배어 있는 사람들은 옆에 있기도 싫다.
딱 봐도 민간인 신분이 아닌 문신쟁이들은 살면서 마주치는 일 없었으면 하기도 한다. 거리를 가득채운 자동차들의 불필요하고 신경질적인 경적소리는 평온한 마음을 한순간에 갈기갈기 찢어발긴다.
일상의 가벼운 농담 같은 욕이 아닌 입에 담기도 싫은 더러운 욕설들은 조금만 들어도 내 영혼이 더러워지기도 하고,
공공장소의 에티켓 없는 행동들은 내가 그곳을 떠나게 만들기도 한다.
누군가의 눈에는 지나치게 예민한 반응들로 보일수도 있겠지만, 더러운 공기에 숨 쉬는 게 편한 사람이 있을까. 그렇다면 그들은 불쌍한 사람이다. 맑은 공기의 청량함이 어떤지 잊었을 테니.
<도망만 쳐도 괜찮다>
난 꽤 오랫동안 도망을 쳐왔다. 그리고 지금 다시 한 번 도망을 칠지도 모른다. 이런 나를 보고 주변 사람들은 항상 안정을 강조하지만, 나는 그 안정이 찾아오기 전에 죽을 것 같다.
빚이 있어도, 당장 월세가 몇 달치나 밀렸어도, 핸드폰이 요금을 못내 끊겼어도, 그래도 난 일단은 도망 쳐야겠다. 어딘가는 살길이 또 있겠지. 누가 했던 말처럼 그깟 아르바이트 자리 하나 어디서 또 못 구할까.
봄비가 본격적으로 내리기 시작하니 또 천장에는 비가 샌다. 벌써 3년째다. 집주인에게 네 번인가 말을 했지만 들어먹지를 않는다. 월세 밀렸다가 그러는 건가. 나갈 테면 나가라는 소린가?
한 달 밀린 핸드폰 요금을 낼까 말까 고민하다가 오늘 입금해버렸다. 통장 잔액은 십만 원. 조금 무리하며 이것저것 빚 정리를 하다 보니 요번 달도 빠듯하다. 월급 받은 지 아직 보름도 안 지났는데. 이번 달에 동생이랑 고향에 갈일도 있을 것 같은데.
전기세 청구 금액이 조금 이상하다. 이중 청구가 된 것 같다. 알아봐야하는데.. 뭐 내가 맞더라도 돈을 또 몇 만 원 내야한다.
빨리 모아서 빚부터 갚는다던 계획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본격적인 빚 갚기에 돌입하기 전부터 이것저것 자질구레하게 갚을 것들이 너무 많다. 앞으로 한 두어 달은 더 해야 아직 독촉장 날아오고 있는 건강보험을 다 낼 수 있고, 타 통신사 연체금 정리를 할 수가 있다. 버틸 수 있을까. 하루가 멀다 하고 생활에 위기가 찾아오는데.
이런 저런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난 또 도망을 칠지도 모른다. 악조건을 해결하고 안정을 찾아야하지만, 그 안정이 찾아오기 전에 죽을 것 같으니까.
또 도망쳐도 괜찮다. 할 수 없잖아. 죽는 것보다는 그게 낫겠지. 죽을 것 같아도 버티다 보면 괜찮아지겠지.. 라고 생각하고 버티면 정말 죽을 수도 있다. 바보 같은 짓이다.
에세이집에 실린 글 중 일부다. 좀 긴 글을 실을까 하다가 일부러 상대적으로 짧은 글을 골랐다. 이건 뭔가를 보고 느낀 게 아니라 그냥 문득 떠오른 감성을 정리한 글들이다.
이렇게 짧게 써도 된다. 길고 짧은 게 그리 중요한건 아니니까.
난 이런 글을 쓰면서 상처받은 감성이 치유되는 느낌을 받곤 했다. 너무 거창한가? 그러나 사실이다. 스트레스가 풀리는 느낌이다.
예전에 어떤 소설가가 서두에 썼던 글이기도 하다. 누군가에게는 글을 쓰는 이유가 상처받은 영혼을 치유하기 위해서일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