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력한 이들이 '무기력함을 없애려면 햇볕을 쬐라. 나가서 걸어라.'라는 조언을 모르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그럴 의지가 안 생기기에 무기력하다고 하는 것인데, 그것이 해결방법이라니.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황의 중간중간 무기력함에 빠지기 쉬운 이들에게 나 또한 '나가서 걸으라'고 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나 또한 그렇게 그 구렁텅이에서 매번 빠져나왔으니까.
무기력함은 보통 정신적인 문제로만 생각하기 쉽지만, 의외로 체력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기껏 무언가에 도전하거나 시도해보려고 하다가도 신체적으로 지쳐버리면 쉽게 포기하게 되고, 그것이 '나는 왜 이것조차 못하고 지쳐버리지'라는 후회와 자괴감이 되어버린다. 그러면 다음 도전이 어려워지고 무기력함이 깊어지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직장을 다니면서 가끔 운동을 했던 나도 여지없이 이 악순환에 갇혔다. 퇴사 후의 방황기와 맞물린 코로나는 옴짝달싹할 새 없이 몸과 마음을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집안일과 약간의 공부나 독서만 해도 기운이 없었고, 온몸의 근육이 다 사라진 느낌이 들자 사람이 시들시들해진다는 기분마저 들 지경이었다. 당연히 계획했던 일이나 거창한 자아 찾기는커녕, 하루가 금세 지나가고 후회의 밤이 찾아오면 나는 우울감의 늪으로 걸어 들어갔다.
이래서야 퇴사하기 직전 번아웃 상태와 뭐가 다른가 생각이 들 때쯤, 내가 살려고 시작한 것이 요리와 등산이었다. 잘 먹고 움직이기. 내 무의식이 나를 포기하지 않았는지, 우연히 발견한 요리 동영상과 등산모임 글로 날 이끌었다. '이것 봐. 재미있어 보이지 않아?' 조심스러운 꼬드김이었다. 물론 나에게 기적이 일어난 것은 아니었으므로 평소 전혀 관심 없던 두 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까지는 망설임과 심적인 준비 운동이 필요했다.
첫날은 영상을 보고 간단한 샌드위치를 만들었고, 집 앞을 걸었다. 평소였다면 무심히 지나쳤을 아파트 화단의 꽃이 눈에 띄었고 어느새 한층 따사로워진 햇살이 썩 나쁘지 않았다. 그다음 날에는 어제의 그 썩 나쁘지 않았던 기분이 기억나 다른 요리를 해봤고, 동네 공원까지 걸어봤다. 분수대에서 나오는 물이 청량했고, 꽃을 심는 손길들이 분주해 보였다. 그렇게 조금씩 거리를 늘려나가다가 인근 숲길을 걸었다.
그제야 가입 신청만 해놨던 등산 모임에 용기를 내 나가보았다. 그날 올라가는 산은 꽤 쉽다는 말에 딴에는 큰 용기를 낸 것이었다. 그리 높지 않은 산인데도 서울 전망이 멋지게 펼쳐지는 정상을 보고 내려오니 기분이 무척이나 좋아지는 것을 경험했다. 처음의 근육통도 점점 적응되어가면서 아차산, 인왕산, 도봉산, 청계산, 관악산 하나씩 오르게 되었고 시작한 지 3개월쯤 되었을까.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어느새 한라산 백록담에 가 있었다.
우울감에 침대 밖은 위험하다고 생각하던 내가 어떻게 몇 개월 만에 이만큼이나 올 수 있었을까. 한라산을 등반하면서 한 걸음의 힘을 새삼 생각하게 되었다. 한라산은 남한에서 가장 높은 산이지만, 코스가 잘 나 있어 나 같은 초보도 어떻게든 오를 수 있는 곳이었다. 하지만 정말 정신력과 지구력의 싸움이다. 온종일 걷는다고 생각하면 엄두가 안 나지만, 한 걸음만 더, 한 걸음만 더, 또 그렇게 다음 대피소까지 걷다 보면 어느새 환상적인 경치와 백록담을 만날 수 있다.
체력을 기르고 무기력함에서 빠져나오는 것도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생에서 물 마시러 나가는 것도 귀찮은, 내가 봐도 내가 한심한 날들은 종종 찾아온다. 그럴 때는 무리하지 말고 '네가 많이 힘들었구나. 한 걸음만 걸어보자'고 생각하기 시작하면, 나도 모르게 어느 순간 체력과 생기가 카드 마일리지처럼 쌓여있게 되는 것 같았다.
그 뒤에도 무기력이라는 놈은 내 마음의 면역이 약해질 때 감기같이 한 번씩 찾아오곤 했다. 다행히 항체가 조금은 생긴 나는 이전의 기억을 살려 방 안에서 홈 트레이닝이라도 하려고 노력했다. 처음 며칠간은 눈으로 열심히 운동하더라도 용기가 나는 날이 오면 요가 매트를 깔았고, 그러면 활력은 조금씩 돌아왔다. 그리고 그 결심을 좀 더 자주 할 수 있도록 실내 운동화와 요가매트를 눈에 보이는 곳에 놓고, 예쁜 운동복을 샀다.
헬스장을 등록한 뒤 가장 힘든 일은 집에서 운동화를 신고 나서는 일이라고 한다. 안전한 침대에서 운동복을 챙겨 나가기까지 몇 걸음 사이에는 바다 같은 귀찮음과 게으름, 무기력함이 자리하고 있다. 그럴 때는 내가 귀찮다고 인지하고 가지 말아야 할 수십 가지의 이유를 만들어내기 전에 빠르게 나서야 한다. 지금 무엇을 하는지 생각할 시간조차 주지 말고 어느새 내가 운동화를 신고 나서고 있을 수 있도록 내 뇌를 속여야 한다. 그러면 그다음은 조금씩 쉬워질 것이다.
새로운 것에 도전할 정신력도 체력이 뒷받침되어 줄 때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