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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클로이 Apr 10. 2021

있는 그대로의 나를 안아주기까지

진정한 퍼스널 브랜딩의 시작

  내 인생의 우선순위를 거를 수 있는 체를 만들기 위해, 그리고 나 자신을 이해하기 위해 아이덴티티에 관련된 수업을 찾아다니고 내면의 이야기에 귀 기울일 수 있는 리추얼에 가까운 체험에도 참여했다. 가장 잘 알아야 할 대상인 나 자신을 모른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데도 용기가 필요했고, 그 후에는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나를 찾기 위해 분주하게 적극적으로 방황했다.


가장 기억에 남았던 한 수업에서는 각기 다른 배경을 가진 이들과 함께 한 달여 동안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고 답을 찾으려고 노력했다. 자기 자신이 뭘 좋아하는지 잘 모르는 사회 초년생부터 사회적으로 안정적인 직업군으로 여겨지는 변호사, 공기업 직원까지 모두 자신을 찾고자 또는 이 길이 맞는지 치열하게 고민했다.


수업의 끝에 약 50페이지에 달하는 글이 남았다. 남에게 보여주는 글쓰기가 목적이 아니었기에 정제되지 않고 투박하고 거친 언어로 나의 과거, 상처, 후회, 불안이 쏟아져나왔다. 후회와 불안에 관해 쓰는 날이면 마음 한구석 애써 외면했던 그것들을 헤집느라 생채기가 났지만, 응어리가 풀어지며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위안을 받았다.


나는 어쩌면 못난 과거의 나를 버리고 새로운 멋진 나로 태어나고자 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글을 쓰며 가까이 들여다보니 놀랍게도 과거의 나는 현재의 나와 촘촘히 연결되어 있어 분리할 수 없었다. 그때 나의 결정이 지금의 경력에 어떻게 영향을 미쳤는지, 인턴 시절 상사가 해준 말이 지금 내 태도를 어떻게 변화시켰는지에 이르기까지 얼핏 관계없어 보이는 것들의 연관성은 놀라울 정도였다. 또한, 그때의 기준으로 좋고 그르다고 판단한 것들도 지금 보면 빗나가는 것이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때의 미련한 결정은 지금 내게 좋은 경험으로 남아있고, 그때의 좋은 기회는 초심자의 행운이 되어 결과적으로 발목을 잡는 일이 되기도 했다.


그렇게 관점을 바꾸고 나니 절대적인 것은 없었다. 나는 답답한 박스에 갇혀있다고 생각했지만, 그것 또한 내가 밟고 인생의 다음 스텝으로 넘어가기 위한 발판이 될 수 있는 것이었다.




 최근 몇 년간 회사에서의 나, 가족 안에서의 나,  남들에게 보이는 나와 내가 생각하는 나, 여러 가지 페르소나 중에서 어떤 게 나인지 혼란스럽고 그것들이 상충할 때 어떻게 할지 그 부분이 많이 고민되기도 했다. 럭셔리한 여행과 출장의 시간 뒤 게스트하우스에서 배낭여행을 즐기는 나, 자유롭고 거침없어 보이다가도 결국에는 이타적이고 바르기를 강요받았던 어릴 적 어머니의 가르침처럼 행동하게 되는 나, 새로운 시도나 사람을 만나는 데 겁이 없어 보이지만 사실은 혼자만의 시간을 가장 즐기는 데다 잘 안될까 봐 시작도 못 하는 겁쟁이, 분쟁을 싫어하지만 결국은 누구보다 할 말은 하는 나. 이 사이에서 내 진짜 모습은 뭔지, 왜 나는 퍼스널 브랜딩을 하는 사람들처럼 뚜렷한 색이 없는 건지 고민을 했다.


그러나 저런 일련의 나를 알아가는 노력을 통하여, 그 다양한 모습들이 나를 구성하고 있으며, 그 순간들이 지금의 나를 만든 것임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예쁘건 밉건 모두 나로 수렴하는 작은 조각들이고, 나를 남들과 다르게 만들어주는 무언가라는 사실까지도. 제각각이던 모습 안에서도 오랜 시간을 관통하며 지켜온 나의 가치관과 좋아하는 일도 배어있었다. 내가 항상 추구해온 가치는 자유로움, 생생함, 진정성, 책임감이었고, 그런 생동감 있는 경험과 지식을 나의 관점으로 전달하고 나아가서는 추천하고 큐레이팅하는 것을 좋아해왔다. 이것들이 나의 체의 재료가 되어주겠지.




 에디터들이 숙소에 관한 글을 쓸 때면, '숲속에 있어서 벌레가 많을 수 있다'는 단점은 '자연 친화적인 지속 가능한 고급 휴양 리조트이므로, 세련된 시티 호텔보다는 숲속 안식처가 필요한 이들에게 추천'이라는 말로 수려하게 변하곤 한다. 거짓말이 아닌, 그 리조트가 가진 고유함에 대한 다른 관점의 시선이고 매력적인 스토리텔링이다. 그 고유함은 누군가에게는 피하고 싶은 단점이, 누군가에게는 찾고 있던 무언가가 되기도 한다.


연예인이나 사업가가 아니라도 누구나 스토리텔링과 브랜딩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하지만 퍼스널 브랜딩이라는 것은 그럴싸한 포장지로 나를 싸는 게 아니라, 나 자신이 가진 고유한 무언가에 집중하고 그것을 빛나게 하는 것에 더 가깝다.


우리가 사랑에 빠졌을 때, 상대방의 어설픈 실수나 미숙함은 귀여운 인간적인 매력이라고 느끼면서, 왜 자신에게는 항상 부족하다고 느끼고 완벽하지 못함을 미완성된 상태로 여길까. 친구들에게 용기를 북돋아 주거나 회사에서 상품에 관해 쓸 때는 자연스럽게 저런 장점 필터를 끼고 이야기했으면서, 정작 나 자신에 대해 이야기를 할 때는 저렇게 봐주지 않았다. 내가 가진 것이 부족하고 미숙해 보여도 그게 나란 사람의 서사를 만드는 것임을, 결점이 있어서 특별하고 때로는 더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이제서야 어렴풋이 이해하게 되었다.


힘들고 오래 걸렸지만, 비로소 나를 마주하고 따뜻하게 안아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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